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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교사의 죽음 서울 서이초등학교. 2023년 7월 18일. 이제 겨우 2년차 병아리 여교사가 목숨을 버렸다. 그것도 학교에서. 온갖 說이 흐른다만, 아무래도 너무 버거운 업무와 가혹한 학부모 민원이 겹쳐 이 어린 선생님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 같다. 아침에 이 사건을 읽었는데, 늦은 밤 지금까지 나는, 아프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어쩌다가 세상이 이렇게 됐을까. 학교가 이렇게 됐을까. 갑질 학부모의 잘못이 크다. 못지않게 학교 측의 잘못도 있다고 생각한다. 비단 서이초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렵고 힘든 행정 업무, 어렵고 힘든 학년의 담임을 신규교사나 다른 학교에서 새로 오는 교사에게 떠넘기는 게 학교 사회에서 관례처럼 돼 있는 게 사실이다. 대개의 학교가 그런 것 같다. 그래, ‘기득권’은 어느 정도 인정되는 게 적.. 더보기
별 없는 하늘에 달 하나 피었다 더보기
사랑하며 섬기는 사랑교회 나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다. 천주교 신자도 아니다. 그런데 어제, 어찌어찌하여 귀한 이들과 함께 교회에 갔다. 심지어 기도와 찬송가도 잠깐 따라 했다. 100% 원해서 간 것은 아니었다. 살짝 어색한 마음으로 들어갔으나 아주 평안한 마음으로 나왔다. 강화읍내 공설운동장 근처 어느 빌라 1층에 문을 연 자그마한 교회. 실내는 열 명 남짓 앉을 수 있을 공간. 겨우! 아늑했다. 포근했다. 벽은 일종의 벽화, 구름과 하늘이 있고 거기 소박한 십자가가 겸손하게 붙어 있었다. 맑게 나이 먹은 중년의 사내가 소년처럼 웃었다. 목사님이다. 맑게 나이 먹은 중년의 여인은 소녀처럼 웃었다. 사모님이다. 남녀는 남매같았다. 관상이 꼭 맞으랴마는 그래도 내 보기엔, 낮은 자세로, 진심으로, 신자를 품고 섬길 관상이더라. 공.. 더보기
교동에 유배된 연산군 어우동이 궁금해서 1474년(성종 5), 성종이 18세 나이에 홀아비가 됩니다. 이때 세상 떠난 왕비 공혜왕후는 불과 19세였어요. 자식 하나 두지 못하고 하늘로 갔습니다. 성종은 후궁 윤씨를 새로운 왕비로 삼았습니다. 왕비 윤씨가 1476년(성종 7)에 아들을 낳으니, 그가 바로 연산군입니다. 이름은 이융이에요. 임금의 적장자로 태어나 만인의 우러름의 대상이 된 어린 연산군. 그러나 전혀 행복한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부모 불화가 극심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윤씨의 질투가 아주 심했다고 해요. 아버지 성종이 결국에는 어머니 윤씨를 죽입니다. 연산군이 이렇게 엄마를 잃은 것은 7살 때입니다.  “오시에 임금이 대조전에서 훙(薨)하였는데, 춘추는 38세이다.”1494년(성종 25), 실록에 실린 성종 사망 .. 더보기
제1회 강화 청소년 역사토론대회 "강화역사 공부도 하고, 상금도 타고"...제1회 강화 청소년역사토론대회 개최 - 인터넷 강화뉴스 강화역사를 주제로 한 청소년토론대회가 개최된다.강화청소년역사토론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유담)는 9월 23일 강화교육지원청 마니산홀에서 「제1회 강화 청소년역사토론대회」를 개최한다 www.ganghwanews.com 2023.09.27. 역사토론대회 결과 기사 링크 "강화는 섬 전체가 역사를 화석처럼 간직한 곳, 스토리의 잠재력이 강화의 경쟁력" - 인터넷 강화 제1회 강화 청소년역사토론대회가 지난 23일 참가 학생과 학부모, 교사, 지역인사 등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강화교육지원청 마니산홀에서 성황리에 진행됐다.이날 www.ganghwanews.com 더보기
조선과 명·청, 한국과 미·중 조선의 명에 대한 의리, 실로 대단했다. 명나라는 진정으로 조선에 감사해야 했다. 본디 사대란 큰 나라 작은 나라 피차 기본적인 섬김의 자세가 필요한 법이니. 그런데 명나라의 조선 인식은 어떠했을까. 그저 조금 더 각별한 오랑캐 정도이지 않았을까. 애정과 믿음? 글쎄. 명나라 장수 주문욱의 조선에 대한 인식은 이랬다. 아마도 명나라 사람들 대개가 비슷했을 것이다. 조선은 비록 약하지만 우리의 울타리이다. 우리를 도와 오랑캐를 제압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우리를 배반하여 오랑캐에게 보탬이 되기에는 충분하다. 명에는 조선도 견제와 감시의 대상일 뿐이다. 후금(청)은 조선이 명과 손잡고 자기네를 칠까 봐 걱정했고 명나라는 조선이 후금(청)과 손잡고 자기네를 칠까 봐 걱정했다. 아무튼, 조선이 소중한 나라이기는 했.. 더보기
상식이 무너지는 교실 잘 가르쳤다. 소위 명문대 갔다. 판검사 하고, 교수 하더니 국회의원이 되었다. 장관이 되었다. 그런데 ‘저 사람이 초등학교는 나온 건가.’ 싶은 언행으로 국민을 맥빠지게 하고 분노하게 하는 인사들이 있다. 입으로는 맨날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외치지만, 사실은 지나치게 자기 이익만을 탐하는 사람들이 많다. 너무. 不法도 正法인 그들의 탐욕보다도 그들의 뻔뻔함이 더 기막히다. 염치가 진짜 없다. "잘못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이걸 못한다. 안한다. 잘 가르친 것인가? 아니다. 잘못 가르친 것이다. 똑똑한 머리보다 따듯한 가슴을 키우는 교육이 진짜 교육이다. 성적이 중요하고 입시가 중요하다. 그래도 마음 교육을 포기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염치와 배려를 알게 하는 교육이 진짜 교육이다. 그게 마음 교.. 더보기
강화도조약 내용과 해설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 ❚전문대일본국과 대조선국은 평소 우의를 두터이 하여온 지가 여러 해 되었으나 지금 두 나라의 우의가 미흡한 것을 고려하여 다시 옛날의 좋은 관계를 회복하여 친목을 공고히 한다. 그러므로 일본국 정부에서는 특명전권변리대신 육군중장 겸 참의 개척장관 구로다 키요타카와 특명부전권변리대신 의관 이노우에 카오루를 조선국 강화부에 나아가게 하고 조선국 정부에서는 판중추부사 신헌과 부총관 윤자승에게 유지(諭旨)를 받들어 조관을 의논하여 세우게 한 것이다. 아래에 열거한다. ← 애초 일본이 작성하여 체결을 요구했던 초안에는 ‘대일본국 황제 폐하’와 ‘조선국왕 전하’ 라는 호칭이 있었다. 조선의 요구로 삭제되었다. 일본도 이 부분을 조선이 절대 수용하지 않을 것임을 짐작했을 것이다. 폐하와 전.. 더보기
시집, 《무당벌레》와 《함바집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짓기 어려운 글이 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상대방이 시인이라고 하면 그이의 작품을 보기도 전에, 바로, 존경할 준비가 됩니다. 그동안 살아오며 시집을 꽤 읽었습니다. 후딱 한 권을 다 읽어버리지 않고 야금야금 아껴가며 읽습니다. 때로는 가슴이 뜨거워지고 때로는 가슴이 촉촉해졌습니다. 유명한 시인들의 시집을 주로 보았습니다. 강화에도 무슨, 무슨 문학회 활동을 하며 시를 쓰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고백하건대, 그런 분들의 시는 거의 읽지 않았습니다. 이제, 반성합니다. 적절한 비유는 아닌 것 같은데 내공 깊은 ‘재야의 고수’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분들 중에 구경분 시인과 임경자 시인을, 그이들의 시집으로 만났습니다. 조금 거만한 마음으로 시집을 열었고 아주 겸손한 마음 되어 마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