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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史

강화유수 이안눌과 벗 이야기 비석치기 갑곳리 강화전쟁박물관 마당에 옛 비석이 수두룩 모여있습니다. 대개가 조선시대 수령의 선정비입니다. 선정비를 불망비라고도 해요. 백성들이 그 지방에 부임했던 지방관의 선정을 고마워하며, 오래도록 기억하고자 세운 비가 선정비, 불망비입니다. 선정(善政)이란 ‘백성을 바르고 어질게 잘 다스린 정치’라는 뜻이요, 불망(不忘)이란 그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뜻이니 결국은 그 말이 그 말입니다. 선정비가 많은 것은 그만큼 선정을 베푼 지방관이 많았다는 것일까요? 물론, 아니죠. 선정 여부와 관계없이 관례로 세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백성을 괴롭혀 원성이 자자했던 수령의 선정비도 세워지기 마련입니다. 선정비 세우는 비용은 백성들에게 걷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많이 거두기도 해서 백성들이 아주 고통스러웠습니다. .. 더보기
8월 29일 오늘 경술국치일, 망국에 이른 과정 경술국치에 이르는 과정은 3대 통감 데라우치가 이완용에게 조약안을 넘겼다. 이완용은 순순히 받아서 조정으로 왔다. 1910년 경술년 8월 22일, 순종은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을 전권위원으로 임명해 일본과 ‘병합조약’을 체결하게 했다. 을사늑약 때와는 달리 반대하는 대신들도 없었다. 을사오적 중 한 사람인 이완용이 이번엔 주연으로 나섰다. 데라우치와 조약을 맺고 조약문에 도장을 찍었다.  제1조,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하고 영구히 일본국 황제 폐하에게 양여한다. 제2조, 일본국 황제 폐하는 앞 조항에 열거한 양여를 수락하고 한국을 완전히 일본 제국에 병합함을 승낙한다. 제8조, 본 조약은 일본국 황제 폐하와 한국 황제 폐하의 재가를 받은 것으로 공포일로부터 이를 시행한다. .. 더보기
홍범도 장군 동상을 철거한다는데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이회영의 동상을 철거한다고 합니다.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고 하지만, 사실상의 ‘철거’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이러다가 평화의 소녀상까지 모두 없애겠다고 하는 건 아닐까, 엉뚱한 생각마저 듭니다. 독립운동가를 지우는 행위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보다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염수가 우리 몸을 해할 거라면, 독립운동가 지우기는 우리의 혼과 정신을 망치는 것입니다. 일본과 관계를 개선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국익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까짓거, 우리가 통 크게 양보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과정이 진중해야 합니다. 과거를 용서하는 주체로서 당당함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답답합니다. 속상합니다. 보도에 따르면, 홍범.. 더보기
조선의 인물, 강화의 인물, 권필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시도 사랑하고 술도 사랑한다네. ... 내 붓은 내 손을 떠나지 않고 내 잔은 내 입을 떠나지 않네. ‘나’는 석주(石洲) 권필(權韠, 1569~1612)입니다. 조선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인정받던 인물입니다. 서울 서대문 밖 반송방에서 태어나 마포 현석촌에 살았습니다. 그의 호, 석주는 현석촌에서 딴 것입니다. 19살에 과거(소과)를 봐서 급제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합격이 취소됐어요. 그가 써낸 글 가운데 딱 한 글자가 문제가 돼서 최종 탈락한 것입니다. 절대 써서는 안 되는 글자, 이를테면 임금의 이름자 같은 걸 실수로 적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 평생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습니다. 합격 취소가 속상해서 과거를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조정 세력 간의 다툼, 분탕에 .. 더보기
광해군 폐위 이유 또는 명분 “능양군 이종은 … 보위에 나아가 선조대왕의 후사를 잇게 하노라. 그리고 부인 한씨를 책봉하여 왕비로 삼노라. 이리하여 교시하노니, 모두 알라.” 1623년(광해군 15) 3월 14일, 인목대비는 광해군을 폐하고 능양군(인조)이 왕위를 계승하게 한다는 교지를 내렸다. 아울러 광해군을 폐하는 이유를 여러 가지로 말했다. (《광해군일기》) ① “선조의 아들이라면 나를 어머니로 여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광해는 … 우리 부모를 형벌하여 죽이고 우리 일가들을 몰살시켰으며 품속에 있는 어린 자식을 빼앗아 죽이고 나를 유폐하여 곤욕을 치르게 하였으니, 그는 인간의 도리가 조금도 없는 자이다.” ② “여러 차례 큰 옥사를 일으켜 무고한 사람들을 가혹하게 죽였고, 민가 수천 호를 철거시키고 두 궁궐을 창건하.. 더보기
인천문화유산센터 제작, 강화도 고려궁궐 디지털 영상 고려 대몽항쟁기, 도읍지 강화도에 있었던 궁궐을 디지털로 재현한 동영상이다. 인천문화재단의 인천문화유산센터가 제작했다. 다음이나 네이버 등에서 '인천 문화유산 디지털 아카이브'로 검색하면 해당 홈페이지로 연결된다.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다. '인천 문화유산 디지털 아카이브'에는 고려궁궐 영상 외에도 강화 돈대들의 3D 영상을 비롯해 유익한 시청각 자료가 많다. 더보기
신문지엔 태극기를 그릴 수 없다! 3.1운동 때 황해도 안악군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나오는 얘기다. 어린 학생 100여 명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시위를 벌였다. 8살부터 15살까지의 학생들이었다. 일경이 아이들 몇을 붙잡아 갔다. 배후에 시위를 조종한 어른이 있을 것으로 보고 캐내려고 했다. 아이들을 위협해봤지만, 효과가 없었다. 일경은 아이들에게 태극기를 그리게 했다. 태극기를 그리지 못하면 시위 때 흔들던 태극기는 아이들이 만든 것이 아니다. 어른이 전달해 준 것이 된다. 그 어른을 잡으면 된다. 일경의 기대와 달리 아이들은 완벽하게 태극기를 그렸다. 그런데 태극기를 그릴 줄 아는가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 있었다. 처음 일경이 아이들에게 나눠준 것은 낡은 신문지였다. 거기에 그리라고 했다. 그러.. 더보기
광해군, 강화에 갇히다 땅굴 파는 사내가 있었다강화도호부성 서문 안 어느 집, 한 사내가 집 밖으로 나가려 땅굴을 판다. 사방은 겹겹 울타리로 막혔고 지키는 이들까지 있으니 달리 방법이 없었다. 삽 한 자루조차 없다. 땅을 파는 장비는 가위와 인두 정도. 벌써 며칠째 흙을 찍어내고 있다. 흙과 땀으로 얼룩진 스물여섯 살 사내의 눈빛이 처절하다. 사내의 이름은 이지. 폐세자 이지(1598~1623)이다. 폐세자라면? 그렇습니다. 광해군의 아들입니다. 무탈했다면, 아버지를 이어 조선의 제16대 임금이 됐을 사람입니다. 인조반정으로 쫓겨난 광해군이 강화도에 위리안치되었습니다. 연산군은 홀로 교동에 유배됐었지만, 광해군은 가족과 함께 왔습니다. 광해군과 폐비가 강화부성 동문 쪽에 갇혔고 폐세자와 폐세자빈은 서문 쪽에 갇혔습니다. 이때.. 더보기
교동에 유배된 연산군 어우동이 궁금해서 1474년(성종 5), 성종이 18세 나이에 홀아비가 됩니다. 이때 세상 떠난 왕비 공혜왕후는 불과 19세였어요. 자식 하나 두지 못하고 하늘로 갔습니다. 성종은 후궁 윤씨를 새로운 왕비로 삼았습니다. 왕비 윤씨가 1476년(성종 7)에 아들을 낳으니, 그가 바로 연산군입니다. 이름은 이융이에요. 임금의 적장자로 태어나 만인의 우러름의 대상이 된 어린 연산군. 그러나 전혀 행복한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부모 불화가 극심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윤씨의 질투가 아주 심했다고 해요. 아버지 성종이 결국에는 어머니 윤씨를 죽입니다. 연산군이 이렇게 엄마를 잃은 것은 7살 때입니다.  “오시에 임금이 대조전에서 훙(薨)하였는데, 춘추는 38세이다.”1494년(성종 25), 실록에 실린 성종 사망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