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全

《연산 광해 강화》, 연산군과 광해군을 말하다 연산군과 광해군, 굳이 덜어내지 않고 더하지도 않고 그이들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강화도와의 인연도 돌아본다. 다음은 《연산 광해 강화》의 서문이다.  들어가는 글 연산군, 광해군.100년의 시차를 두고 태어난 두 사람.한 사람은 조선의 열 번째 임금, 한 사람은 열다섯 번째 임금.27명 조선의 군주 가운데 ‘반정’으로 폐위된 비운의 주인공.이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 강화에 유배되었다는 것. 성공한 사람보다 실패한 사람에게서 배울 점이 더 많은 법.역사에서 배운다는 것은 살아낼 교훈을 얻는다는 것.하지만, 교훈을 목적으로 역사를 읽는다는 건 좀 권태로운 일.그냥 읽으며 산 숲에서 밤알 줍듯, 알아가는 재미도 소중하다.독후, 딱이 교훈 같은 게 남지 않아도 아무 문제 없고. 읽다가 문뜩 멈추고저 사람, 흉.. 더보기
강화에 왔던 조선 임금 이야기 조선의 임금은 모두 27명인데, 이들 가운데 우리 강화에 왔던 임금은 누구누구일까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제가 확인해 본 이는 일단 태종, 연산군, 광해군, 인조, 효종, 영조, 철종 정도입니다. 인조 빼고 나머지 임금들은 즉위하기 전에 왔거나 폐위되고 나서 강화 땅을 밟았습니다. 태종(이방원)이 임금 되기 전 어느 해엔가 강화에 왔습니다. 《세종실록》에, 임금들이 해마다 봄·가을에 대언(승지)을 마리산 참성단에 보내 초제를 올리게 했는데, 이방원도 대언 신분으로 왔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연산군과 광해군은 왕위에서 쫓겨나 귀양 왔습니다. 연산군은 교동에 갇힌 지 불과 2개월 만에, 마누라가 보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묘를 그대로 교동에 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