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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사에서 사라진, 내가 잃어버린 오랜만에 찾은 석모도 보문사 변함없이 보문사는 커 가는 중 용왕전이 새로 생겼고 청풍루라는 누각도 거의 완축 단계 얼마나 더 커질지 부처님도 모르실 듯 내 보문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여기 갈 때마다 꼭 둘러보는 한 뼘 초가 스님의 수행 공간 밖으로만 빙빙 돌며 저 안에 한 번 들어가 보고 싶다 하던 곳 그런데 없다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건 아니고 이름하여 리모델링 이렇게 기와집이 되었다 난 또 하나 잃어버렸다. 더보기
영화 '서울의 봄'을 보았다 ‘서울의 봄’을 보았다. 상영 시간 장장 2시간 21분. 거기다 결말을 다 아는 내용이다. 어떻게 끝날지 궁금해하며 보는 영화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하품을 몇 번쯤 하고 딴생각도 좀 하면서 볼 법한 조건이다. 그러한데,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 긴 시간 몰입해서 봤다. 영화에 힘이 있다. 김성수 감독이 이 어려운 일을 해냈다. 재밌었다. 국어사전은 ‘재미있다’를 ‘즐겁고 유쾌한 기분이나 느낌이 있다’로 푼다. 전혀 즐겁지 않다. 유쾌하지도 않다. 나는 이 영화를 다른 의미로 재미있다고 말했다. 전두광 역 황정민은 역시 배우다. 만약에 황정민을 길에서 만난다면 패버릴 것 같다. 이태신 역 정우성도 빛난다. 그 잘생김을 질투해서가 아니라 진짜로 정우성의 연기에 한 끗 정도 미흡함을 느끼곤 했다, 그동안... 더보기
어느 날 문뜩 당신 집 앞을 지납니다 ...... 당신 집 앞을 지났습니다 공연히 뒤돌아봅니다 두 번인가 아니, 세 번일까 몰라 강산이 변했습니다만 여전히 당신은 불쑥 내 가슴을 찌릅니다 나는 오늘 그래서 아픕니다. 〈사학연금〉 2023년 11월호. 더보기
사극 ‘연인’ 속 길채와 장현의 사랑 이야기 설렁설렁 보기 시작한 MBC 사극 ‘연인’에 그만, 푹 빠지고 말았습니다. 단지 남궁민이 나오는 드라마라서 보기 시작한 것인데 이야기 전개가 탄탄하고 메시지도 묵직해서 충직하게 ‘본방사수’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바지로 향하는 ‘연인’, 끝나면 되게 허전할 것 같습니다. 시대 배경이 병자호란입니다. 그때 주인공 유길채(안은진 분)도 강화로 피난 왔다가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강화도 함락 직전에 세손(소현세자의 장남)은 교동으로 피해 가서 무사했습니다. 내관 김인과 강문성 등이 생후 10개월 된 세손을 교대로 업고 뛰어서 교동 가는 배에 겨우 올랐다고 해요. ‘연인’의 작가는 그걸 길채가 세손을 구하는 것으로 각색했습니다. 길채가 세손을 안고 뛰는 바닷가 장면은 명장면이었습니다. 보면서 ‘굳이 저런 내용을 .. 더보기
강화 충렬사 배향 인물 현황 인물 배향시기 출처 인물 배향시기 출처 김상용 1642년 (인조 20) 《인조실록》 황일호 1796년 (정조 20) 《정조실록》 〈황일호 추배기〉 이상길 1642년 (인조 20) 《인조실록》 윤집 1796년 (정조 20) 《정조실록》 심현 1642년 (인조 20) 《인조실록》 민성 1817년 (순조 17) 《순조실록》 이시직 1642년 (인조 20) 《인조실록》 김수남 1824년 (순조 24) 《순조실록》 윤계 1642년 (인조 20) 《인조실록》 이돈서 1796년? (정조 20) 《속수증보강도지》 《강화충렬사지》 1787년 (정조 11) 《정조실록》 송시영 1642년 (인조 20) 《인조실록》 강위빙 1813년? (순조 13) 《강화충렬사지》 구원일 1642년 (인조 20) 《인조실록》 안몽상 1932.. 더보기
산사 창호에 서린 세월 더보기
물이 들면, 난 더보기
심주, 심도, 강화, 갑곶, 월곶 조선시대에 규모가 가장 작은 행정구역 단위는 현입니다. 현 위에 군, 도호부, 주 등이 있었습니다. 주(州)의 역사는 꽤 길어요. 통일신라 ‘9주 5소경’의 9주가 많이 알려졌지요. 이후 전국적으로 ‘-주’라는 지명이 널리 퍼졌습니다. 지금도 지방 큰 도시 지명에 ‘주’가 붙은 곳이 여럿입니다.조선 태종은 지방 행정구역을 정비하면서 주의 수를 크게 줄이는 방법으로 주의 격을 높였습니다. 어떻게 줄였을까요? 지명을 ‘-주’ 대신 ‘-산’이나 ‘-천’으로 바꾸게 했습니다. 그 결과 울주가 울산이 되고 포주가 포천이 되었습니다. 괴주가 괴산이 되고 인주가 인천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주’를 ‘-목’으로 불렀습니다. 나주목, 전주목…. 그래서 주의 수령을 목사(정3품)라고 했습니다. 조선 8도의 명칭은 대개 그.. 더보기
안타까운 역사, 반민특위 좌절 그리고 프랑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독립운동가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대통령도 그였다. 이승만은 미국에 주로 머물며 독립운동을 했다. 그의 독립운동은 외교활동이다. 총을 들어야만 독립운동이 아니다. 전투만큼 중요한 것이 외교다. 1948년 제헌국회 의원들이 대통령을 뽑았다. 이승만은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첫 번째 대통령으로 자격이 있었다. 볼만한 업적도 남겼다. 그러나 대통령 이승만은 역사에 큰 아쉬움도 남겼다. 상식적으로 풀어야 할 실타래가 이승만에 의해서 비상식적으로 뒤엉켜 버렸다. 친일파 처리 문제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그 긴 세월, 우리는 일제의 식민지였다. 해방된 조국에서 우선해야 할 일은 무엇이었을까. 자신과 가족을 희생하며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 세력을 우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