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충렬사 안내판 해설
강화도 충렬사 앞에 선 안내판 전문입니다. 병자·정축호란(1636~1637) 당시 종묘의 위패를 받들고 세자빈과 원손을 수행하여 강화도로 피난하였다가 강화가 함락되었을 때 순절한 김상용을 비롯하여 공조판서 이상길, 장령 이시직, 돈녕도정 심현, 천총 구원일 등을 배향하기 위하여 인조 19년(1642)에 건립된 사당이다. 효종 9년(1658)에 사액되었다.1657년 훈련정 황선신, 훈련첨정 강흥업을, 1658년에는 금부도사 권순장, 생원 김익겸, 필선 윤전을, 영조 4년(1728)에 좌승지 홍명형을, 1787년에 광흥수 이돈오, 홍익한과 병자호란 때 근왕병을 모아 남한산성으로 가려다 순절한 윤계를 함께 추향하였다.건립 당시에는 현충사(顯忠祠)라 하였으나 효종 9년(1658)에 효종이 유수 허휘에게 현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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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에 왔던 조선 임금 이야기
조선의 임금은 모두 27명인데, 이들 가운데 우리 강화에 왔던 임금은 누구누구일까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제가 확인해 본 이는 일단 태종, 연산군, 광해군, 인조, 효종, 영조, 철종 정도입니다. 인조 빼고 나머지 임금들은 즉위하기 전에 왔거나 폐위되고 나서 강화 땅을 밟았습니다. 태종(이방원)이 임금 되기 전 어느 해엔가 강화에 왔습니다. 《세종실록》에, 임금들이 해마다 봄·가을에 대언(승지)을 마리산 참성단에 보내 초제를 올리게 했는데, 이방원도 대언 신분으로 왔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연산군과 광해군은 왕위에서 쫓겨나 귀양 왔습니다. 연산군은 교동에 갇힌 지 불과 2개월 만에, 마누라가 보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묘를 그대로 교동에 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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