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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史

신문지엔 태극기를 그릴 수 없다!

3.1운동 때 황해도 안악군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나오는 얘기다.

 

어린 학생 100여 명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시위를 벌였다. 8살부터 15살까지의 학생들이었다. 일경이 아이들 몇을 붙잡아 갔다. 배후에 시위를 조종한 어른이 있을 것으로 보고 캐내려고 했다. 아이들을 위협해봤지만, 효과가 없었다.

 

일경은 아이들에게 태극기를 그리게 했다. 태극기를 그리지 못하면 시위 때 흔들던 태극기는 아이들이 만든 것이 아니다. 어른이 전달해 준 것이 된다. 그 어른을 잡으면 된다. 일경의 기대와 달리 아이들은 완벽하게 태극기를 그렸다.

 

그런데 태극기를 그릴 줄 아는가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 있었다. 처음 일경이 아이들에게 나눠준 것은 낡은 신문지였다. 거기에 그리라고 했다. 그러자 아이들이 거부했다. 외쳤다. “신성한 국기를 어찌 헌 신문지에 그리라고 하시오.” 일본 경찰은 깨끗한 백지를 나눠주었다. 아이들은 단박에 태극기를 그렸다. 일본 경찰은 아이들을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8살이면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것이다. ‘우리나라를 경험하지 못했다. 15살은 우리나라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을 나이이다. 그런데도 독립 열망이 뜨거웠다. 10대 청년들이 3·1운동의 중추 역할을 했다. 교육의 영향일까, 한국인의 DNA일까.

 

3·1운동으로 우리는 독립하지 못했다. 거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인 스스로 한국인의 저력에 놀란 사건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구나, 민족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국내외 항일투쟁을 추동하는 힘이 되었다. 결과도 바로 나왔다. 상해임시정부가 탄생한 것이다.


관련하여 〈연합뉴스〉(2023.08.03, 김예나 기자)의 태극기 관련 기사를 옮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태극기로 알려진 데니 태극기

1886년 당시 고종(재위 1863∼1907)의 외교·내무 담당 고문으로 부임했다가 1891년 1월 조선을 떠난 미국인 오웬 니커슨 데니(1838∼1900)가 소장했던 유물이다. 고종이 1890년쯤 데니에게 하사했다고 전하며, 데니의 후손이 1981년 기증했다.

가로 262㎝·세로 182.5㎝로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옛 태극기 가운데 가장 큰 데다 국기 제정의 초창기 역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