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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샌들 구두 먼지를 털어내다가 쪼그려 앉았다.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난다. 출근할 때면 내 구두가 깨끗하게 닦여 있곤 했다. 아침 일찍 구두를 닦는 이는 아버지였다.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게 오죽 많았을까만, 불편한 몸으로 하실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반짝이는 구두는 일터로 나가는 아들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응원가였다. 그런데도 아들은 “구두는 뭐 하러 닦고 그래요.” 퉁명스럽게 말할 뿐,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 한 마디가 그리도 어려웠었나. 말년의 아버지는 여러 가지 병이 겹쳐 많이 앓으셨다. 걸음이 온전치 않아 자주 넘어지셨다. 여름 더위 제법이던 어느 날 아버지는 슬리퍼 신고 문밖에 나가셨다가 미끄러져서 얼굴을 심하게 긁혔다. 생채기로 범벅된 얼굴을 보니 화가 났다. “운동화 신지 왜 슬리퍼.. 더보기
그래 아들아 맘껏 울어라 오후 3시 30분. 전화벨이 울렸다. 이 시간에 전화할 일이 없는데…, 이상하다 여기며 네 전화를 받았지. “아빠!” 한 마디에 가득한 네 슬픔이 나에게 전해졌다. “아들, 왜 그래 시험 못 봤어?” 너는 대답 대신 울기 시작했다. 여태 그렇게 섧게 우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저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통곡소리는 아빠의 귀를 찌르고 가슴을 후비고 온몸을 아프게 했다. 나도 벽에 기대 그냥 울고 싶었다. 네 울음소리 잦아질 때까지 아빠는 그냥 그렇게 정물이 되어 서 있었다. 전화기를 귀에 댄 채.네가 울었던 게 언제였더라. 초등학생 때까지는 우는 모습을 보았다. 중학생이 되고는 울지 않았지. 그런데 이제 아빠보다 키가 한 뼘은 더 큰 고등학생이 되어 그것도 사내 녀석이 꺼이꺼이 우는구나. 그렇게 중간고사.. 더보기
"저에게는 70점이 보물입니다" 신학기에 다시 고3 담임을 하게 됐다.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제대로 하려면 의욕, 체력, 정보 수집력, 분석력 등이 필요한 것 같다. 나는 그중 뭐 하나 제대로 갖춘 것이 없어서 피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 것은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도와주며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따뜻한 동료 교사들이다. 이왕지사, 수험생의 조력자로서 제구실을 다하고 싶다.우리 학급 아이 서른아홉 명이 마음 덜 아프고 몸 덜 아프도록 보살피며 아비의 심정으로 살아가련다. 빼어나지 못해서, 그리고 말썽쟁이가 아니어서 외려 주목받기 어려운 평범한 아이들의 쓸쓸함, 그 외로움이 깊어지지 않도록 두루두루 품으며 살련다. 그렇게 봄이 가고 여름이 가면 가을도 오고 겨울도 오겠지.2월의 학교는 고요하.. 더보기
강화에 돈대는 도대체 몇 개? 강화에는 보물과도 같은 문화재가 즐비합니다. 저는 그 가운데 돈대에 주목합니다. 사실상 전국에서 강화에만 있습니다. 많아서 더 소중합니다. 하나보다 무리 지어 핀 코스모스가 더 예쁘고 하나보다 함께 어우러져 빛나는 별들이 더 설레는 법입니다. 동서남북 어느 해안에서든 만날 수 있는 돈대는 그래서 강화의 보물입니다.그런데 돈대에 대한 오해가 적지 않습니다. 자료를 찾다 보면, 이름이 바뀐 경우가 있고 건립된 돈대의 수도 제각각으로 나오고 심지어 건립 연대도 다르게 나오기까지 합니다. 어느 게 맞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돈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정리해보려고 합니다.우선 다음 글을 읽어보셔요. 공신력 있는 어느 기관 홈페이지에 ‘선수돈대’를 소개한 글입니다. 미리 말씀드리는데 모두 오류.. 더보기
진달래야 고맙다, 울 아버지 외롭지 않게 해서 "아·부·지."하늘을 향해 아버지를 불러본다.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이 간다. 산수유 먼저 노란 봄을 알리더니 질세라 붉은 진달래꽃 대궐을 이뤘다. "너희 덕분에 울 아버지 외롭지 않으리. 너희가 나보다 낫다." 나이 오십 되고 보니 눈시울이 젖을 때가 잦다.아버지는 강화에서 오래도록 관광회사에 다니셨다. 국내외 관광 안내를 나가시다가 나중에는 배차 업무를 주로 하셨다. 지리부도보다 더 정확하게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꿰뚫고 계셨다. 그 관광회사 기사님들은 관광객 모시고 멀리 나섰다가 길을 잃으면 무조건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금방 어디 어디로 가라고 알려주시곤 했다.아버지가 잠드신 충렬사 뒷산은 이제 여린 초록이다. 새순 올라온 잔디가 대견하다. 일흔 겨우 넘기시고 하늘로 가신 지 1년여. 그.. 더보기
고3 담임의 넋두리 퇴근길, 목욕탕에 들러 땀을 빼냈다. 때도 밀었다. 그래도 영 개운하지 않았다. 울적한 날이면 잠시 들렀다 가던 초지진에 내렸다. 벤치에 앉아 초지대교 야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찰랑대는 바닷물 소리가 이제는 춥다. 전쟁, 그래 전쟁이었다. 약 한 달간 계속된 4년제 대학 수시 1차 원수접수가 끝났다. 오늘 마지막 남은 한 아이의 자기소개서 입력을 도와주는 것으로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다. 오래도록 해오던 일을 끝내고 나면 시원섭섭하다고 우리는 말한다. 그런데 나는 시원하지도 섭섭하지도 않다. 그냥 맥이 빠지고 허탈하다. 몇 아이나 건질 수 있을까? 대한민국 고3 담임들의 공통된 심사가 아닐까 싶다. 우리 반 아이들 대부분이 적게는 한 대학, 많게는 여섯 개 대학에 원서를 썼다. 다해서 백 수십 통이다... 더보기
“떡 한 조각 더 가져와라” 좋은 사람들과 저녁밥 먹는 자리, 한 사람이 딸 자랑을 한다. 딸 없는 나는 말도 없다. 그저 부럽다. 머릿속에 뚝뚝한 아들놈을 떠올린다. 누가 그런다. “아들들은 문자해도 ‘응응’ 그런다데.” 누가 말을 받는다. “응응도 다행이지, 우리 애는 ‘ㅇㅇ’이야.” 나는 속으로 말한다. ‘우리 애는 답도 없어요.’ 딸!, 그래, 나도 딸 같은 녀석들이 있었다. 교직에서 물러나기 전, 우리 반 여학생들을 딸로 여겼다. 붙임성 있는 아이들은 정말 딸처럼 굴었다. 한 아이가 떠오른다. 십여 년 됐으려나. 그때 나는 고3 담임이었다. 성희가 교무실에 자주 놀러 왔다.어느 날 성희가 홍삼즙 몇 봉지를 들고 와서 먹으란다. 이게 웬 거냐고 물었더니, 이 녀석 왈, “집에서 훔쳐 왔어요.” 어이없다. “야 인마, 엄마 아.. 더보기
학교여 안녕히 오전이면 끝낼 줄 알았다. 아니었다. 오후 늦도록 이것저것 버리기에 열중했다. 서랍장 정리에 책상 정리, 근 30년 세월이 쌓인 흔적을 지우려니 그게 쉽지 않았다. 당시에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모아두었던 것들이 이제 보니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짐 정리가 자꾸만 지체된 것은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나오는 아이들의 쪽지와 편지 때문이었다. 2014년 것도 있고 2000년 것도 보인다. 하나하나 다시 읽어보게 된다. 텅 빈 교무실에 홀로 앉아 가물가물한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다 보니 어느덧 해가 기운다. 아이들은 민망하게도 나에게 고맙다고 썼다. 편지의 마지막은 대개가 “사랑합니다.” 사랑한다는 소리를 평생 듣고 살았으니 난 행복한 교사였다. 이 행복을 포기하고 학교를 떠나는 이유는 건강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 더보기
강화도조약, 그게 아니다 ① 강화 진무영 열무당 지난밤, 인터넷을 검색하다 강화도조약과 관련한 사진 ①을 보았다. ‘수호 조약 체결을 강요하는 일본군[강화부 연무당]. 1876년 촬영.(ⓒ국립중앙박물관)’이란 설명이 있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대백과사전)에 실린 사진과 글이다. 하지만 사진 속 배경은 연무당이 아니라 열무당이다. 대백과사전에서 밝힌 출처를 따라 국립중앙박물관 사이트로 들어가 봤다. 역시나 같은 사진에 같은 설명이 있었다. 열무당을 연무당으로 표기한 것은 단순 실수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사소해 보이는 오류의 부정적인 영향력이 너무 크다.연무당(鍊武堂)과 열무당(閱武堂)은 강화를 지키던 군영인 진무영의 부속건물이다. 연무당은 군인들이 훈련(訓鍊)하는 공간이고, 열무당은 지휘관이 사열(査閱)하고 지휘하는 공..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