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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常

엄만, 짜장면이 싫단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처럼 우리는 오래도록 짜장면을 짜장면으로 쓰지 못했습니다. ‘자장면으로 쓰고 불러야 했지요. 한국어 맞춤법 규정이 그랬습니다. 2011년에야 짜장면이 표준어로 인정되면서 공식적으로 짜장면으로 쓸 수 있게 되었지요.

 

 

50년 전쯤에 머릿속에 각인된 단어 태풍관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아리랑골목 입구에 있던 강화 유일의 중국집이었죠. 강화 아이들이 가장 가보고 싶었을, 그러나 기껏 일 년에 한두 번 가는 선망의 짜장면집, 거기가 태풍관이었습니다.

강화국민학교다니던 때 학교를 마치면 가끔 태풍관으로 내려갔습니다. 주위를 잠시 맴돌고 나서야 집으로 가곤 했습니다. 왜 그랬나? 냄새 맡으러 간 겁니다. 주방에서 흘러나오는 짜장면 냄새를 코로 받아먹으며, ~ 맛있다, 그렇게 달떠서 집으로 가는 겁니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철이 빨리 드는 편입니다. 엄마에게 사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봤자, 사줄 형편 안 되는 엄마, 가슴만 아프게 하는 거니까요. 그래도 정말 너무너무 먹고 싶을 땐 엄마, 짜장면 먹고 싶어할 수밖에 없었지요.

20년 전쯤에 큰 인기를 끌었던 남성 그룹 지오디(god)의 노래 중에 어머님께가 있습니다. 가사에 의하면, 라면만 먹다 지친 어떤 꼬마가 엄마에게 대들었습니다. “짜장면 사달라고!” 꼬마는 드디어 먹게 됩니다.

 

“숨겨두신 비상금으로 / 시켜주신 / 자장면 하나에 / 너무나 행복했었어 / 하지만 어머님은 / 왠지 드시질 않았어 / 어머님은 자장면이 / 싫다고 하셨어 / 어머님은 자장면이 / 싫다고 하셨어”

 

 

입에 고인 침 몰래 삼키며 아들 맛나게 먹는 걸 바라보는 엄마, 그 슬픈 거짓말, “엄마는 짜장면이 싫어우리네 엄마들은 늘상 그렇게 거짓말하며 우리를 키웠습니다.

제 어머니는 평생 습관이 되신 것 같아요. 어쩌다 어머니 좋아하시는 특별한 음식을 사 와 식탁에 올립니다. 맛이 없다며, 이가 아프다며 잘 안 드십니다. 저는 일부러 조금만 먹고 식사를 끝냅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남은 걸 맛나게 다 드십니다.

돌아가신 제 아버님도 짜장면을 좋아하셨습니다. 오래도록 병원에 입원해 계셨었는데 입맛을 잃어 통 드시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드시고 싶은 게 있냐고 했더니 짜장면이 먹고 싶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배달시켜드리려고 했더니 가끔 가던 중국집에 가서 드시고 싶다는 겁니다. 거긴 배달 안 하는 집인데.

난감했습니다. 간호사의 허락을 겨우 받아 링거 꽂은 그대로 아버지를 모시고 외출했습니다. 차에서 내려 휠체어에 모시고 중국집에 들어갔지요. 정말 달게 드셨습니다. 제 꺼 덜어드린 것까지 다 드시고는 흐뭇한 미소까지 지으셨습니다.

차창 밖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얼굴이 모처럼 행복해 보였습니다. 아버지는 짜장면만큼이나 병원 바깥 공기가 그리웠던 모양입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만, 그게 아버지의 마지막 외식이었습니다.

, 이제 짜장면 넋두리 그만해야겠습니다. 아프신 노모 점심 차려 드릴 시간입니다. 오늘은 모처럼 짜파게티를 끓여볼까 합니다. 어머니가 잘 드시거든요. 근데, 살짝 귀찮은 생각이 드네요. 짜장면 배달? 짜파게티? 배달?

강화뉴스2021.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