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작은 아이가 아침 먹으라며 흔들어 깨운다. 눈뜨고 보니 녀석은 어느새 세수하고 옷까지 챙겨 입었다. 어디 가냐고 물었더니 대학탐방 간다며 멋쩍게 웃는다. 무슨 소린지 금방 알아들었다. 가슴이 짠했다. “누구랑 가니?” “나 혼자 가지 뭐.” 녀석은 대학교 좋은 기운 좀 받아 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작은 아이는 지금 고3, 엊그제 수능을 치렀다. 하지만 수시 전형에 모든 신경이 다 모여 있다. 6개 대학에 원서를 썼지만, 지금까지 결과가 신통치 않다. 용케 아이가 정말 원하는 대학 한 곳에 1단계(서류 전형) 합격이 돼서 다음 토요일에 면접을 보게 됐다. 일주일 후면 당연히 시험 보러 갈 대학인데, 오늘 미리 ‘학교 구경’ 간 것이다. 여기 강화도에서 그 대학까지 꽤 먼 곳인데 얼마나 간절했으면 저럴까 싶다.
수능 전날 밤 아이가 어딜 다녀왔는지 얼굴이 빨갛게 얼어서 들어왔다. 학교 기숙사에 있는 친구들에게 갔었다고 했다. 내 직장 동료들이 자식 놈 수능 잘 보라며 초콜릿을 챙겨줬는데, 그걸 나눠 들고 집에 못 가 초콜릿 받지 못한 친구들 먹이려고 학교 다녀온 것이다. 얼마 후 아이가 전화기를 들여다보다 친구들이 보낸 사진을 보여준다. 기숙사 방에 여럿이 모여 초콜릿 상자 들고 환하게 웃는 사진이다. 녀석들….
어제는 저녁에 자꾸만 전화기를 들여다보며 “왜 연락들이 없지, 안됐나?” 하며 초조해 한다. 자기 반 친구 몇이 지원한 대학 발표하는 날인데 혹여 떨어졌는지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오지랖이 넓어도 너무 넓은 거다. 그렇지만, 애 하는 짓이 밉지 않다. 부모의 기대만큼 공부를 잘하지 못했지만, 인성만큼은 부끄럽지 않게 갖춰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다.
녀석은 6개 대학 모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를 지원했다. 난 부모 따라 교사하겠다는 아들의 선택이 반갑지 않았다. 좀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의 의지가 워낙 강해서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 아이의 사람 냄새 속에서 희망을 본다. 실력은 이제부터 차곡차곡 쌓아 가면 될 것이다.
아이가 수시에서 떨어질 때마다 나는 “대학은 인연이란다.” 말하곤 했다. 그저 위로 삼아 한 말이 아니다. 진심이다. 인연은 빨리 올 수도 있고 좀 늦을 수도 있다. 소위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더라도 인연이 닿은 그 대학에서 자신을 키워간다면, 뜻도 꿈도 결국에는 이루게 되리라 믿는다. 그렇다. 난, 내 아들을 믿는다. 어느새 어둑해졌다. 바람이 더 차다. 승철이, 이 녀석 점심은 챙겨 먹은 건지….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