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학교 경남 마산에서 1학년 담임을 할 때다. 한 녀석이 나에게 부탁을 했다. 매일 영단어집 몇 쪽씩 시험을 보고 틀린 개수대로 회초리를 쳐달라고.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지만, 공부하겠다는 열의가 예뻐서 그러마 했다. 아침마다 복도에서 녀석의 영단어집을 받아들고 문제를 냈다. 많이 틀렸고 많이 때렸다.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틀리는 횟수가 줄어들더니 결국은 단어집을 다 떼었다. 녀석은 원하던 학과에 진학했다.
지금 우리 반 아이가 나에게 부탁을 해왔다. 일주일에 한 번씩 계획대로 공부했는지 확인해주고 계획을 이루지 못했을 때 회초리로 때려달라고 했다. 이제 늙다보니 회초리 들기가 싫다. 더구나 인권조례라는 것으로 체벌이 금지됐는데 새삼 매를 들기도 좀 거시기하다. 더구나 이번 녀석은 여자아이다. 그런데 나는 오케이 하고 말았다. 녀석의 간절한 눈빛 때문이었다.
첫 주도 둘째 주도 녀석은 자신이 세운 계획을 이루지 못했다. 회초리는 필요하지 않았다. 녀석이 비현실적으로 너무 많은 분량의 공부를 계획했기 때문이다. 공부하겠다는 생각만 앞서고 마음만 분주해서 실현 불가능한 계획을 세우고 그걸 실천하지 못한 데서 오는 불안감이 쌓이는 악순환.
나는 공부 분량을 최대한 적게 잡도록 했다. 이제 아이는 제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계획을 세우고 공부한다. 그런 아이를 나는 때렸다. 제법 세게 엉덩이 세 대. 일요일마다 집에서 TV 보며 뒹굴게 된다고 걱정만 하면서, 그다음 일요일에도, 또 그다음 일요일에도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노는 것도 아니고 공부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함. “어쩌냐, 큰일이네, 그러게 일요일에도 학교에 나오라니까.” 내 말을 듣던 녀석이 매를 맞겠다고 했다.
녀석은 닭똥 같은 눈물을 주르륵. 나도 학생 때 맞아봐서 안다. 녀석은 아파서 우는 것이 아니리다. 녀석을 교실로 보냈다. 마음이 무거웠다. 무슨 사고를 친 것도 아니고, 공부하겠다는 고운 아이를 아프게 때려주고 나니 그냥 아팠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하니 책상에 편지랑 음료수 한 병이 있다. 녀석이 갖다놓은 것이다. 편지 속에서 녀석은 말한다.
“…맞을 때 아프긴 했지만 선생님 실망시켜드린 것 같아서 더 죄송스럽고 그게 더 속상했어요.…”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