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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말하기의 어려움, 또는 무서움 누구나 말실수를 한다. 어쩔 수 없다. 말실수가 아닌 듯 한데 결과적으로 말실수인 경우도 있다. 그래도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은 더 말을 조심해야 한다. 가르치는 대상이 어릴 수록 특히 더 말을 조심해야 한다. 오늘 아침 신문을 읽다가 다시 그런 생각을 했다. 대학가 안팎에 깊숙이 스며든 서열에 대한 인식은 재수 계획이 없던 이들의 마음까지 돌리고 있다. 지난해 22학번으로 지역거점 국립대 생명과학부에 진학한 조성진(가명·20)군은 입학식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아 반수를 결심했다. 그가 입학한 대학은 광역시 소재가 아니었고, 서울에서 제법 거리가 먼 곳이었다. “필수교양 과목 첫 수업을 듣는 날이었어요. 교수님이 ‘이 대학을 다닌다고 너희들 인생이 망한 건 아니다. 실망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하시더.. 더보기
광수 생각 교사 시절, 나를 뜨끔하게 했던 '광수 생각' 한 컷. 더보기
“선생님은 여자 마음을 너무 몰라요.” 오늘도 10시 넘어 학교를 나섰다. 고단한데, 심란하기까지 하다. 요즘은 대입 수시1차 시험 기간이다. 적성, 논술, 면접 등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내일, 모레 이틀 동안, 우리 반에서만 열 명 정도의 아이들이 전장으로 나선다. 며칠째, 면접 볼 아이들을 모아 준비를 시키고 있다. 오늘도 마찬가지. 이미 두어 번 낙방의 아픔을 겪은 ○○가 면접 연습하다가, 눈가가 젖더니, 통곡이 되었다. 겨우 수습된 뒤, △△를 불러 면접을 시작했다. 허, 이 녀석도 이내 눈물범벅…. 고등학교 3년 동안 한 번도 울지 않은 아이들을, 둘씩이나 울렸다. 그치게 하려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얼마나 아팠기에, 얼마나 참았기에…. 면접 연습 중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긴 했지만, 혹독하진 않았다. 내가 던진 몇 마디 말 가운데 하.. 더보기
김용택 시인과 전교조 십년이 더 지났네. 2011년에 전교조에서 나오는 교육신문 에 김용택 시인의 글이 실린 후, 그에 대한 반박의 글이 다시 실렸다. 비교해 읽어보면서 여러모로 착잡했다. 그때 블로그에 저장했던 것을 여기 옮긴다. 2023년 3월, 오늘에도 여전히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희망칼럼]한심한 당신들의 동지 김용택/ 시인 선생 38년, 학교를 그만둔지 3년, 그런데 놀랍게도 나는 이제야 전교조 관계 신문으로부터 난생 처음 청탁을 받았다. 감개가 무량(?)하다. 이런 신문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이러이러한 신문이라고 청탁자의 설명을 듣고 도대체 어떤 신문인가 여기 저기 찾아보았다. 나는 전교조란 말에 반감이 있다. 강연 청탁전화할 때 지나치게 뻣뻣하고 경직되어 있고, 불친절하다. 일방적이다. 놀랍게도 전교조가 .. 더보기
수능 전날에 내일이 수능일이다. 오늘은 예비소집일이라 아이들을 오전에 보냈다. 덕분에 나도 일찍 퇴근했다. 떠날 채비 서두르는 가을의 끝자락, 뛰는 듯 걷는 듯 차를 몰아 초지대교를 건넜다. 보고픈 사람 있어 잠시 들러보고 해수탕에 가서 몸을 씻었다. 마음도 좀 씻었다. 그리고 고즈넉한 산사, 그래서 주뼛거리지 않고 절할 수 있는 청련사로 갔다. 큰법당 부처님 앞에 엎드려 우리 반 녀석들 수능 잘 보기를 빌었다. 그동안 수없이 토해낸 한숨, 눈물, 이제는 뒤로하고 행복하게들 웃을 수 있기를 기도했다. 삼성각 산신령님께도 절을 올렸다. 단풍구경 한번 가지 못하고 가을이 갔다고 여겼는데, 청련사 경내에는 아직도 고운 가을이 버티고 있었다. 고마워라. 고마워라. 빛이 다하기 전에 서둘러 몇 장 주워담았다. (2012년 1.. 더보기
빠샤빠샤! 오래 머물던 다른 블로그에서 티스토리로 이사 중이다. 전 블로그에 올렸던 옛글을 하나하나 보면서 나는 다시 교사 시절의 향수에 잠긴다. 그래도 인복은 있어서 선생님들이 많이 도와주었다. 다음 글은 2016년 4월에 올렸던 것인데, 옮겨왔다. 경수샘! 스트레스 심해 보이세요…. 이래저래 업무 굉장히 많으셔서 많이 힘드시죠? 힘내세요! 힘드신 거, 잡일들 있으면 저한테 말씀하시고요!! 소소하게 많이 웃는 일 있어야 하는데 ㅠㅠ 멋진 부장님 보며 저는 힘을 얻는데 우리 경수샘은…. ㅠㅠ 빠샤!! 제 기를 드릴게요! 빠샤빠샤!! 힘내세요.^^ ♡ -○○○ 드림 아닌 게 아니라 참 힘들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래도 가급적 티 안 내려고 하는데, 딸뻘 선생님한테 들켰다. 잠시 자리 비운 사이에 책상에 따끈한 .. 더보기
‘가꾸지’ 바닷길 역사산책⑤-초지진 초지진에 왔다. 무엇이 보이는가. 소나무! 언제 보아도 정말 멋지다. 저 소나무 없는 초지진은 상상할 수 없다. 연미정을 느티나무가 빛내주었듯 초지진은 저 소나무가 빛내준다. 부디 오래도록 건강하시길, 그 어떤 태풍에도 끄떡없으시길. 초지진은 1656년(효종 7)에 설치됐다. 초지돈대, 장자평돈대, 섬암돈대를 거느렸다. 지금까지 이 글을 꼼꼼하게 읽어 온 분은 알아챘을 것이다. 그렇다. 초지진이 아니다. 여기는 초지진이 아니라 초지진에 소속됐던 여러 돈대 가운데 하나인 초지돈대이다. 갑곶돈대처럼 이름을 잘못 붙인 것이다.  초지진은 참 중요한 역사의 현장이다. 신미양요(1871) 때 미군이 상륙한 곳이다. 몇 년 뒤 운요호사건(1875)도 여기서 벌어진다. ‘운요호사건’을 예전에는 한자 그대로 운양호사건.. 더보기
‘가꾸지’ 바닷길 역사산책④-덕진진 덕진진이다. 광성보보다 돌아볼 거리가 짧다. 초지진·덕진진·광성보는 한 세트로 묶여 말해지는데 덕진진은 광성보와 초지진보다 주목도가 덜한 것 같다. 삼형제 중에 둘째의 처지 같다고 할까. 하지만 여기도 의미 있는 문화유산이 자리한 곳이다. 홀로 산책하기엔 광성보보다 더 좋다. 진과 보 대개가 효종 때 설치됐는데 여기 덕진진은, 공식적으로 들어선 것이 숙종 때다. 1677년(숙종 3)에 세웠다. 신미양요 때 미군에게 점령됐었다. 그때 미군은 덕진돈대 여장을 파괴하고 여기 있던 무기들을 바다로 던지고 광성보로 향했다. 덕진진에 가면 먼저 공조루(控潮樓)를 보게 된다. 사실, 공조루는 강화외성의 출입문일 뿐, 덕진진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덕진진에는 덕진진이 없다! 광성보는? 광성보에도 광성보가 없다. 광성.. 더보기
초지대교 막국수 점심을 밖에서 먹게 될 때, 주로 읍내에서 먹는다. 오늘은 맘먹고 25분 달려 초지진 쪽으로 갔다. 초지대교 옆 ‘초지대교 막국수’ 오랜 친구가 며칠 전에 개업한 곳이다. 비빔막국수를 시켰다. 나왔다. 내가 장사하는 것도 아닌데, 긴장됐다. ‘어떤 맛일까, 맛있어야 하는데…’ 드디어, 첫입. 면 씹는 맛이 좋다. 독특하다. 그런데, 맛이 별로라는 생각이 딱 들었다. 첫맛이 살짝 밍밍한 느낌? 아, 단맛이 덜했다. 일단 먹자. 먹을수록 맛이 괜찮았다. 아이고, 다행이다. 그동안 내가 사 먹었던 비빔막국수는, 맵든 달든, 맛이 강했던 것 같다. 그런데 친구가 낸 막국수는 자극적이지 않아서 첫맛이 덤덤했던 것 같다. 아무튼, 먹을수록 맛이 났다. 먹는 양이 워낙 적은 내가 한 그릇을 싹 비웠다. 만두까지 몇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