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년이라는 사내가 있었다. 몽골의 3차 침략기인 1236년(고종 23)에 고려에 반기를 들어 봉기하였다. 세력을 키워 스스로 백제도원수라 칭하고 백제의 부흥을 내세웠다. 전남 담양 인근에서 시작된 반란의 물결은 광주를 휩쓸고 나주로 향했다. 1237년 봄 강화경 조정은 김경손을 전라도지휘사로 삼아 나주로 보냈다. 김경손은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이연년 세력을 진압했다.
그 과정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이연년이 나주성을 포위하고 자신의 무리에게 엄히 이르기를, “지휘사로 온 김경손은 귀주에서 몽골군을 크게 물리친 대장이라 인망이 매우 두텁다. 생포하여 내 사람으로 삼을 것이니 절대로 활을 쏘지 마라. 죽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이연년의 반군은 활을 내려놓고 짧은 칼로 진압군에 맞섰다. 이연년이 돌진하여 김경손의 말고삐를 잡았을 때, 별초들이 달려들어 이연년을 베었다. 지휘자를 잃은 반군은 무너지고 말았다.
이연년의 패인은 자만과 방심이었다. 그가 신중하고 냉철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김경손 생포 시도를 만용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왠지 멋스러움이 느껴진다. 한편, 수년 전 저 북쪽 귀주에서의 승전 소식이 남녘 전라도 땅까지 전해져 주민들이 김경손을 우러렀다는 데서 백성의 몽골에 대한 항전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왜 몽골제국은 강화도를 치지 못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