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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충렬사 안내판 해설 강화도 충렬사 앞에 선 안내판 전문입니다.  병자·정축호란(1636~1637) 당시 종묘의 위패를 받들고 세자빈과 원손을 수행하여 강화도로 피난하였다가 강화가 함락되었을 때 순절한 김상용을 비롯하여 공조판서 이상길, 장령 이시직, 돈녕도정 심현, 천총 구원일 등을 배향하기 위하여 인조 19년(1642)에 건립된 사당이다. 효종 9년(1658)에 사액되었다.1657년 훈련정 황선신, 훈련첨정 강흥업을, 1658년에는 금부도사 권순장, 생원 김익겸, 필선 윤전을, 영조 4년(1728)에 좌승지 홍명형을, 1787년에 광흥수 이돈오, 홍익한과 병자호란 때 근왕병을 모아 남한산성으로 가려다 순절한 윤계를 함께 추향하였다.건립 당시에는 현충사(顯忠祠)라 하였으나 효종 9년(1658)에 효종이 유수 허휘에게 현판과.. 더보기
내 새끼손가락의 매니큐어 지난 7월, 여름방학 하는 날이었습니다. 1교시 수업하러 교실에 들어갔습니다. 방학하는 날이라, 수업 분위기가 좀 어수선했어요. 종 치기 10분 전쯤에 수업을 끝냈습니다. 그리고 자유 시간을 주었죠. 의자에 잠시 앉았는데 무료하더라고요. 그래서 분단 사이를 오가면서 아이들이 뭘 하며 노나 보았습니다. 어이쿠, 이런! 여학생 한 녀석이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고 있는 겁니다. 노려보는 나의 눈과 녀석의 겁먹은 눈이 마주쳤습니다. 이제 겨우 고 1짜리가 매니큐어라니…. 혼내주려던 마음을 서둘러 버렸습니다. 방학 날 아닙니까. “선생님도 좀 칠해줄래?” 왼쪽 새끼손가락을 내밀었습니다. “예~?” 아이는 정말 놀랐습니다. “나도 손가락 하나만 칠해달라고.”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내 손가락에 .. 더보기
강화전쟁박물관(갑곶돈대) 삼충사적비에 박힌 쇠못 두 개 병자호란 때 강화도는 허망하게 무너졌다. 청군에 맞서 전투를 이끌어야 할 책임자, 김경징과 장신은 지 혼자 살겠다고 도망쳤다. 그럼에도 황선신·구원일·강흥업은 죽음으로 청군에 맞섰다. 이들을 기리는 비가 삼충사적비이다. 강화전쟁박물관 마당에 삼충사적비(三忠事蹟碑, 1733)가 있다. 비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오호라. 이 갑곶나루터 진해루 아래는 곧 삼충신이 죽음을 보이고 돌아간 곳이다. 죽은 날은 실로 정축년(1627) 정월 22일이었다. 슬프도다. 삼충신은 강화부 사람이었다. 중군 황선신은 분개하여 싸우다가 전사하였고, 우부천총 구원일은 칼을 쥐고 물로 뛰어들어 전사하였으며, 좌부천총 강흥업은 중군과 함께 전사하였으니, 이른바 삼충이라 한다.…” 갑곶돈대 수많은 비석 가운데 강화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 더보기
참성단이여, 고맙습니다 참성단에 성화가 올랐다. 육군 군악대의 반주에 맞춰 수많은 사람이 노래한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 장관 등이 개천절 경축사를 한다. 이어지는 만세 소리. 기념식이 끝나고 공군 비행기들이 마리산 하늘을 난다. 멋진 경축 비행에 사람들이 환호한다.상상이 아니다. 1949년 10월 3일, 참성단에서 실제 있었던 개천절 기념식의 모습이다. 정부 차원의 국가 행사였다. 지금은 참성단에서 채화해서 전국체전 장소로 성화가 봉송되는데 1949년 그날은 삼랑성 안에서 채화해 참성단으로 모셨다. 일 년 전 1948년 개천절 때는 신익희 국회의장을 포함해 30여 명의 국회의원이 참성단에 집결했다. 그때는 그랬다.일제에 맞서 싸우던 독립운동가들이 조국으로 돌아와 먼저 찾아오던 곳, 광복을 맞은 대한민국 정부 .. 더보기
6.25전쟁기 강화도 사람들의 삶(강영뫼 순의비 포함) 반공 교육의 명암산에서 낚싯대를 들고 내려오는 사람, 신발에 갯벌 흙이 묻은 사람, 담뱃값을 모르는 사람, “동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꼭 신고하라는 말을 무진장 듣고 읽으며 자랐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북한 간첩이라고 했다.나이 육십이 다 된 지금도 기억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반복 학습’을 당했던 모양이다. 초등학생 때인데, 참 궁금했다. 빨갱이는 얼굴이 빨개서 금방 알아볼 수 있을 텐데 굳이 낚싯대와 신발을 살필 필요가 있을까.분단된 나라에서 반공 교육, 안보 교육이 필요한 건 당연하지만, 과했다. “국가 안보”라고 쓰고 “정권 안보”라고 읽어야 했던 특정 시대도 문제였다. 아무튼, 이런 영향인지, 6·25전쟁 때 북한군이 남쪽 사람들을 보이는 대로 죽인 줄 알았다. 군인이건, .. 더보기
아버지의 샌들 구두 먼지를 털어내다가 쪼그려 앉았다.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난다. 출근할 때면 내 구두가 깨끗하게 닦여 있곤 했다. 아침 일찍 구두를 닦는 이는 아버지였다.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게 오죽 많았을까만, 불편한 몸으로 하실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반짝이는 구두는 일터로 나가는 아들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응원가였다. 그런데도 아들은 “구두는 뭐 하러 닦고 그래요.” 퉁명스럽게 말할 뿐,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 한 마디가 그리도 어려웠었나. 말년의 아버지는 여러 가지 병이 겹쳐 많이 앓으셨다. 걸음이 온전치 않아 자주 넘어지셨다. 여름 더위 제법이던 어느 날 아버지는 슬리퍼 신고 문밖에 나가셨다가 미끄러져서 얼굴을 심하게 긁혔다. 생채기로 범벅된 얼굴을 보니 화가 났다. “운동화 신지 왜 슬리퍼.. 더보기
그래 아들아 맘껏 울어라 오후 3시 30분. 전화벨이 울렸다. 이 시간에 전화할 일이 없는데…, 이상하다 여기며 네 전화를 받았지. “아빠!” 한 마디에 가득한 네 슬픔이 나에게 전해졌다. “아들, 왜 그래 시험 못 봤어?” 너는 대답 대신 울기 시작했다. 여태 그렇게 섧게 우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저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통곡소리는 아빠의 귀를 찌르고 가슴을 후비고 온몸을 아프게 했다. 나도 벽에 기대 그냥 울고 싶었다. 네 울음소리 잦아질 때까지 아빠는 그냥 그렇게 정물이 되어 서 있었다. 전화기를 귀에 댄 채.네가 울었던 게 언제였더라. 초등학생 때까지는 우는 모습을 보았다. 중학생이 되고는 울지 않았지. 그런데 이제 아빠보다 키가 한 뼘은 더 큰 고등학생이 되어 그것도 사내 녀석이 꺼이꺼이 우는구나. 그렇게 중간고사.. 더보기
"저에게는 70점이 보물입니다" 신학기에 다시 고3 담임을 하게 됐다.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제대로 하려면 의욕, 체력, 정보 수집력, 분석력 등이 필요한 것 같다. 나는 그중 뭐 하나 제대로 갖춘 것이 없어서 피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 것은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도와주며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따뜻한 동료 교사들이다. 이왕지사, 수험생의 조력자로서 제구실을 다하고 싶다.우리 학급 아이 서른아홉 명이 마음 덜 아프고 몸 덜 아프도록 보살피며 아비의 심정으로 살아가련다. 빼어나지 못해서, 그리고 말썽쟁이가 아니어서 외려 주목받기 어려운 평범한 아이들의 쓸쓸함, 그 외로움이 깊어지지 않도록 두루두루 품으며 살련다. 그렇게 봄이 가고 여름이 가면 가을도 오고 겨울도 오겠지.2월의 학교는 고요하.. 더보기
강화에 돈대는 도대체 몇 개? 강화에는 보물과도 같은 문화재가 즐비합니다. 저는 그 가운데 돈대에 주목합니다. 사실상 전국에서 강화에만 있습니다. 많아서 더 소중합니다. 하나보다 무리 지어 핀 코스모스가 더 예쁘고 하나보다 함께 어우러져 빛나는 별들이 더 설레는 법입니다. 동서남북 어느 해안에서든 만날 수 있는 돈대는 그래서 강화의 보물입니다.그런데 돈대에 대한 오해가 적지 않습니다. 자료를 찾다 보면, 이름이 바뀐 경우가 있고 건립된 돈대의 수도 제각각으로 나오고 심지어 건립 연대도 다르게 나오기까지 합니다. 어느 게 맞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돈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정리해보려고 합니다.우선 다음 글을 읽어보셔요. 공신력 있는 어느 기관 홈페이지에 ‘선수돈대’를 소개한 글입니다. 미리 말씀드리는데 모두 오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