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양군 이종은 … 보위에 나아가 선조대왕의 후사를 잇게 하노라. 그리고 부인 한씨를 책봉하여 왕비로 삼노라. 이리하여 교시하노니, 모두 알라.”
1623년(광해군 15) 3월 14일, 인목대비는 광해군을 폐하고 능양군(인조)이 왕위를 계승하게 한다는 교지를 내렸다. 아울러 광해군을 폐하는 이유를 여러 가지로 말했다. (《광해군일기》)
① “선조의 아들이라면 나를 어머니로 여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광해는 … 우리 부모를 형벌하여 죽이고 우리 일가들을 몰살시켰으며 품속에 있는 어린 자식을 빼앗아 죽이고 나를 유폐하여 곤욕을 치르게 하였으니, 그는 인간의 도리가 조금도 없는 자이다.”
② “여러 차례 큰 옥사를 일으켜 무고한 사람들을 가혹하게 죽였고, 민가 수천 호를 철거시키고 두 궁궐을 창건하는 데 있어 토목 공사의 일이 10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았다.”
③ “인아(姻婭, 인척)·부시(婦寺, 궁인과 환관)들로서 악한 짓을 하도록 권유하는 무리만을 등용하고 신임하였으며, 다스리는 데 있어 뇌물을 바친 자들만 기용했으므로 무식한 자들이 조정에 가득하였고 금을 싣고 와서 관직을 사는 자들이 마치 장사꾼이 물건 흥정하듯 하였다.”
④ “부역이 많고 수탈이 극심하여 백성들이 살 수가 없어서 고난 속에서 아우성치고 있으니, 국가의 위태로움은 말할 수 없다.”
⑤ “우리나라가 중국을 섬겨온 지 2백여 년이 지났으니 의리에서는 군신의 사이지만 은혜에 있어서는 부자의 사이와 같았고, 임진년에 나라를 다시 일으켜준 은혜는 영원토록 잊을 수 없는 것이다.
… 그런데 광해는 은덕을 저버리고 천자의 명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배반하는 마음을 품고 오랑캐와 화친하였다. 이리하여 기미년(1619)에 중국이 오랑캐를 정벌할 때 장수에게 사태를 관망하여 향배를 결정하라고 은밀히 지시하여 끝내 우리 군사 모두를 오랑캐에게 투항하게 하여 추악한 명성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였다.
… 황제가 칙서를 여러 번 내렸으나 군사를 보낼 생각을 하지 아니하여 예의의 나라인 우리 삼한이 이적 금수의 나라가 되는 것을 모면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가슴 아픈 일을 어떻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인목대비는 이렇게 광해군을 폐위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히고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천리(天理)를 멸절시키고 인륜을 막아 위로 중국 조정에 죄를 짓고 아래로 백성들에게 원한을 사고 있는데 이러한 죄악을 저지른 자가 어떻게 나라의 임금으로서 백성의 부모가 될 수 있으며, 조종의 보위에 있으면서 종묘·사직의 신령을 받들 수 있겠는가. 이에 그를 폐위하노라.”
《연산 광해 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