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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常

어느 일요일 목욕탕 풍경

‘이발은 예술이다’

우리 가족이 자주 가는 오리정 근처의 대중목욕탕. 거기 이발소 거울 위 액자에 이발은 예술이라고 쓰여 있다. 볼 때마다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이발사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저 한마디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손님 머리를 자르고 있는 그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맑고 따뜻하다. 어르신들께 이발비의 30%를 깎아주는 미덕도 저 자부심에서 나왔으리라.

세상에 좋은 직업이 있으면, 좋지 않은 직업도 있기 마련이다. 세속적인 잣대를 내려놓고 생각해보면 좋은 직업과 좋지 않은 직업의 기준은 내 마음속에 있다. 지금 내가 내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임한다면 나의 직업은 좋은 것이 되고, 그렇지 못하다면 좋지 않은 직업이 된다. 내 직업이 좋지 않다면 개인의 불행이요 가족의 불행이고 또 이 나라의 불행이다. 그래서 직업에 대한 자부심은 소중하다.

때를 민다. 때와 함께 땀이 뚝뚝 떨어진다. 아무런 가식도 허위도 없다. 하긴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다 순수한, 거짓 없는 세상이다. 넉넉한 사람도 부족한 사람도 모두가 비슷한 평등한 공간, 알몸의 공간, 여기가 대중목욕탕이다. 어느새 제 아비보다 커버린 막내 녀석 등을 밀면서, 나를 닮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앙상한 내 몸을 닮았다면, 참 속상했을 것이다. 몸 때, 마음 때, 시원하게 털어내고 밖으로 나왔다.

역시나 어머니와 집사람은 약속 시각을 넘기고 있다. 어머니가 물 안마를 아직도 끝내지 못했나보다. 로비 의자에 앉아 TV에 눈을 두고 있는 이들은 대개가 남자. 어느 집이나 여자가 늦게 나오는 모양이지. 그런데.

한 아낙네, 남편에게 엄청 화를 내고 있는데, 남편은 죄인 되어 미안해 죽겠다는 표정이다. 그 집은 아내가 먼저 나왔고, 남편이 너무 늦게 나왔다. 남편은 목욕탕 안에서 잠이 들어 자신을 찾는 방송도 듣지 못했다. 약속보다 두 시간이나 늦었다. 혼날만하다. 그래도 많은 사람이 보고 듣고 있는데 그렇게 거칠게 남편을 몰아세워야만 하는지, 남편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더럽고 치사한 일 수없이 겪으며, 때려치우고 싶은 맘 꿈틀거려도, 먹여 살려야 할 식구들 떠올리며 어금니 물고 버텨온 세월. 가장이라는 자리는 보람이지만, 때론 견디기 어려운 부담이기도 했더라. 일주일 내내 직장일로 고단에 찌든 남편, 일요일만큼은 잠이나 실컷 자고 싶건만, 등산 노래 부르는 아내를 거역할 수 없어, 터벅터벅 따라나섰던 문수산 산행. 아내의 발걸음은 가볍고 남편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구나. 귀갓길 점심 겸 저녁 겸 추어탕 한 그릇 먹고 목욕탕에 들러 한 십분 눈 붙이려다가 그만 너무 편히 잠들어버렸다. 그래서 이렇게 혼나고 있다! 어머니 나오시길 기다리며 내 맘대로 소설을 쓴다.

아낙이여, 남편을 용서하시라. 이해하시라. 그리고 새삼스럽겠지만, 연구해보시라. 남편이 직장 일을 즐겁게 하고 있는지, 자부심을 품고 하는지. 자부심은 남편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니. 그대, 아내의 역할도 중요한 법이니. 남편의 기를 살리는 것도 당신이요, 남편의 기를 죽이는 것도 당신이니까.

그나저나 우리 어머니는 왜 아직도 안 나오시나. 오늘 유난히 늦으시네. “엄마한테 문자 보내봐라. 언제 나올 거냐고.” 아들 녀석에게 이른다. 가만있자. , 나는 어떤가. 고등학교 교사라는 직업으로 20여 년을 살아온 나는? 아프도록 가슴을 쳐댄 일이 왜 없으랴. 남몰래 눈물 삼킨 일이 어찌 없으랴. 그래도 교사가 좋다. ‘나는 가수다를 흉내 내서 나는 교사다.”라고 외쳐봐? 아니다. ‘교육은 예술이다이게 더 근사하다. 그래 맞다. 교육도 예술이다. 예술~.

김포신문, 2012.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