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全 썸네일형 리스트형 심주, 심도, 강화, 갑곶, 월곶 조선시대에 규모가 가장 작은 행정구역 단위는 현입니다. 현 위에 군, 도호부, 주 등이 있었습니다. 주(州)의 역사는 꽤 길어요. 통일신라 ‘9주 5소경’의 9주가 많이 알려졌지요. 이후 전국적으로 ‘-주’라는 지명이 널리 퍼졌습니다. 지금도 지방 큰 도시 지명에 ‘주’가 붙은 곳이 여럿입니다.조선 태종은 지방 행정구역을 정비하면서 주의 수를 크게 줄이는 방법으로 주의 격을 높였습니다. 어떻게 줄였을까요? 지명을 ‘-주’ 대신 ‘-산’이나 ‘-천’으로 바꾸게 했습니다. 그 결과 울주가 울산이 되고 포주가 포천이 되었습니다. 괴주가 괴산이 되고 인주가 인천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주’를 ‘-목’으로 불렀습니다. 나주목, 전주목…. 그래서 주의 수령을 목사(정3품)라고 했습니다. 조선 8도의 명칭은 대개 그.. 더보기 안타까운 역사, 반민특위 좌절 그리고 프랑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독립운동가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대통령도 그였다. 이승만은 미국에 주로 머물며 독립운동을 했다. 그의 독립운동은 외교활동이다. 총을 들어야만 독립운동이 아니다. 전투만큼 중요한 것이 외교다. 1948년 제헌국회 의원들이 대통령을 뽑았다. 이승만은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첫 번째 대통령으로 자격이 있었다. 볼만한 업적도 남겼다. 그러나 대통령 이승만은 역사에 큰 아쉬움도 남겼다. 상식적으로 풀어야 할 실타래가 이승만에 의해서 비상식적으로 뒤엉켜 버렸다. 친일파 처리 문제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그 긴 세월, 우리는 일제의 식민지였다. 해방된 조국에서 우선해야 할 일은 무엇이었을까. 자신과 가족을 희생하며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 세력을 우대.. 더보기 “임금이시여, 뉘우치는 뜻을 분명히 보이소서” “백성이 고통스러운 것은 전하께서 안민(安民)에 뜻을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1635년(인조 13), 이조참의 유백증이 상소해 인조의 잘못을 말했다. 바른말 하는 신하는 벌주고, 아첨하는 신하들만 이뻐하는 인조에게 “언로란 국가의 혈맥입니다. 혈맥이 통하지 않고서 그 몸을 제대로 보존하는 자는 없습니다”라고 호소했다. 유백증은 또 임금을 바로잡지 못하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대신들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조는 유백증을 잡아들여 심문하게 한 뒤 수원부사로 보내버렸다. 좌천이다. 대신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좌의정 오윤겸은 유백증의 말이 옳다고 했다. “오랫동안 부당하게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여태 물러날 줄 모르고” 있던 자신을 반성하면서 사표를 냈다. 우의정 김상용도 유백증을 지지하며 사표를 썼다.. 더보기 용흥궁의 주인은 누구인가 원래 이번 호에 강화의 지명에 관한 글을 쓸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신문을 읽다가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우선, 용흥궁을 다루기로 마음먹게 된 기사를 발췌합니다. 〈'친일파 이해승 후손' 힐튼호텔 회장 땅 환수소송, 정부가 졌다〉라는 제목의 중앙일보(2023.10.06. 정시내 기자) 기사입니다. 친일파 이해승의 후손이 소유한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땅을 국고에 환수하려 정부가 소송을 냈으나 대법원에서 패소가 확정됐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정부가 이해승의 손자인 이우영 그랜드힐튼호텔 회장을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의 원고패소 판결을 지난달 21일 확정했다. … 정부는 과거 이해승의 소유였다가 이 회장의 소유가 된 홍은동 임야 2만7905㎡를 환수하려.. 더보기 교동 가는 광해군 너희 입안에 시퍼런 칼 품고 행여 무뎌질까 벼리고 또 벼려 입만 열면 줄줄이 죽어나갔다 사람이라 지은 죄 알기는 알아 홀로는 하늘 보기 두렵기도 해 저마다 끼리끼리 패거리 만들어 무조건 따라해야 안심 됐겠지 자나 깨나 朱子만 목숨처럼 떠받들고 저마다 정신 수양 열성으로 한다지만 아서라, 군자연 하지도 하라 朱子 글 어디에 사리사욕 제일이라 나라도 소용없다 백성도 필요 없어 권세만이 최고니라 가르치더냐 그 허위 내 일찍 꿰뚫어 차라리 성리학을 버려라 實한 陽明이 낫지 않느냐 일갈하고 싶었다만 내 귀가 겪어야 할 고통을 딱히 여겨 참았더랬다 이리 한 발 내디디면 죽음이요 저리 반 발 내디디면 삶이 되는 험악한 궁 안에서 가까스로 목숨 부지하다 서른 넘어 임금 됐다만 첩첩산중 가시밭길 곳곳에 이리떼 늑대떼 너.. 더보기 길 더보기 강화에서 보는 병자호란 선원면과 선원 김상용병자호란 때 선원 김상용 선생이 남문루에서 화약을 터트려 자결했습니다. 그의 호 ‘선원’은 강화군 선원면의 그 ‘선원’입니다. 어느 선원이 먼저일까요? 선원 김상용이 살던 마을이라서 그곳을 선원면으로 부르게 된 것일까요, 아니면 김상용이 선원면에 살게 되면서 자신의 호로 그곳 지명을 따서 선원이라고 한 것일까요? 선원면이 먼저입니다. 고려 대몽항쟁기에 세운 대사찰 선원사(禪源寺)가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 선원사가 있던 지역을 한자 살짝 바꿔 선원(仙源)으로 부르게 된 것 같습니다. 임진왜란 때 김상용이 선원에 와서 살았습니다. 이후 김상용은 자신이 머물던 마을 지명, 선원(仙源)을 자신의 호로 삼았습니다. 강화읍 용흥궁공원에 선원선생순의비(仙源先生殉義碑) 두 기를 모신 비각이 있습니다.. 더보기 숲에 들다, 석모도 수목원 석모도 수목원. 꽃은 없고요, 단풍도 없습디다. 시월이 시작된 날, 수목원 색깔은 여전히 여름빛. 달달한 바람과 흙내 그리고 풀벌레 소리 간간이 물 흐르는 소리도 들립디다. 아스팔트 주도로 말고 샛길로 오르길 잘했습니다. 데크길도 잘 정비돼서 좋았습니다. 곳곳 의자도 고맙습니다. 새집에는 새 아닌, 거미가 살고요 산에는 멧돼지가 사는 모양이에요. 맑은 날씨 덕분에 저 멀리 교동대교가 보이고 그 너머 북한 땅도 보입디다. 오기를 잘했다! 아, 입장료 사라진 것도 좋았습니다. 더보기 《강화나들길 가이드북》(공저) 강화군에서 2011년에 발간한 나들길 안내서이다. 강화역사문화연구소에서 만들었다. 비매품이다. 그동안 공공기관에서 낸 책 몇 권인가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그중에서 제일 애착이 가는 책이다. 2011년에 운 좋게 ‘연구년’이라는 일종의 안식년을 받았다. 그래서 이 책에 집중할 수 있었다. 강화나들길에 있는 문화유산을 답사하고 사진 찍으며 새삼스레 강화 여행을 하던 기억이 새롭다. 더보기 이전 1 ··· 21 22 23 24 25 26 27 ··· 3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