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입안에 시퍼런 칼 품고
행여 무뎌질까 벼리고 또 벼려
입만 열면 줄줄이 죽어나갔다
사람이라 지은 죄 알기는 알아
홀로는 하늘 보기 두렵기도 해
저마다 끼리끼리 패거리 만들어
무조건 따라해야 안심 됐겠지
자나 깨나 朱子만 목숨처럼 떠받들고
저마다 정신 수양 열성으로 한다지만
아서라, 군자연 하지도 하라
朱子 글 어디에
사리사욕 제일이라
나라도 소용없다 백성도 필요 없어
권세만이 최고니라 가르치더냐
그 허위 내 일찍 꿰뚫어
차라리 성리학을 버려라
實한 陽明이 낫지 않느냐
일갈하고 싶었다만
내 귀가 겪어야 할 고통을 딱히 여겨
참았더랬다
이리 한 발 내디디면 죽음이요
저리 반 발 내디디면 삶이 되는
험악한 궁 안에서
가까스로 목숨 부지하다 서른 넘어
임금 됐다만
첩첩산중 가시밭길
곳곳에 이리떼 늑대떼
너희 두 발 뻗고 잘들 잘 때
소쩍이랑 벗하여 숨죽여 울던 날
많기도 했다
강권하는 신료들에 못 이기는 척
아우 목숨 끊어 놓고
대비까지 유폐한
어쩔 수 없는 죄
나도 아팠다
만백성 어버이인 내가
孝悌를 욕보이는 패륜을 범했으니
이 신세로 떨어진 걸 원망할 수 있겠느냐
다만 입으로는 백성 民 달고 살면서
송곳 하나 겨우 꽂을 알량한 백성 땅
걸신 되어 아귀 되어 탐해 온 너희와
영원히 척지더라도
난 백성을 살리고 싶었다
대동 세상 만들고 싶었다
왜놈의 난리통 겪은 지 얼마나 됐나
여진 오랑캐 막아 싸울 준비는 됐나
대책 없이
대책 없이 명의 은혜 핏대 세우는 너희 눈에
백성이 보이더냐
난들 은혜를 모르리
명분과 체면을 모르리
내 한 몸 내놓아 명분 체면 지킬 수 있다면
몇 번인들 그리 못하랴
그런데 아니다
내 목숨 하나보다 백 곱절 더 귀한
수많은 백성의 허망한 주검이 필요하다
그만큼 명분이 중요한 일이더냐
난 백성을 살리고 싶었다
대동 세상 만들고 싶었다
이게 무어냐 결국은 너희가
날 보낸 강화도로 도망 와
교동 가는 배에 나를 떠미는구나
그래 차라리 잘 됐다
나도 너희 보기 민망했느니
너희야 오죽했겠느냐
하아, 사공의 말투는 그런대로 공손타만
눈빛은 아니구나
세상인심이 저기 갈매기만도 못하다
아까부터 슬픈 날개 펄럭이며 조용히
날 따르는 마지막 충신
《강화도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