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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敎

국회의원 자료 요구에 수업도 못해서야

교사들이 각종 잡무에 시달린다는 얘기는 뉴스도 아니다. 이런 잡무가 줄기는커녕 점점 늘어나는 현실이다. 공문 처리 때문에 수업을 못하게 되는 황당한 일까지 생긴다. 여기에는 국회의원의 자료 제출 요구도 한 몫하고 있다.

주로 국정감사에 임박해 이런 제목의 공문을 받게 된다. '(긴급)○○○의원 요구 자료 제출'. 꼭 앞에 '긴급'이란 말이 붙는다. 일반 공문은 제출 마감일이 대개 일주일 이후로 잡힌다.

그러나 국회의원 요구 자료는 오늘 보내놓고 내일까지 보고해달라 한다. 오전에 공문을 보내놓고 당일 오후까지 제출해야 할 때도 있다. 수업 때문에 못 보내면 교육청에서 계속 독촉 전화가 온다.

또한 국회의원이 요구하는 내용은 대부분 많은 시간을 들여야 작성할 수 있는 것이다. 3년 심지어 5년간의 각종 통계를 요구한다. 해마다 담당 교사가 바뀌는 현실에서 5년간 통계를 몇 시간 내에 뽑아 보내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오늘은 '도의원 요구 자료 제출'이라는 공문도 왔다. 2006~20105년간 전문계와 인문계 간의 전입·전출 현황을 요구했다. 그나마 이 정도면 쉬운 일에 속한다.

정확한 통계를 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학생들의 졸업 후 현황 자료의 경우 3년간 대학 진학자 수는 정확히 작성하겠지만 입대자·취업자 수는 대충 적을 수밖에 없다. EBS 수능방송을 듣는 학생이 몇 명인지 조사해 통계를 내려면 최소 이틀은 걸릴 텐데 공문을 받은 당일 보고하라면 정확한 수치가 나오겠는가?

어쩔 수 없이 어림짐작으로 마감할 수밖에 없다. 결국 국회의원은 부정확한 통계 자료를 가지고 국감에 임하게 된다. 만약 엉터리 통계를 바탕으로 어떤 교육정책이 만들어진다면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즉흥적으로, 일회성 질문용으로 쓰고 버릴 자료 요구는 자제했으면 좋겠다. 제도 개선이나 정책 입안을 위해 꼭 필요한 자료라면 충분히 사전 기획한 후 시간적 여유를 두고 요구하길 바란다.

이왕이면 공문에 어떤 목적으로 어떤 일에 쓰일 자료인지 밝혀주면 더 좋겠다. 그러면 교사들은 더욱 꼼꼼하고 정성스럽게 통계를 작성하게 될 것이다.

조선일보, 2010.10.29.

(그림 출처 : 국회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