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全

《강화도, 근대를 품다》 뒤표지 글 역사의 섬 강화도, 전국에서 유일하게 프랑스와 미국의 침략을 잇달아 받았던 섬,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조약으로 근대를 여는 마당이 된 섬, 두드러진 구국 교육운동과 항일의병의 저력을 보여준 섬, 마침내 독립만세 뜨거움 가득했던 섬, 오히려 일본인 우습게 만드는 경제 독립운동이 일상이던 섬, 그래서 ‘NO JAPAN’의 선구가 되었던 섬. 이 섬 강화도엔 묘한 향기가 있다. 더보기
《숙종, 강화를 품다》 출판사(역사공간) 서평 중에서 숙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 바로 강화도다. 숙종은 오랜 세월 강화도에 공을 들였다. 즉위 초부터 ‘강화읍성’을 고쳐 쌓고 덕진진에 행궁을 짓게 하더니 세상을 떠나던 해에는 초루돈대를 완성하였다. 효종처럼 북벌을 밀어붙이지 않았지만 만약을 대비한 보장처를 갖추는 데 힘을 다했다. 진鎭·보堡 체제를 완성하고 수많은 돈대와 외성을 쌓았으며, 그것도 모자라 바다 건너 김포 땅에 문수산성을 쌓았다. 50개가 넘는 돈대 대부분이 숙종 때 세워졌다. 강화도 태생의 저자는 교사로 근무하며 강화도 역사를 통해 한국사의 깊이를 더하는 연구 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2013년에는 강화역사문화연구소에서 ‘숙종 시대의 강화도’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였으며, 100여 권 이상의 관련 문헌을 수집.. 더보기
《왜 몽골제국은 강화도를 치지 못했는가》 머리말 중에서 “동서양 많은 나라가 몽골이 쳐들어가자마자 무너졌습니다. 버텨낸 나라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고려는 수십 년 항쟁을 계속하며 나라를 지켜냈습니다. 이 책에 고려시대 대몽항쟁對蒙抗爭의 다양한 모습을 담았습니다. ‘백성의 힘’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항전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를 찾아갑니다. 대몽항쟁 기간 고려의 도읍지였던 강화도의 존재에 주목합니다. 몽골군은 전 국토를 짓밟았지만, 고려의 심장부인 강화도는 한 번도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강화도 조정이 오롯이 유지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끈질기게 항쟁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궁금했습니다. 몽골군이 강화를 치지 못한 이유가 뭘까? 강화군과 김포시를 잇는 강화대교 길이가 700미터에 불과합니다. 한강 다리들보다도 짧습니다. 아무리 물을 .. 더보기
《나는 오늘도 선생이다》, 교육 에세이 2006년입니다. 그해, 수필집 《가슴으로 크는 아이들》을 냈습니다. 첫 책은 아니지만, 첫 수필집이라 더 정이 가는 책입니다. 학교와 가정이라는 두 공간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좀 이르게 절판되었습니다. 아팠습니다. 2015년에 두 번째 수필집 《나는 오늘도 선생이다》를 냈습니다. 처음 맘먹었던 책 제목은 ‘벌거벗은 선생님’이었습니다. 이 책에 《가슴으로 크는 아이들》에 실었던 글의 일정 부분을 옮겨왔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오늘도 선생이다》는 3부로 구성했습니다. ‘교사가 교사에게’, ‘학부모님께 드리는 편지’, ‘사랑하는 나의 가족’입니다. 정호승 선생님께서 추천사를 주셨습니다. * 추천사 * 책을 읽다보면 책갈피에서 글쓴이의 향기가 솔솔 배어나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 더보기
엄만, 짜장면이 싫단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처럼 우리는 오래도록 짜장면을 짜장면으로 쓰지 못했습니다. ‘자장면’으로 쓰고 불러야 했지요. 한국어 맞춤법 규정이 그랬습니다. 2011년에야 ‘짜장면’이 표준어로 인정되면서 공식적으로 짜장면으로 쓸 수 있게 되었지요.  50년 전쯤에 머릿속에 각인된 단어 ‘태풍관’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아리랑골목 입구에 있던 강화 유일의 중국집이었죠. 강화 아이들이 가장 가보고 싶었을, 그러나 기껏 일 년에 한두 번 가는 선망의 짜장면집, 거기가 태풍관이었습니다.‘강화국민학교’ 다니던 때 학교를 마치면 가끔 태풍관으로 내려갔습니다. 주위를 잠시 맴돌고 나서야 집으로 가곤 했습니다. 왜 그랬나? 냄새 맡으러 간 겁니다. 주방에서 흘러나오는 짜장면 냄새를 코로 받아먹으며, 아.. 더보기
‘가꾸지’ 바닷길 역사산책② - 강화전쟁박물관 연미정에 안녕을 고하고 나와 한적한 해안도로로 들어선다. 시속 30km! 다행히 뒤따르는 차가 없어서 내 맘대로 천천히 간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 나도 살 좀 찌고 싶다. 아~, 공기 좋다. 벼 다 익은 들판이 아름답다. 벼는 뾰죽 선 초록 때도 이쁘고 저렇게 농익어 고개 숙인 노랑도 이쁘다. 아이구, 그러고 보니 모낼 때가 엊그제인데 어느새 벼 벨 때가 됐구나. 화살은 멀리 갈수록 느려지는데 인생은 멀리 갈수록 빨라지는 것 같다. 강화전쟁박물관 도착! 강화전쟁박물관을 포함한 일대 영역을 갑곶돈대라고 한다. 문화재(사적) 공식 명칭은 ‘강화 갑곶돈(江華 甲串墩)’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갑곶돈대에는 갑곶돈대가 없다. 진짜 갑곶돈대는 옛 강화대교 입구쯤에 있었다. 지금은 없.. 더보기
마리산 참성단 “한번 보고 가득한 회포를 풀고 두 번 보고 천 년 역사를 알만한 강화! 우리가 원하여 보고자 하는 강화! 우리가 기어코 가야만 할 강화!” 일제강점기인 1921년에 ‘가자봉인’이라는 필명을 쓰는 이가 잡지 《개벽》에 실은 글의 일부입니다. 가고 싶은 강화가 아니라 ‘기어코 가야만’ 하는 강화라고 했습니다. 가자봉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열망하는 이마다 ‘기어코’ 강화에 다녀갔습니다. 교통 불편하던 시절, 왜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강화를 찾았을까요. 참성단을 ‘뵙기’ 위함이었습니다. 마리산 참성단에 오른 가자봉인은 그 감회를 이렇게 썼습니다. “단군이 등을 어루만지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 같아 감격의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그렇습니다. 나라 잃은 백성의 처지가 되어 찾아온 마.. 더보기
《강화도史》 출판사(역사공간) 서평 선사부터 근대까지 주요 사건이 펼쳐진 무대였던 탓에 한국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섬, 강화도. 국가 지정 문화재와 지방 문화재, 천연기념물 등 섬 자체가 문화재라고 할 만한 강화 구석구석에 배어 있는 우리 역사의 흔적과 숨은 의미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강화에서 나고 자라 여전히 그곳에서 살고 있는 저자만이 들려 줄 수 있는 이야기, 강화에 관해 잘못 알려진 이야기. 선사부터 강화도조약까지 죽 거슬러오면서 저자가 들려주는 특별하고 맛깔스런 강화도 역사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이곳이 왜 기쁨과 눈물과 비탄의 눈물이 함께 고여 있는 ‘교훈의 땅’인지 알게 된다. 동막해변 갯벌에서 출토된 토기, 강화 곳곳에 우뚝 서있는 고인돌, 위급한 사태를 위해 설치한 봉수대와 돈대, 저자는 아.. 더보기
‘가꾸지’ 바닷길 역사 산책① – 연미정 살다 보면, 특별한 이유도 없이 확 짜증이 나고 가슴이 답답할 때가 있다. 그러면 난 연미정에 가곤 한다. 방문객이 거의 없어서, 그 귀한 공간이 오롯이 내 것이 된다. 돈대 여장에 기댄 채 바다를 보고 하늘도 보고 바닥에 주저앉아 멍도 때리고 그러다 보면, 그래, 사는 게 다 그렇지, 훌훌 털어내게 된다. 그랬는데, 요즘은 연미정 분위기가 다르다. 찾는 이들이 평일에도 제법 많다. 나는 여전히 연미정을 사랑하지만, 여기서 멍때리기는 이제 하지 않는다. “응? 정자라는데 웬 성벽이야?”“저 안에 있나 보지.”내 바로 앞에서 걷는 이들이 말한다. 처음 오시는 분들인 모양이다. 아래에서 보니 월곶돈대가 정말 높다란 성벽 같다. 아치형 출입문으로 들어간다. 그 많은 돈대 가운데 출입문이 아치형인 것은 몇 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