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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史

‘가꾸지’ 바닷길 역사산책② - 강화전쟁박물관

 

연미정에 안녕을 고하고 나와 한적한 해안도로로 들어선다. 시속 30km! 다행히 뒤따르는 차가 없어서 내 맘대로 천천히 간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 나도 살 좀 찌고 싶다. ~, 공기 좋다.

벼 다 익은 들판이 아름답다. 벼는 뾰죽 선 초록 때도 이쁘고 저렇게 농익어 고개 숙인 노랑도 이쁘다. 아이구, 그러고 보니 모낼 때가 엊그제인데 어느새 벼 벨 때가 됐구나. 화살은 멀리 갈수록 느려지는데 인생은 멀리 갈수록 빨라지는 것 같다.

강화전쟁박물관 도착! 강화전쟁박물관을 포함한 일대 영역을 갑곶돈대라고 한다. 문화재(사적) 공식 명칭은 강화 갑곶돈(江華 甲串墩)’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갑곶돈대에는 갑곶돈대가 없다. 진짜 갑곶돈대는 옛 강화대교 입구쯤에 있었다. 지금은 없다. 흔적도 거의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버렸다. 애초 여기를 사적으로 지정할 때, 이름을 잘못 정한 것이다.

잘못된 이름 말한 김에 하나 더하자.

강화전쟁박물관 지번 주소는 강화읍 갑곳리 1006번지이다. 갑곳리에 있는 갑곶돈대라! 甲串里갑곶리라고 해야지, 갑곳리라고 했을까? 이상하다. 우영우 변호사만 이상한 게 아니다. 월곳리도 마찬가지다. 강화읍 월곳리에 있는 월곶돈대라니. 물 건너 김포는 월곶면, 대곶면, 제대로 쓰고 있는데 강화는 왜 월곳리, 갑곳리인 걸까. 사실,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 갑곶돈대안으로 들어가 보자.

정문 통과하자마자 오른쪽에 세계금속활자발상중흥기념비라는 비석이 있다. 금속활자를 발명한 나라가 고려다. 대몽항쟁기에 강화에서 금속활자로 상정고금예문을 인쇄했다. 기록상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를 기념하는 비이다. 상정고금예문을 강화에서 여러 부 인쇄했으나 지금 하나도 전해지지 않는다. 그럼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은? 충북 청주에서 인쇄한 직지심체요절이다. 프랑스에 가 있다.

이쯤에서 OX 퀴즈 한번 하고 갑시다.

팔만대장경판에 새겨진 글자는 활자다? O? X?

정답은 X. 활자(活字), 활동하는 글자, 즉 움직이는 글자라는 뜻이다. 낱글자이다. 목판에 새긴 글자를 움직이게 할 수는 없잖은가. 예를 들어 목판에 고은형이라고 새긴 것은 활자가 아니다. ‘’, ‘’, ‘이렇게 작은 낱글자로 각각 만든 것이 활자다. 나무로 만든 건 목활자, 금속으로 만든 건 금속활자.

금속활자 기념비 뒤로 옛 비석들이 아주 많이 모여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이곳에 모아 정비한 것이다. 대개가 조선시대 강화의 수령 선정비 또는 불망비이다. 선정을 베풀어 주어서 고맙다는 의미로 선정비를, 그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뜻으로 불망비를 세운 것이니 선정비나 불망비나 사실은 같은 성격이다.

선정비가 있다고 해당 수령이 꼭 선정을 베푼 것은 아니다. 그냥 관례로 세운 것이다. 백성 괴롭히던 나쁜 수령의 선정비도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선정비 세우는 비용을 백성들에게 거두었다는 것, 그것도 아주 많이.

 

모든 비를 돌아볼 수는 없으니 딱 두 개만 보고 가자. 정면에 있어서 찾기도 쉽다. 삼충사적비와 금표다. 三忠事蹟碑(삼충사적비), 병자호란 때 강화도로 침입하는 청나라 군대에 맞서다 돌아가신 세 분의 충신을 기리는 비이다. 세 충신은 황선신·구원일·강흥업이다. 강화 사람 세 분 충신 덕분에 그나마 조선의 체통이 섰다. 그때 강화 지킬 책임자 김경징과 강화유수 장신은 제일 먼저 도망갔다.

가까이 가서 삼충사적비를 자세히 보라.

자 아래위로 깊게 홈이 팼다. 홈을 들여다보라. 검붉은 점 같은 게 보인다. 뭘까? 쇠못이다. 도대체 누가 언제 무슨 원한이 있기에 못을 박았을까. 참으로 못된 짓이다. 잔인한 짓이다. 비석이 부서질 위험이 커서 빼지도 못한다.

삼충사적비 옆에 禁標(금표)’라고 쓴 금표비가 있다. “이런 거 하지 마라.” 경고하는 비이다. 뭘 금지한 것일까. 금표라는 글씨 아래 작은 글씨로 새겼다. 放牲畜者杖一百 棄灰者杖八十(방생축자장일백 기회자장팔십). “가축을 놓아 기르는 자는 곤장 100, 재를 버리는 자는 곤장 80대를 때린다.”는 뜻이다. 가축 놓아 기르고 재 버리는 게 그렇게 큰 죄인가.

왜 금지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조선시대에 이 정도로 환경 보호에 투철했을 것 같지 않다. 아무래도 농사와 관련이 있는 듯싶다. 가축의 똥은 중요한 거름이다. 재도 거름이다. 이 둘을 섞으면 더 좋은 거름이 된다. 토지의 비옥도를 올리고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 실학자 박제가(1750~1805)북학의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중국에서는 거름을 금처럼 아낀다. 재를 길바닥에 버리는 일이 없다. 말이 지나가면 삼태기를 들고 따라가면서 말똥을 줍는다. 우리나라에서는 … 발에 항상 개똥이나 말똥이 밟힌다. … 재를 일 년만 모아도 몇만 섬은 충분히 될 것이다.

그런데 전부 버리고 이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몇만 섬의 곡식을 버리는 것과 같다. … 우리나라의 관리들도 백성들이 재를 함부로 버리는 것을 금해야 한다. 그러면 농사에도 도움이 되고 나라도 깨끗해지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박물관 실내로 들어가자. 원래 여기는 강화역사관이었다. 1988년에 개관했었다. 2층 한옥 형태인데 나무가 아닌 시멘트로 지었다. 2010년에 하점면 고인돌공원 앞에 강화역사박물관이 건립되면서 강화역사관은 사실상 기능을 잃었다. 그랬다가 2015년에 강화전쟁박물관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강화전쟁박물관 1층에 2, 2층에 2개 모두 4개의 전시실이 있다. 각 전시실은 선사와 고대, 고려, 조선, 근현대를 다룬다. 기본적으로 강화의 전쟁사를 주제이자 소재로 삼았다. 2층 제3전시실에는 신미양요의 상징과도 같은 수자기(帥字旗) 복제품이 전시돼 있다. 진품은 박물관 수장고에 모셨다.

가로, 세로 각 4m가 넘는 수자기는 신미양요 광성보 전투 때 어재연 장군이 세웠던 깃발이다. 미군이 광성보를 점령하고 탈취해서 가져간 것을 되찾아 온 것이다. 장기 대여 형식으로.

진품 수자기에는, 세탁한 것임에도, 곳곳에 피 얼룩이 남아있다. 칼에 베인 흔적도 있다. 끝까지 깃발을 지키려는 조선 병사들, 그들을 마구 찌르고 베는 미군들, 뿌려지는 피, 베어지는 깃발.

아이들 한국사 교과서에 수자기가 실렸다. 이병헌과 김태리가 주인공으로 나온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2018) 1회에 광성보 전투 장면과 수자기가 나와서 일반에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어재연 장군만 수자기를 쓴 게 아니다. 전국 각 군영의 대장기로 널리 사용되었다. 이순신 장군의 함선에도 수자기가 걸렸었다. 그런데 지금 남아있는 것은 전국에 딱 하나 어재연의 수자기뿐이라고 한다. 강화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관광 자원으로도 활용 가치가 충분하다. 경남 통영시는 이미 수자기를 여러 곳에 세워 활용하고 있다. 우리 강화는 고려궁지와 강화산성 등지에 자그마한 조선시대 군기들을 게양하고 있는데, 사실 군기의 원칙과 맞지도 않고 모양이 멋지지도 않다. 전국 어디나 있는 깃발이라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신중하게 장소를 선정하여 수자기를 세워보라. 강화만의 고유한, 역사의 빛을 뿜어낼 것이다.

강화문화원, 江華文化16.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