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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굴뚝 이제 봄인가보다. 따듯한 날씨. 미세먼지 나쁘다는데 이제 웬만하면 신경 쓰이지 않고. 북산 한 바퀴 돌아볼까 하다가 그냥 동네 한 바퀴 돌았다. 강산이 바뀌고 또 바뀌고… 눌러사는 동네에서 처음 보고만 여전히 살아있는 굴뚝. 들어야 들리고 보아야 보인다. 더보기
사람 향 그윽한 녀석 전화기로 들려오는 쾌활한 음성, 늘 그렇듯 듣기만 해도 기운 나는 목소리다. 주인공은 친구 영근이다. “초등학교 동창 여자애가 너 만나 찬 한잔 하고 싶단다. 어떡할래? 니가 첫사랑이었대 인마. 흐흐~” 녀석, 오지랖하고는….영근이는 태어날 때부터 두 다리를 못 썼다. 목발 없이 설 수 없고, 앉아서는 두 팔로 방바닥을 밀며 움직인다. 그럼에도 결석 없이 초·중·고를 마쳤다. 손을 떨어 주판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그땐 학교에서 주판도 가르쳤다.). 그런데 이 친구 뒤늦게 미술을 시작하더니 급기야 지방의 미술대학에 진학했다. 나는 인근 사범대학에 들어갔다. 그냥 심신이 고달프던 어느 날, 친구 자취방에 갔더니 영근이는 힘들게 앉아 손빨래를 하고 있었다. 삼십 년이 훨씬 넘은 그때, 빨래하던 영근이의 모습.. 더보기
나무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다 강화 교동도 화개산 정상부근에 암각화가 있다고 해서 사진 찍으러 갔다. 유심히 보니 암각화 밑으로 기암절벽이 펼쳐져 있다. 겨울이라서 그게 보였다. 겁이 좀 나고 해서 망설였다. 내려가 볼까 말까. 결국, 카메라 들고 내려갔다. 낙엽이 미끄러워 몇 번 엉덩방아를 쪘다. 바위벽은 생각보다 웅장했다.사진을 찍으려다 나뭇가지가 가려서 포기하고 다른 장소를 찾았다. 역시 나무가 문제다. 구도가 괜찮다 싶으면 영락없이 나뭇가지가 앞을 막았다. 꺾어버릴까, 하다가 마음을 바꿨다. 쟤네들도 생명인데, 사진 한 장 찍자고 분질러버릴 수는 없었다. 겨우 적당한 장소에서 몇 장 찍고 두루두루 구경했다.이제 올라가야지. 그런데 올라가는 게 장난이 아니다. 내려올 때는 몰랐는데, 경사가 너무 심해서 위험했다. 손까지 땅을 짚.. 더보기
산사에서 만나는 글귀 부족한 것은 소리를 내지만 그러나 가득차게 되면 조용해진다 어리석은 자는 물이 반쯤 남은 물병과 같고 지혜로운 이는 눈물이 가득 담긴 연못과 같다 -수타니파타 정호승 시인의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를 읽다가 만난 글이다. 운문사 게시판에 있는 글이라고 한다. 생뚱맞게도 난 강화의 어느 산사(山寺) 찻집에 붙어 있던 글이 떠올랐다.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 녹화해서 인터넷에 공개 합니다 더보기
'욱일승천기' 대신 '일제기'라고 쓰자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한·일전 응원 때 등장했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가 여전히 뜨겁다. 플래카드를 떼어버린 축구협회의 처사에 뭘 그 정도 가지고 그랬나 싶다가도, 스포츠는 그냥 스포츠여야 한다는 FIFA적 관점도 공감하게 된다. 이기면 신나고 지면 속상하지만, 질 수도 있는 것이 스포츠다. 일본 응원단에서 '욱일승천기'를 흔들어댄 것, 우리 플래카드 내용을 문제 삼아 한국 국민의 '수준' 운운한 일본 각료의 발언에서는 화가 나기보다 왠지 그들의 열패감을 보는 듯해 측은하게 들린다.그런데 이 사건을 보도하는 우리 신문, 방송들은 하나같이 '욱일승천기'라고 한다. 일본인들조차 줄여서 '욱일기'라고 부르는 것을 우리 언론은 왜 정성스럽게 꼬박꼬박 '욱일승천기'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욱일승천(旭日.. 더보기
‘문화재’ 이야기 국보 1호 남대문, 보물 1호 동대문, 사적 1호 포석정. 외우던 기억이 나실 겁니다. 참성단이 사적 136호인 것도 알고 계신 분이 계실 거예요. 그런데, 이제는, ‘고려궁지가 사적 몇 호였더라?’ 찾아볼 필요가 없습니다. 2021년 11월 19일부터 문화재 지정번호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제도가 변경됐거든요. 그때 문화재청이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문화재 지정번호는 국보나 보물 등 문화재 지정 시 순서대로 부여하는 번호로, 일부에서 문화재 지정순서가 아닌 가치 서열로 오인해 서열화 논란이 제기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에 문화재청은…‘지정(등록)번호’를 삭제하고 문화재 행정에서 지정번호를 사용하지 않도록 정책을 개선하였다.” 이를테면 보물 30호가 보물 70호보다 더 가치 있는 문화재라고 오해하는 이들이.. 더보기
교사, 말하기의 어려움, 또는 무서움 누구나 말실수를 한다. 어쩔 수 없다. 말실수가 아닌 듯 한데 결과적으로 말실수인 경우도 있다. 그래도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은 더 말을 조심해야 한다. 가르치는 대상이 어릴 수록 특히 더 말을 조심해야 한다. 오늘 아침 신문을 읽다가 다시 그런 생각을 했다. 대학가 안팎에 깊숙이 스며든 서열에 대한 인식은 재수 계획이 없던 이들의 마음까지 돌리고 있다. 지난해 22학번으로 지역거점 국립대 생명과학부에 진학한 조성진(가명·20)군은 입학식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아 반수를 결심했다. 그가 입학한 대학은 광역시 소재가 아니었고, 서울에서 제법 거리가 먼 곳이었다. “필수교양 과목 첫 수업을 듣는 날이었어요. 교수님이 ‘이 대학을 다닌다고 너희들 인생이 망한 건 아니다. 실망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하시더.. 더보기
광수 생각 교사 시절, 나를 뜨끔하게 했던 '광수 생각' 한 컷. 더보기
“선생님은 여자 마음을 너무 몰라요.” 오늘도 10시 넘어 학교를 나섰다. 고단한데, 심란하기까지 하다. 요즘은 대입 수시1차 시험 기간이다. 적성, 논술, 면접 등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내일, 모레 이틀 동안, 우리 반에서만 열 명 정도의 아이들이 전장으로 나선다. 며칠째, 면접 볼 아이들을 모아 준비를 시키고 있다. 오늘도 마찬가지. 이미 두어 번 낙방의 아픔을 겪은 ○○가 면접 연습하다가, 눈가가 젖더니, 통곡이 되었다. 겨우 수습된 뒤, △△를 불러 면접을 시작했다. 허, 이 녀석도 이내 눈물범벅…. 고등학교 3년 동안 한 번도 울지 않은 아이들을, 둘씩이나 울렸다. 그치게 하려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얼마나 아팠기에, 얼마나 참았기에…. 면접 연습 중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긴 했지만, 혹독하진 않았다. 내가 던진 몇 마디 말 가운데 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