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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궁지 은행나무 당신 찾아 나섰다가 엇갈릴까봐꼼짝 말고 있으라던 말씀 생각나 한 발짝 움직임 없이 이 자리에 700년당신 보려 늘어난 목 지탱하려고 땅 밑으로 발가락만 키웠습니다당신 몸 흙 속에서 느껴볼 수 있을까속절없이 발가락만 늘렸습니다. 멀리서도 잘 보이게 초록 옷 입고 까치발로 동서남북 바라보다가 하늘 눈물 주룩주룩 흘러내릴 때나도 함께 주룩주룩 흘렀습니다초록보다 잘 보일 게 무슨 색일까노란색 옷 갈아입고 기다립니다잉태 한번 못해 본 몸 정이 그리워 날개 젖은 까치 아이 품어줬더니어깨 위에 집 짓고 가족을 이뤄 이제는 한 식구가 되었습니다당신 계실 그 곳 알 수 있다면까치 전령 당장 보내 맞아 오련만 오실 당신 계신 데 알 수가 없어 애가 탑니다700년 풍상을 한 자리에서 그리움 하나로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자꾸.. 더보기
‘가꾸지’ 바닷길 역사산책③-광성보 더리미 장어집, 장어집, 장어집. 냄새만 맡고 달린다. 용진진, 용당돈대, 화도돈대, 오두돈대, 오늘은 그냥 지나쳐 간다. 저 앞에 어재연 장군 동상이 보인다. 광성보에 다 온 거다. 광성보는 강화의 국방 유적 가운데 가장 찾는 이가 많은 곳이다. 신미양요 때 미군과 최후의 격전을 벌인 곳이라는 역사성과 뛰어난 풍광이 어우러진 결과일 것이다. 조선후기 강화 해안에 12개의 진보가 설치됐다. 월곶진·제물진·용진진·덕진진·초지진·인화보·철곶보·승천보·광성보·선두보·장곶보·정포보, 이렇게 5진과 7보, 그래서 12진보이다. 지휘관의 직급이 가장 높은 곳은 월곶진이다. 월곶진은 연미정 아래 있었다. 갑곶돈대 쪽에는 제물진이 있었다.  여기 광성보가 설치된 것은 1658년(효종 9)이다. 광성보의 얼굴, 커다란 .. 더보기
아무튼, 거시기 고급 외제차 모는 어떤 젊은이의 횡포가 한동안 뉴스에 거듭 나왔지요. 그 젊은이는 운전 중 갈등 빚은 상대방에게 참으로 몹쓸 말을 했습니다.운전자끼리야 상스러운 욕설 오가도 그러려니 하겠습니다만, 이번엔 너무 심했습니다. 엄청 비싸다는 외제차 운전자가 상대방 차에 타고 있던 어린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이런 똥차 모는 너희 아빠는 거지다!아마도 외제차 운전자는 자기가 땀 흘려 돈 벌어 자동차를 마련한 게 아닐 겁니다. 부모가 사 줬을 겁니다. ‘부모 잘 만난’ 그 운전자가 상대방 운전자에게 그랬다지요. 나이만 처먹고 능력은 안 돼서 이런 똥차를 모는 거라고. 아이고, 참. 아들에게 비싼 차 사준 그 부모가 차라리 측은하게 느껴집니다.그런데 말입니다, 제가요, 한때 어느 외제차에 정신을 다 빼앗.. 더보기
《강화도, 근대를 품다》 뒤표지 글 역사의 섬 강화도, 전국에서 유일하게 프랑스와 미국의 침략을 잇달아 받았던 섬,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조약으로 근대를 여는 마당이 된 섬, 두드러진 구국 교육운동과 항일의병의 저력을 보여준 섬, 마침내 독립만세 뜨거움 가득했던 섬, 오히려 일본인 우습게 만드는 경제 독립운동이 일상이던 섬, 그래서 ‘NO JAPAN’의 선구가 되었던 섬. 이 섬 강화도엔 묘한 향기가 있다. 더보기
《숙종, 강화를 품다》 출판사(역사공간) 서평 중에서 숙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 바로 강화도다. 숙종은 오랜 세월 강화도에 공을 들였다. 즉위 초부터 ‘강화읍성’을 고쳐 쌓고 덕진진에 행궁을 짓게 하더니 세상을 떠나던 해에는 초루돈대를 완성하였다. 효종처럼 북벌을 밀어붙이지 않았지만 만약을 대비한 보장처를 갖추는 데 힘을 다했다. 진鎭·보堡 체제를 완성하고 수많은 돈대와 외성을 쌓았으며, 그것도 모자라 바다 건너 김포 땅에 문수산성을 쌓았다. 50개가 넘는 돈대 대부분이 숙종 때 세워졌다. 강화도 태생의 저자는 교사로 근무하며 강화도 역사를 통해 한국사의 깊이를 더하는 연구 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2013년에는 강화역사문화연구소에서 ‘숙종 시대의 강화도’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였으며, 100여 권 이상의 관련 문헌을 수집.. 더보기
《왜 몽골제국은 강화도를 치지 못했는가》 머리말 중에서 “동서양 많은 나라가 몽골이 쳐들어가자마자 무너졌습니다. 버텨낸 나라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고려는 수십 년 항쟁을 계속하며 나라를 지켜냈습니다. 이 책에 고려시대 대몽항쟁對蒙抗爭의 다양한 모습을 담았습니다. ‘백성의 힘’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항전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를 찾아갑니다. 대몽항쟁 기간 고려의 도읍지였던 강화도의 존재에 주목합니다. 몽골군은 전 국토를 짓밟았지만, 고려의 심장부인 강화도는 한 번도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강화도 조정이 오롯이 유지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끈질기게 항쟁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궁금했습니다. 몽골군이 강화를 치지 못한 이유가 뭘까? 강화군과 김포시를 잇는 강화대교 길이가 700미터에 불과합니다. 한강 다리들보다도 짧습니다. 아무리 물을 .. 더보기
《나는 오늘도 선생이다》, 교육 에세이 2006년입니다. 그해, 수필집 《가슴으로 크는 아이들》을 냈습니다. 첫 책은 아니지만, 첫 수필집이라 더 정이 가는 책입니다. 학교와 가정이라는 두 공간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좀 이르게 절판되었습니다. 아팠습니다. 2015년에 두 번째 수필집 《나는 오늘도 선생이다》를 냈습니다. 처음 맘먹었던 책 제목은 ‘벌거벗은 선생님’이었습니다. 이 책에 《가슴으로 크는 아이들》에 실었던 글의 일정 부분을 옮겨왔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오늘도 선생이다》는 3부로 구성했습니다. ‘교사가 교사에게’, ‘학부모님께 드리는 편지’, ‘사랑하는 나의 가족’입니다. 정호승 선생님께서 추천사를 주셨습니다. * 추천사 * 책을 읽다보면 책갈피에서 글쓴이의 향기가 솔솔 배어나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 더보기
엄만, 짜장면이 싫단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처럼 우리는 오래도록 짜장면을 짜장면으로 쓰지 못했습니다. ‘자장면’으로 쓰고 불러야 했지요. 한국어 맞춤법 규정이 그랬습니다. 2011년에야 ‘짜장면’이 표준어로 인정되면서 공식적으로 짜장면으로 쓸 수 있게 되었지요.  50년 전쯤에 머릿속에 각인된 단어 ‘태풍관’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아리랑골목 입구에 있던 강화 유일의 중국집이었죠. 강화 아이들이 가장 가보고 싶었을, 그러나 기껏 일 년에 한두 번 가는 선망의 짜장면집, 거기가 태풍관이었습니다.‘강화국민학교’ 다니던 때 학교를 마치면 가끔 태풍관으로 내려갔습니다. 주위를 잠시 맴돌고 나서야 집으로 가곤 했습니다. 왜 그랬나? 냄새 맡으러 간 겁니다. 주방에서 흘러나오는 짜장면 냄새를 코로 받아먹으며, 아.. 더보기
‘가꾸지’ 바닷길 역사산책② - 강화전쟁박물관 연미정에 안녕을 고하고 나와 한적한 해안도로로 들어선다. 시속 30km! 다행히 뒤따르는 차가 없어서 내 맘대로 천천히 간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 나도 살 좀 찌고 싶다. 아~, 공기 좋다. 벼 다 익은 들판이 아름답다. 벼는 뾰죽 선 초록 때도 이쁘고 저렇게 농익어 고개 숙인 노랑도 이쁘다. 아이구, 그러고 보니 모낼 때가 엊그제인데 어느새 벼 벨 때가 됐구나. 화살은 멀리 갈수록 느려지는데 인생은 멀리 갈수록 빨라지는 것 같다. 강화전쟁박물관 도착! 강화전쟁박물관을 포함한 일대 영역을 갑곶돈대라고 한다. 문화재(사적) 공식 명칭은 ‘강화 갑곶돈(江華 甲串墩)’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갑곶돈대에는 갑곶돈대가 없다. 진짜 갑곶돈대는 옛 강화대교 입구쯤에 있었다. 지금은 없..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