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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常

아무튼, 거시기

고급 외제차 모는 어떤 젊은이의 횡포가 한동안 뉴스에 거듭 나왔지요. 그 젊은이는 운전 중 갈등 빚은 상대방에게 참으로 몹쓸 말을 했습니다.

운전자끼리야 상스러운 욕설 오가도 그러려니 하겠습니다만, 이번엔 너무 심했습니다. 엄청 비싸다는 외제차 운전자가 상대방 차에 타고 있던 어린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이런 똥차 모는 너희 아빠는 거지다!

아마도 외제차 운전자는 자기가 땀 흘려 돈 벌어 자동차를 마련한 게 아닐 겁니다. 부모가 사 줬을 겁니다. ‘부모 잘 만난그 운전자가 상대방 운전자에게 그랬다지요. 나이만 처먹고 능력은 안 돼서 이런 똥차를 모는 거라고. 아이고, . 아들에게 비싼 차 사준 그 부모가 차라리 측은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요, 한때 어느 외제차에 정신을 다 빼앗긴 적이 있었답니다. 그야말로 홀딱 빠졌던 거죠. 운전 중 그 차가 보이면 나도 몰래 고개가 돌아가고, “~”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아주 멋졌습니다. 특히 뒤태가 너무 맘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그림의 떡! 그런 차를 타는 이의 경제력이 부러웠을 뿐입니다. 벌써 십여 년 전 일이었네요.

얼마 전에 큰애가 젖은 목소리로 저에게 말하더군요. “아빠, 미안해.” 으잉? 그런 말 통 안 하는 애가 미안하다고 하니 이상했습니다. 왜 그러냐고 물어봤습니다. ~, 이런.

제가 한창 외제차 특정 모델에 빠져있을 때, 큰아이는 중학생이었습니다. 아이를 태우고 가다 몇 번 그 차와 마주쳤고, 저는 예외 없이 , 죽이네침을 흘렸습니다. 앞에 그 차가 가면 열심히 따라가서 살피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니 참 철딱서니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아비가 그 차를 갖고 싶어 하는 걸 아이가 알았습니다. 아비가 그 차를 가질 수 없다는 것도 아이는 알았습니다. 저는 기억하지 못하는데 아이가 그때 아빠, 내가 취직해서 저 차 꼭 빼줄게.” 이랬던 모양입니다. “진짜? 아들, 고마워.” 제가 대답했던 모양이고요.

아이는 정말 돈 많이 벌어서 아빠에게 외제차를 사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십 수 년 전 대화를 가슴에 담아 기억하고 있던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지요.

몇 년, 지가 일해서 벌어 먹고살다 보니 자동차를 굴린다는 게 경제적으로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직 제 차도 없는 처지에 아비에게 그 비싼 외제차를 사준다는 게 언감생심이었을 겁니다.

훗날 다행히 아들이 저에게 좋은 차 빼줄 만큼 살게 되면, 그땐 제가 운전하기 어려운 나이이거나 이 세상에 없거나 그렇게 되겠지요.

지가 한 말을 꼭 지키고 싶었던 아들은 나름 고민을 했을 테고 그러다가 용기 내 아비에게 말한 겁니다. 차 사주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것 같다고. 마치 죄지은 놈처럼 아빠, 미안해하면서.

미안하다는 말에 가슴이 찌르르했습니다. 저는 이미 외제차에 전혀 관심 없습니다. 아비가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자식에게 오래도록 부담을 준 것 같아 슬펐습니다. 슬프다 보니 이것도 저것도 다 그냥 섧게 느껴졌습니다.

학비에 방세까지 직접 벌면서 학교 다닌 애들이 얼마나 많냐, 넌 그런 걱정 하지 않고 졸업했지 않으냐, 언젠가 아이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자기가 벌어서 부모 부양해야 하는 애들이 또 얼마나 많냐, 넌 그런 부담 없지 않냐,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제 나름 자식에게 부모의 도리를 다했음을 당당하게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요, 솔직히 말해서 당당하지가 않네요. 이왕이면 아이들 앞길 좀 넓게 열어주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힘에 부치네요.

그래서 또 자식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좀 들다가도, 아니, 이 정도면 됐지, 뭘 미안해해, 싶기도 하고. 아무튼, 거시기.

강화뉴스2021.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