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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常

교동 가는 광해군

너희 입안에 시퍼런 칼 품고

행여 무뎌질까 벼리고 또 벼려

입만 열면 줄줄이 죽어나갔다

 

사람이라 지은 죄 알기는 알아

홀로는 하늘 보기 두렵기도 해

저마다 끼리끼리 패거리 만들어

무조건 따라해야 안심 됐겠지

 

자나 깨나 朱子만 목숨처럼 떠받들고

저마다 정신 수양 열성으로 한다지만

아서라, 군자연 하지도 하라

朱子 글 어디에

사리사욕 제일이라

나라도 소용없다 백성도 필요 없어

권세만이 최고니라 가르치더냐

 

그 허위 내 일찍 꿰뚫어

차라리 성리학을 버려라

陽明이 낫지 않느냐

일갈하고 싶었다만

내 귀가 겪어야 할 고통을 딱히 여겨

참았더랬다

 

이리 한 발 내디디면 죽음이요

저리 반 발 내디디면 삶이 되는

험악한 궁 안에서

가까스로 목숨 부지하다 서른 넘어

임금 됐다만

첩첩산중 가시밭길

곳곳에 이리떼 늑대떼

너희 두 발 뻗고 잘들 잘 때

소쩍이랑 벗하여 숨죽여 울던 날

많기도 했다

 

강권하는 신료들에 못 이기는 척

아우 목숨 끊어 놓고

대비까지 유폐한

어쩔 수 없는 죄

나도 아팠다

 

만백성 어버이인 내가

孝悌를 욕보이는 패륜을 범했으니

이 신세로 떨어진 걸 원망할 수 있겠느냐

 

다만 입으로는 백성 달고 살면서

송곳 하나 겨우 꽂을 알량한 백성 땅

걸신 되어 아귀 되어 탐해 온 너희와

영원히 척지더라도

난 백성을 살리고 싶었다

대동 세상 만들고 싶었다

 

왜놈의 난리통 겪은 지 얼마나 됐나

여진 오랑캐 막아 싸울 준비는 됐나

대책 없이

대책 없이 명의 은혜 핏대 세우는 너희 눈에

백성이 보이더냐

 

난들 은혜를 모르리

명분과 체면을 모르리

내 한 몸 내놓아 명분 체면 지킬 수 있다면

몇 번인들 그리 못하랴

그런데 아니다

내 목숨 하나보다 백 곱절 더 귀한

수많은 백성의 허망한 주검이 필요하다

그만큼 명분이 중요한 일이더냐

난 백성을 살리고 싶었다

대동 세상 만들고 싶었다

 

이게 무어냐 결국은 너희가

날 보낸 강화도로 도망 와

교동 가는 배에 나를 떠미는구나

그래 차라리 잘 됐다

나도 너희 보기 민망했느니

너희야 오죽했겠느냐

 

하아, 사공의 말투는 그런대로 공손타만

눈빛은 아니구나

세상인심이 저기 갈매기만도 못하다

아까부터 슬픈 날개 펄럭이며 조용히

날 따르는 마지막 충신

 

《강화도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