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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史

강화에서 보는 병자호란 선원면과 선원 김상용병자호란 때 선원 김상용 선생이 남문루에서 화약을 터트려 자결했습니다. 그의 호 ‘선원’은 강화군 선원면의 그 ‘선원’입니다. 어느 선원이 먼저일까요? 선원 김상용이 살던 마을이라서 그곳을 선원면으로 부르게 된 것일까요, 아니면 김상용이 선원면에 살게 되면서 자신의 호로 그곳 지명을 따서 선원이라고 한 것일까요? 선원면이 먼저입니다. 고려 대몽항쟁기에 세운 대사찰 선원사(禪源寺)가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 선원사가 있던 지역을 한자 살짝 바꿔 선원(仙源)으로 부르게 된 것 같습니다. 임진왜란 때 김상용이 선원에 와서 살았습니다. 이후 김상용은 자신이 머물던 마을 지명, 선원(仙源)을 자신의 호로 삼았습니다. 강화읍 용흥궁공원에 선원선생순의비(仙源先生殉義碑) 두 기를 모신 비각이 있습니다.. 더보기
정묘호란과 강화 한양 도성 서북쪽 안현(지금 서울 무악재). 피와 살이 튀는 살벌한 전투! 도성을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 쉬 승부를 예단할 수 없는 격전. 때는 1624년(인조 2) 2월 11일. 드디어 결판이 났다. 도성을 지키려던 이가 졌다. ‘도성을 지키려던 이’는 누구인가?이괄입니다. 평안도 영변에서 반란을 일으켜 남쪽으로 쳐 내려와 한양 도성까지 장악했던 이괄입니다. 인조는 반란군에게 궁궐을 내주고 저 멀리 충청도 공주로 달아났습니다. 기세등등했던 반란군은 장만이 지휘하는 관군에게 진압됩니다. 이괄의 난이 진압되고 3년 뒤, 1627년(인조 5)에 정묘호란이 터져요. 후금의 조선 침공입니다. 조선의 방어선이 거듭 뚫렸고 인조 조정은 강화로 피란했습니다. 후금군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한 것은 조선 군사력이 .. 더보기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반대 역사단체 공동 성명서 [전문] 2023년 9월 13일, 51개 역사단체가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에 반대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全文을 '광주in'(http://www.gwangjuin.com)에서 옮겨왔다. 2023년 8월 말, 대한민국 국민은 육군사관학교(이하 육사)가 육사 교정의 독립운동가 5인의 흉상을 철거하겠다는 믿기 어려운 소식을 접했다. 육사는 곧바로 흉상 철거 계획이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한미동맹의 가치를 드러내기 위한 교내 기념물 재정비 사업의 일환이라고 해명했다. 김좌진‧이회영‧지청천‧이범석‧홍범도 5인의 흉상이 육사의 정체성 및 설립 취지와 맞지 않다는 육사의 자기 고백이었다. 흉상 철거 계획에 대한 광복회 등 독립운동 기념 단체들의 반대가 잇따랐고, 육사는 결국 4인의 흉상은 교내에 두고 홍범도 흉상만 학교 밖으.. 더보기
미국 전문학자가 보는 한국과 미국 에이드리언 루이스 인터뷰 기사 발췌 에이드리언 루이스(Adrian Lewis·70) 교수는 미국 캔자스대학 역사학과 교수로 저명한 군사전략 사상가다. 그는 저서 ‘미국 전쟁 문화:2차 대전부터 이라크전쟁까지 미군의 역사’(2017)에서 압도적 화력을 지닌 미국이 2차 대전 이후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까지 왜 거의 모든 전쟁에서 패했느냐는 이유를 집중적으로 탐구한 전쟁 전문 학자다. “한국은 이런 다극주의 강대국에 둘러쌓여 있다. 미국이 한쪽 편을 들라고 강요하더라도 이를 맹목적으로 따를 필요는 없다. 기억할 것은 한국은 주권국이란 사실이다. 균형(balance)을 갖춘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감안하면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것을 안다.” “윤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을.. 더보기
강화유수 이안눌과 벗 이야기 비석치기 갑곳리 강화전쟁박물관 마당에 옛 비석이 수두룩 모여있습니다. 대개가 조선시대 수령의 선정비입니다. 선정비를 불망비라고도 해요. 백성들이 그 지방에 부임했던 지방관의 선정을 고마워하며, 오래도록 기억하고자 세운 비가 선정비, 불망비입니다. 선정(善政)이란 ‘백성을 바르고 어질게 잘 다스린 정치’라는 뜻이요, 불망(不忘)이란 그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뜻이니 결국은 그 말이 그 말입니다. 선정비가 많은 것은 그만큼 선정을 베푼 지방관이 많았다는 것일까요? 물론, 아니죠. 선정 여부와 관계없이 관례로 세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백성을 괴롭혀 원성이 자자했던 수령의 선정비도 세워지기 마련입니다. 선정비 세우는 비용은 백성들에게 걷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많이 거두기도 해서 백성들이 아주 고통스러웠습니다. .. 더보기
8월 29일 오늘 경술국치일, 망국에 이른 과정 경술국치에 이르는 과정은 3대 통감 데라우치가 이완용에게 조약안을 넘겼다. 이완용은 순순히 받아서 조정으로 왔다. 1910년 경술년 8월 22일, 순종은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을 전권위원으로 임명해 일본과 ‘병합조약’을 체결하게 했다. 을사늑약 때와는 달리 반대하는 대신들도 없었다. 을사오적 중 한 사람인 이완용이 이번엔 주연으로 나섰다. 데라우치와 조약을 맺고 조약문에 도장을 찍었다.  제1조,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하고 영구히 일본국 황제 폐하에게 양여한다. 제2조, 일본국 황제 폐하는 앞 조항에 열거한 양여를 수락하고 한국을 완전히 일본 제국에 병합함을 승낙한다. 제8조, 본 조약은 일본국 황제 폐하와 한국 황제 폐하의 재가를 받은 것으로 공포일로부터 이를 시행한다. .. 더보기
홍범도 장군 동상을 철거한다는데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이회영의 동상을 철거한다고 합니다.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고 하지만, 사실상의 ‘철거’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이러다가 평화의 소녀상까지 모두 없애겠다고 하는 건 아닐까, 엉뚱한 생각마저 듭니다. 독립운동가를 지우는 행위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보다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염수가 우리 몸을 해할 거라면, 독립운동가 지우기는 우리의 혼과 정신을 망치는 것입니다. 일본과 관계를 개선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국익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까짓거, 우리가 통 크게 양보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과정이 진중해야 합니다. 과거를 용서하는 주체로서 당당함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답답합니다. 속상합니다. 보도에 따르면, 홍범.. 더보기
조선의 인물, 강화의 인물, 권필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시도 사랑하고 술도 사랑한다네. ... 내 붓은 내 손을 떠나지 않고 내 잔은 내 입을 떠나지 않네. ‘나’는 석주(石洲) 권필(權韠, 1569~1612)입니다. 조선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인정받던 인물입니다. 서울 서대문 밖 반송방에서 태어나 마포 현석촌에 살았습니다. 그의 호, 석주는 현석촌에서 딴 것입니다. 19살에 과거(소과)를 봐서 급제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합격이 취소됐어요. 그가 써낸 글 가운데 딱 한 글자가 문제가 돼서 최종 탈락한 것입니다. 절대 써서는 안 되는 글자, 이를테면 임금의 이름자 같은 걸 실수로 적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 평생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습니다. 합격 취소가 속상해서 과거를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조정 세력 간의 다툼, 분탕에 .. 더보기
광해군 폐위 이유 또는 명분 “능양군 이종은 … 보위에 나아가 선조대왕의 후사를 잇게 하노라. 그리고 부인 한씨를 책봉하여 왕비로 삼노라. 이리하여 교시하노니, 모두 알라.” 1623년(광해군 15) 3월 14일, 인목대비는 광해군을 폐하고 능양군(인조)이 왕위를 계승하게 한다는 교지를 내렸다. 아울러 광해군을 폐하는 이유를 여러 가지로 말했다. (《광해군일기》) ① “선조의 아들이라면 나를 어머니로 여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광해는 … 우리 부모를 형벌하여 죽이고 우리 일가들을 몰살시켰으며 품속에 있는 어린 자식을 빼앗아 죽이고 나를 유폐하여 곤욕을 치르게 하였으니, 그는 인간의 도리가 조금도 없는 자이다.” ② “여러 차례 큰 옥사를 일으켜 무고한 사람들을 가혹하게 죽였고, 민가 수천 호를 철거시키고 두 궁궐을 창건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