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全

역사가 예술이 되다, 완주 불명산 화암사 華嚴寺는 알아도, 花岩寺는 몰랐다. 친구가 화암사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줬다. 보자마자 마구 끌렸다. 花岩寺, 꽃바위! 雨花樓, 꽃비! 이름마저 매혹적이다. 나이를 먹으며 점점 장거리 운전이 부담스럽고 버겁다. 가 봐? 이 더위에 그 멀리? 결국, 떠났다. 그리고, 마침내, 화암사 알현! 아. 아. 거기 불명산, 높고 높고 깊고 깊은 딱 그 자리 아담한 절집이 앉아 있었다. 돌담 안팎으로 상사화 무진장이었다. 우화루부터 말문이 막혔다. 수행이라 할 것도 없이 그냥 묵언이다. 절 마당이다. 공간을 아끼고 아낀 건물 배치, 흐트러짐이 없다. 여느, 규모 큰 절들을 외려 압도하는 아우라, 뿜뿜. 속세 ‘진짜’ 끊어낸 求道의 공간 극락전. 뭐라 말할 수가 없다. 오죽하면 국보가 되었으랴. 한 조각 그림까지 그대로.. 더보기
반나절, 교동을 보았습니다 길었던 먹구름 가고 흰 구름이 왔습니다. 오랜만에 교동에 갔습니다. 철책 넘어 북한 땅에도 구름꽃이 피었습니다. 바다였던 교동 들판, 여전히 바다입니다. 벼들은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저 붉은 나무재, 강화에선 ‘경징이풀’이라고 불렀답니다. 병자호란의 참상이 스몄습니다. 김경징, 강화 지킬 책임자가 청군 닥쳐오자 어머니 버리고 아내도 버리고 홀로 달아났습니다. 청군의 칼날에 강화 갯가는 피로 물들었습니다. 대룡시장은 여전했습니다. 평일, 무더위임에도 관광손님이 많았습니다. 갈때마다 변합니다. 먹을거리 파는 곳이 더 늘었습니다. 조금 색다른 먹거리장터로 변모하는 중인 것 같습니다. 교동주민에게 물건 파는 가게는 이제 몇 남지 않았습니다. 커다란 철물점 있던 자리는 카페가 된지 오래입니다.. 더보기
어느 교사의 죽음 서울 서이초등학교. 2023년 7월 18일. 이제 겨우 2년차 병아리 여교사가 목숨을 버렸다. 그것도 학교에서. 온갖 說이 흐른다만, 아무래도 너무 버거운 업무와 가혹한 학부모 민원이 겹쳐 이 어린 선생님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 같다. 아침에 이 사건을 읽었는데, 늦은 밤 지금까지 나는, 아프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어쩌다가 세상이 이렇게 됐을까. 학교가 이렇게 됐을까. 갑질 학부모의 잘못이 크다. 못지않게 학교 측의 잘못도 있다고 생각한다. 비단 서이초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렵고 힘든 행정 업무, 어렵고 힘든 학년의 담임을 신규교사나 다른 학교에서 새로 오는 교사에게 떠넘기는 게 학교 사회에서 관례처럼 돼 있는 게 사실이다. 대개의 학교가 그런 것 같다. 그래, ‘기득권’은 어느 정도 인정되는 게 적.. 더보기
별 없는 하늘에 달 하나 피었다 더보기
사랑하며 섬기는 사랑교회 나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다. 천주교 신자도 아니다. 그런데 어제, 어찌어찌하여 귀한 이들과 함께 교회에 갔다. 심지어 기도와 찬송가도 잠깐 따라 했다. 100% 원해서 간 것은 아니었다. 살짝 어색한 마음으로 들어갔으나 아주 평안한 마음으로 나왔다. 강화읍내 공설운동장 근처 어느 빌라 1층에 문을 연 자그마한 교회. 실내는 열 명 남짓 앉을 수 있을 공간. 겨우! 아늑했다. 포근했다. 벽은 일종의 벽화, 구름과 하늘이 있고 거기 소박한 십자가가 겸손하게 붙어 있었다. 맑게 나이 먹은 중년의 사내가 소년처럼 웃었다. 목사님이다. 맑게 나이 먹은 중년의 여인은 소녀처럼 웃었다. 사모님이다. 남녀는 남매같았다. 관상이 꼭 맞으랴마는 그래도 내 보기엔, 낮은 자세로, 진심으로, 신자를 품고 섬길 관상이더라. 공.. 더보기
교동에 유배된 연산군 어우동이 궁금해서 1474년(성종 5), 성종이 18세 나이에 홀아비가 됩니다. 이때 세상 떠난 왕비 공혜왕후는 불과 19세였어요. 자식 하나 두지 못하고 하늘로 갔습니다. 성종은 후궁 윤씨를 새로운 왕비로 삼았습니다. 왕비 윤씨가 1476년(성종 7)에 아들을 낳으니, 그가 바로 연산군입니다. 이름은 이융이에요. 임금의 적장자로 태어나 만인의 우러름의 대상이 된 어린 연산군. 그러나 전혀 행복한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부모 불화가 극심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윤씨의 질투가 아주 심했다고 해요. 아버지 성종이 결국에는 어머니 윤씨를 죽입니다. 연산군이 이렇게 엄마를 잃은 것은 7살 때입니다.  “오시에 임금이 대조전에서 훙(薨)하였는데, 춘추는 38세이다.”1494년(성종 25), 실록에 실린 성종 사망 .. 더보기
제1회 강화 청소년 역사토론대회 "강화역사 공부도 하고, 상금도 타고"...제1회 강화 청소년역사토론대회 개최 - 인터넷 강화뉴스 강화역사를 주제로 한 청소년토론대회가 개최된다.강화청소년역사토론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유담)는 9월 23일 강화교육지원청 마니산홀에서 「제1회 강화 청소년역사토론대회」를 개최한다 www.ganghwanews.com 2023.09.27. 역사토론대회 결과 기사 링크 "강화는 섬 전체가 역사를 화석처럼 간직한 곳, 스토리의 잠재력이 강화의 경쟁력" - 인터넷 강화 제1회 강화 청소년역사토론대회가 지난 23일 참가 학생과 학부모, 교사, 지역인사 등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강화교육지원청 마니산홀에서 성황리에 진행됐다.이날 www.ganghwanews.com 더보기
조선과 명·청, 한국과 미·중 조선의 명에 대한 의리, 실로 대단했다. 명나라는 진정으로 조선에 감사해야 했다. 본디 사대란 큰 나라 작은 나라 피차 기본적인 섬김의 자세가 필요한 법이니. 그런데 명나라의 조선 인식은 어떠했을까. 그저 조금 더 각별한 오랑캐 정도이지 않았을까. 애정과 믿음? 글쎄. 명나라 장수 주문욱의 조선에 대한 인식은 이랬다. 아마도 명나라 사람들 대개가 비슷했을 것이다. 조선은 비록 약하지만 우리의 울타리이다. 우리를 도와 오랑캐를 제압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우리를 배반하여 오랑캐에게 보탬이 되기에는 충분하다. 명에는 조선도 견제와 감시의 대상일 뿐이다. 후금(청)은 조선이 명과 손잡고 자기네를 칠까 봐 걱정했고 명나라는 조선이 후금(청)과 손잡고 자기네를 칠까 봐 걱정했다. 아무튼, 조선이 소중한 나라이기는 했.. 더보기
상식이 무너지는 교실 잘 가르쳤다. 소위 명문대 갔다. 판검사 하고, 교수 하더니 국회의원이 되었다. 장관이 되었다. 그런데 ‘저 사람이 초등학교는 나온 건가.’ 싶은 언행으로 국민을 맥빠지게 하고 분노하게 하는 인사들이 있다. 입으로는 맨날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외치지만, 사실은 지나치게 자기 이익만을 탐하는 사람들이 많다. 너무. 不法도 正法인 그들의 탐욕보다도 그들의 뻔뻔함이 더 기막히다. 염치가 진짜 없다. "잘못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이걸 못한다. 안한다. 잘 가르친 것인가? 아니다. 잘못 가르친 것이다. 똑똑한 머리보다 따듯한 가슴을 키우는 교육이 진짜 교육이다. 성적이 중요하고 입시가 중요하다. 그래도 마음 교육을 포기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염치와 배려를 알게 하는 교육이 진짜 교육이다. 그게 마음 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