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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문화유산센터 제작, 강화도 고려궁궐 디지털 영상 고려 대몽항쟁기, 도읍지 강화도에 있었던 궁궐을 디지털로 재현한 동영상이다. 인천문화재단의 인천문화유산센터가 제작했다. 다음이나 네이버 등에서 '인천 문화유산 디지털 아카이브'로 검색하면 해당 홈페이지로 연결된다.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다. '인천 문화유산 디지털 아카이브'에는 고려궁궐 영상 외에도 강화 돈대들의 3D 영상을 비롯해 유익한 시청각 자료가 많다. 더보기
신문지엔 태극기를 그릴 수 없다! 3.1운동 때 황해도 안악군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나오는 얘기다. 어린 학생 100여 명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시위를 벌였다. 8살부터 15살까지의 학생들이었다. 일경이 아이들 몇을 붙잡아 갔다. 배후에 시위를 조종한 어른이 있을 것으로 보고 캐내려고 했다. 아이들을 위협해봤지만, 효과가 없었다. 일경은 아이들에게 태극기를 그리게 했다. 태극기를 그리지 못하면 시위 때 흔들던 태극기는 아이들이 만든 것이 아니다. 어른이 전달해 준 것이 된다. 그 어른을 잡으면 된다. 일경의 기대와 달리 아이들은 완벽하게 태극기를 그렸다. 그런데 태극기를 그릴 줄 아는가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 있었다. 처음 일경이 아이들에게 나눠준 것은 낡은 신문지였다. 거기에 그리라고 했다. 그러.. 더보기
강화작은영화관에서 '밀수'를 보았다 주말마다 극장 가서 영화 두 편씩 보던 시절이 있었다. 언제부턴가 멀어졌다. 그나마 코로나로 발길을 끊었다. 여러 해 지나서, 이번에 극장을 찾았다. 강화작은영화관. 리모델링해서 깔끔하고 영화비도 여전히 착하다. 애들 어릴 때는 의무감에서도 서울이나 일산 큰 영화관에 데려가곤 했지만, 이제 나에게 동네 작은영화관이면 충분하다. 밀수, 밀수를 봤다. 뭐, 엄청 좋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적당히 좋았다. 재밌었다. 전개 경쾌하고 음악도 친근하고 영화 속 섬 풍경도 이뻤다. 난 너무 치밀한 영화, 머리싸움 해야 하는 영화, 지나치게 음습한 분위기 영화를 잘 보지 않는다. TV드라마로 치면, ‘갯마을 차차차’ 같은 걸 선호한다. 밀수는 취향에 맞았다. 여자가 남자보다 ‘의리’가 강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 더보기
광해군, 강화에 갇히다 땅굴 파는 사내가 있었다강화도호부성 서문 안 어느 집, 한 사내가 집 밖으로 나가려 땅굴을 판다. 사방은 겹겹 울타리로 막혔고 지키는 이들까지 있으니 달리 방법이 없었다. 삽 한 자루조차 없다. 땅을 파는 장비는 가위와 인두 정도. 벌써 며칠째 흙을 찍어내고 있다. 흙과 땀으로 얼룩진 스물여섯 살 사내의 눈빛이 처절하다. 사내의 이름은 이지. 폐세자 이지(1598~1623)이다. 폐세자라면? 그렇습니다. 광해군의 아들입니다. 무탈했다면, 아버지를 이어 조선의 제16대 임금이 됐을 사람입니다. 인조반정으로 쫓겨난 광해군이 강화도에 위리안치되었습니다. 연산군은 홀로 교동에 유배됐었지만, 광해군은 가족과 함께 왔습니다. 광해군과 폐비가 강화부성 동문 쪽에 갇혔고 폐세자와 폐세자빈은 서문 쪽에 갇혔습니다. 이때.. 더보기
역사가 예술이 되다, 완주 불명산 화암사 華嚴寺는 알아도, 花岩寺는 몰랐다. 친구가 화암사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줬다. 보자마자 마구 끌렸다. 花岩寺, 꽃바위! 雨花樓, 꽃비! 이름마저 매혹적이다. 나이를 먹으며 점점 장거리 운전이 부담스럽고 버겁다. 가 봐? 이 더위에 그 멀리? 결국, 떠났다. 그리고, 마침내, 화암사 알현! 아. 아. 거기 불명산, 높고 높고 깊고 깊은 딱 그 자리 아담한 절집이 앉아 있었다. 돌담 안팎으로 상사화 무진장이었다. 우화루부터 말문이 막혔다. 수행이라 할 것도 없이 그냥 묵언이다. 절 마당이다. 공간을 아끼고 아낀 건물 배치, 흐트러짐이 없다. 여느, 규모 큰 절들을 외려 압도하는 아우라, 뿜뿜. 속세 ‘진짜’ 끊어낸 求道의 공간 극락전. 뭐라 말할 수가 없다. 오죽하면 국보가 되었으랴. 한 조각 그림까지 그대로.. 더보기
반나절, 교동을 보았습니다 길었던 먹구름 가고 흰 구름이 왔습니다. 오랜만에 교동에 갔습니다. 철책 넘어 북한 땅에도 구름꽃이 피었습니다. 바다였던 교동 들판, 여전히 바다입니다. 벼들은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저 붉은 나무재, 강화에선 ‘경징이풀’이라고 불렀답니다. 병자호란의 참상이 스몄습니다. 김경징, 강화 지킬 책임자가 청군 닥쳐오자 어머니 버리고 아내도 버리고 홀로 달아났습니다. 청군의 칼날에 강화 갯가는 피로 물들었습니다. 대룡시장은 여전했습니다. 평일, 무더위임에도 관광손님이 많았습니다. 갈때마다 변합니다. 먹을거리 파는 곳이 더 늘었습니다. 조금 색다른 먹거리장터로 변모하는 중인 것 같습니다. 교동주민에게 물건 파는 가게는 이제 몇 남지 않았습니다. 커다란 철물점 있던 자리는 카페가 된지 오래입니다.. 더보기
어느 교사의 죽음 서울 서이초등학교. 2023년 7월 18일. 이제 겨우 2년차 병아리 여교사가 목숨을 버렸다. 그것도 학교에서. 온갖 說이 흐른다만, 아무래도 너무 버거운 업무와 가혹한 학부모 민원이 겹쳐 이 어린 선생님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 같다. 아침에 이 사건을 읽었는데, 늦은 밤 지금까지 나는, 아프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어쩌다가 세상이 이렇게 됐을까. 학교가 이렇게 됐을까. 갑질 학부모의 잘못이 크다. 못지않게 학교 측의 잘못도 있다고 생각한다. 비단 서이초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렵고 힘든 행정 업무, 어렵고 힘든 학년의 담임을 신규교사나 다른 학교에서 새로 오는 교사에게 떠넘기는 게 학교 사회에서 관례처럼 돼 있는 게 사실이다. 대개의 학교가 그런 것 같다. 그래, ‘기득권’은 어느 정도 인정되는 게 적.. 더보기
별 없는 하늘에 달 하나 피었다 더보기
사랑하며 섬기는 사랑교회 나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다. 천주교 신자도 아니다. 그런데 어제, 어찌어찌하여 귀한 이들과 함께 교회에 갔다. 심지어 기도와 찬송가도 잠깐 따라 했다. 100% 원해서 간 것은 아니었다. 살짝 어색한 마음으로 들어갔으나 아주 평안한 마음으로 나왔다. 강화읍내 공설운동장 근처 어느 빌라 1층에 문을 연 자그마한 교회. 실내는 열 명 남짓 앉을 수 있을 공간. 겨우! 아늑했다. 포근했다. 벽은 일종의 벽화, 구름과 하늘이 있고 거기 소박한 십자가가 겸손하게 붙어 있었다. 맑게 나이 먹은 중년의 사내가 소년처럼 웃었다. 목사님이다. 맑게 나이 먹은 중년의 여인은 소녀처럼 웃었다. 사모님이다. 남녀는 남매같았다. 관상이 꼭 맞으랴마는 그래도 내 보기엔, 낮은 자세로, 진심으로, 신자를 품고 섬길 관상이더라. 공..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