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史 썸네일형 리스트형 “임금이시여, 뉘우치는 뜻을 분명히 보이소서” “백성이 고통스러운 것은 전하께서 안민(安民)에 뜻을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1635년(인조 13), 이조참의 유백증이 상소해 인조의 잘못을 말했다. 바른말 하는 신하는 벌주고, 아첨하는 신하들만 이뻐하는 인조에게 “언로란 국가의 혈맥입니다. 혈맥이 통하지 않고서 그 몸을 제대로 보존하는 자는 없습니다”라고 호소했다. 유백증은 또 임금을 바로잡지 못하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대신들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조는 유백증을 잡아들여 심문하게 한 뒤 수원부사로 보내버렸다. 좌천이다. 대신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좌의정 오윤겸은 유백증의 말이 옳다고 했다. “오랫동안 부당하게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여태 물러날 줄 모르고” 있던 자신을 반성하면서 사표를 냈다. 우의정 김상용도 유백증을 지지하며 사표를 썼다.. 더보기 용흥궁의 주인은 누구인가 원래 이번 호에 강화의 지명에 관한 글을 쓸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신문을 읽다가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우선, 용흥궁을 다루기로 마음먹게 된 기사를 발췌합니다. 〈'친일파 이해승 후손' 힐튼호텔 회장 땅 환수소송, 정부가 졌다〉라는 제목의 중앙일보(2023.10.06. 정시내 기자) 기사입니다. 친일파 이해승의 후손이 소유한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땅을 국고에 환수하려 정부가 소송을 냈으나 대법원에서 패소가 확정됐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정부가 이해승의 손자인 이우영 그랜드힐튼호텔 회장을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의 원고패소 판결을 지난달 21일 확정했다. … 정부는 과거 이해승의 소유였다가 이 회장의 소유가 된 홍은동 임야 2만7905㎡를 환수하려.. 더보기 강화에서 보는 병자호란 선원면과 선원 김상용병자호란 때 선원 김상용 선생이 남문루에서 화약을 터트려 자결했습니다. 그의 호 ‘선원’은 강화군 선원면의 그 ‘선원’입니다. 어느 선원이 먼저일까요? 선원 김상용이 살던 마을이라서 그곳을 선원면으로 부르게 된 것일까요, 아니면 김상용이 선원면에 살게 되면서 자신의 호로 그곳 지명을 따서 선원이라고 한 것일까요? 선원면이 먼저입니다. 고려 대몽항쟁기에 세운 대사찰 선원사(禪源寺)가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 선원사가 있던 지역을 한자 살짝 바꿔 선원(仙源)으로 부르게 된 것 같습니다. 임진왜란 때 김상용이 선원에 와서 살았습니다. 이후 김상용은 자신이 머물던 마을 지명, 선원(仙源)을 자신의 호로 삼았습니다. 강화읍 용흥궁공원에 선원선생순의비(仙源先生殉義碑) 두 기를 모신 비각이 있습니다.. 더보기 정묘호란과 강화 한양 도성 서북쪽 안현(지금 서울 무악재). 피와 살이 튀는 살벌한 전투! 도성을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 쉬 승부를 예단할 수 없는 격전. 때는 1624년(인조 2) 2월 11일. 드디어 결판이 났다. 도성을 지키려던 이가 졌다. ‘도성을 지키려던 이’는 누구인가?이괄입니다. 평안도 영변에서 반란을 일으켜 남쪽으로 쳐 내려와 한양 도성까지 장악했던 이괄입니다. 인조는 반란군에게 궁궐을 내주고 저 멀리 충청도 공주로 달아났습니다. 기세등등했던 반란군은 장만이 지휘하는 관군에게 진압됩니다. 이괄의 난이 진압되고 3년 뒤, 1627년(인조 5)에 정묘호란이 터져요. 후금의 조선 침공입니다. 조선의 방어선이 거듭 뚫렸고 인조 조정은 강화로 피란했습니다. 후금군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한 것은 조선 군사력이 .. 더보기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반대 역사단체 공동 성명서 [전문] 2023년 9월 13일, 51개 역사단체가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에 반대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全文을 '광주in'(http://www.gwangjuin.com)에서 옮겨왔다. 2023년 8월 말, 대한민국 국민은 육군사관학교(이하 육사)가 육사 교정의 독립운동가 5인의 흉상을 철거하겠다는 믿기 어려운 소식을 접했다. 육사는 곧바로 흉상 철거 계획이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한미동맹의 가치를 드러내기 위한 교내 기념물 재정비 사업의 일환이라고 해명했다. 김좌진‧이회영‧지청천‧이범석‧홍범도 5인의 흉상이 육사의 정체성 및 설립 취지와 맞지 않다는 육사의 자기 고백이었다. 흉상 철거 계획에 대한 광복회 등 독립운동 기념 단체들의 반대가 잇따랐고, 육사는 결국 4인의 흉상은 교내에 두고 홍범도 흉상만 학교 밖으.. 더보기 미국 전문학자가 보는 한국과 미국 에이드리언 루이스 인터뷰 기사 발췌 에이드리언 루이스(Adrian Lewis·70) 교수는 미국 캔자스대학 역사학과 교수로 저명한 군사전략 사상가다. 그는 저서 ‘미국 전쟁 문화:2차 대전부터 이라크전쟁까지 미군의 역사’(2017)에서 압도적 화력을 지닌 미국이 2차 대전 이후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까지 왜 거의 모든 전쟁에서 패했느냐는 이유를 집중적으로 탐구한 전쟁 전문 학자다. “한국은 이런 다극주의 강대국에 둘러쌓여 있다. 미국이 한쪽 편을 들라고 강요하더라도 이를 맹목적으로 따를 필요는 없다. 기억할 것은 한국은 주권국이란 사실이다. 균형(balance)을 갖춘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감안하면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것을 안다.” “윤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을.. 더보기 강화유수 이안눌과 벗 이야기 비석치기 갑곳리 강화전쟁박물관 마당에 옛 비석이 수두룩 모여있습니다. 대개가 조선시대 수령의 선정비입니다. 선정비를 불망비라고도 해요. 백성들이 그 지방에 부임했던 지방관의 선정을 고마워하며, 오래도록 기억하고자 세운 비가 선정비, 불망비입니다. 선정(善政)이란 ‘백성을 바르고 어질게 잘 다스린 정치’라는 뜻이요, 불망(不忘)이란 그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뜻이니 결국은 그 말이 그 말입니다. 선정비가 많은 것은 그만큼 선정을 베푼 지방관이 많았다는 것일까요? 물론, 아니죠. 선정 여부와 관계없이 관례로 세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백성을 괴롭혀 원성이 자자했던 수령의 선정비도 세워지기 마련입니다. 선정비 세우는 비용은 백성들에게 걷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많이 거두기도 해서 백성들이 아주 고통스러웠습니다. .. 더보기 8월 29일 오늘 경술국치일, 망국에 이른 과정 경술국치에 이르는 과정은 3대 통감 데라우치가 이완용에게 조약안을 넘겼다. 이완용은 순순히 받아서 조정으로 왔다. 1910년 경술년 8월 22일, 순종은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을 전권위원으로 임명해 일본과 ‘병합조약’을 체결하게 했다. 을사늑약 때와는 달리 반대하는 대신들도 없었다. 을사오적 중 한 사람인 이완용이 이번엔 주연으로 나섰다. 데라우치와 조약을 맺고 조약문에 도장을 찍었다. 제1조,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하고 영구히 일본국 황제 폐하에게 양여한다. 제2조, 일본국 황제 폐하는 앞 조항에 열거한 양여를 수락하고 한국을 완전히 일본 제국에 병합함을 승낙한다. 제8조, 본 조약은 일본국 황제 폐하와 한국 황제 폐하의 재가를 받은 것으로 공포일로부터 이를 시행한다. .. 더보기 홍범도 장군 동상을 철거한다는데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이회영의 동상을 철거한다고 합니다.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고 하지만, 사실상의 ‘철거’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이러다가 평화의 소녀상까지 모두 없애겠다고 하는 건 아닐까, 엉뚱한 생각마저 듭니다. 독립운동가를 지우는 행위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보다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염수가 우리 몸을 해할 거라면, 독립운동가 지우기는 우리의 혼과 정신을 망치는 것입니다. 일본과 관계를 개선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국익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까짓거, 우리가 통 크게 양보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과정이 진중해야 합니다. 과거를 용서하는 주체로서 당당함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답답합니다. 속상합니다. 보도에 따르면, 홍범.. 더보기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1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