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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史

사극 ‘고려 거란 전쟁’ 이야기 존 웨인, 그레고리 펙, 클린트 이스트우드….소싯적에 폭 빠져서 보던 서부영화의 주인공 이름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백인들을 위협하던 인디언들이 미웠어요. 마침내 야비한 인디언들을 제압하고 승리하는 우리의 백인 주인공, 만세! 통쾌했습니다. 영화음악까지 멋들어졌지요. 그런데, 아, 일종의 세뇌였던 것 같습니다. 인디언은 아메리카 대륙 그 땅의 주인이고 백인들은 침략자입니다. 침략자에 맞서 싸우는 원주민들의 행위는 지극히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굳이 선악을 구분한다면, 인디언이 선이요, 백인이 악의 위치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 저는 무조건 백인이 선이요, 인디언을 악으로 여겼습니다. 굳이 ‘세뇌’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중국의 역사를 보는 우리네 시각에도 일정 부분 편견이 스며 있어요. 중국사를 한.. 더보기
망산 봉수가 사적으로 지정됐습니다 역사의 섬답게 강화에는 국가지정 문화유산이 많습니다. 보물이 ‘강화 장정리 오층석탑’을 비롯해 12건입니다.(국보는 없습니다) 사적은 ‘강화 삼랑성’을 포함해 16건입니다.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를 포함해 5건의 천연기념물도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군청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최근 사적이 하나 추가됐습니다. 2023년 11월 22일에 ‘강화 망산 봉수 유적’이 서해안 다른 지역 봉수와 함께 사적으로 지정된 것입니다. 내가면 망산은 덕산으로도 불립니다. 그곳에 봉수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문화재청은 보도자료를 통해 “조선 후기 군사 통신시설인 ‘제5로 직봉(전남 여수∼서울 목멱산)’ 노선상에 위치하는 61개 봉수 유적 중 역사적·학술적 가치, 잔존 상태, 유구 확인 여부 등을 고려하여 16.. 더보기
벌대총 그리고 진과 보 오매불망 강화도 대가가 새벽에 산성을 출발하여 강도로 향하려 하였다. 이때 눈보라가 심하게 몰아쳐서 산길이 얼어붙어 미끄러워 말이 발을 디디지 못하였으므로, 상이 말에서 내려 걸었다. 그러나 끝내 도착할 수 없을 것을 헤아리고는 마침내 성으로 되돌아왔다. 《인조실록》 1636년(인조 14) 12월 15일의 상황입니다. ‘산성’은 어느 산성일까요? 남한산성입니다. 병자호란 때 얘기입니다. 전날인 12월 14일에 인조와 조정은 남한산성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에 인조가 몰래 성을 나와 강화로 향했던 겁니다. 하지만 길이 너무 미끄러워서 포기하고 남한산성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다른 사료에는 “15일에 임금이 걸어서 가시다가 여러 번 엎어지셔서 옥체가 불편하여 도로 성에 드시었다.”라고 나옵니다. .. 더보기
사극 ‘연인’ 속 길채와 장현의 사랑 이야기 설렁설렁 보기 시작한 MBC 사극 ‘연인’에 그만, 푹 빠지고 말았습니다. 단지 남궁민이 나오는 드라마라서 보기 시작한 것인데 이야기 전개가 탄탄하고 메시지도 묵직해서 충직하게 ‘본방사수’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바지로 향하는 ‘연인’, 끝나면 되게 허전할 것 같습니다. 시대 배경이 병자호란입니다. 그때 주인공 유길채(안은진 분)도 강화로 피난 왔다가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강화도 함락 직전에 세손(소현세자의 장남)은 교동으로 피해 가서 무사했습니다. 내관 김인과 강문성 등이 생후 10개월 된 세손을 교대로 업고 뛰어서 교동 가는 배에 겨우 올랐다고 해요. ‘연인’의 작가는 그걸 길채가 세손을 구하는 것으로 각색했습니다. 길채가 세손을 안고 뛰는 바닷가 장면은 명장면이었습니다. 보면서 ‘굳이 저런 내용을 .. 더보기
강화 충렬사 배향 인물 현황 인물 배향시기 출처 인물 배향시기 출처 김상용 1642년 (인조 20) 《인조실록》 황일호 1796년 (정조 20) 《정조실록》 〈황일호 추배기〉 이상길 1642년 (인조 20) 《인조실록》 윤집 1796년 (정조 20) 《정조실록》 심현 1642년 (인조 20) 《인조실록》 민성 1817년 (순조 17) 《순조실록》 이시직 1642년 (인조 20) 《인조실록》 김수남 1824년 (순조 24) 《순조실록》 윤계 1642년 (인조 20) 《인조실록》 이돈서 1796년? (정조 20) 《속수증보강도지》 《강화충렬사지》 1787년 (정조 11) 《정조실록》 송시영 1642년 (인조 20) 《인조실록》 강위빙 1813년? (순조 13) 《강화충렬사지》 구원일 1642년 (인조 20) 《인조실록》 안몽상 1932.. 더보기
심주, 심도, 강화, 갑곶, 월곶 조선시대에 규모가 가장 작은 행정구역 단위는 현입니다. 현 위에 군, 도호부, 주 등이 있었습니다. 주(州)의 역사는 꽤 길어요. 통일신라 ‘9주 5소경’의 9주가 많이 알려졌지요. 이후 전국적으로 ‘-주’라는 지명이 널리 퍼졌습니다. 지금도 지방 큰 도시 지명에 ‘주’가 붙은 곳이 여럿입니다.조선 태종은 지방 행정구역을 정비하면서 주의 수를 크게 줄이는 방법으로 주의 격을 높였습니다. 어떻게 줄였을까요? 지명을 ‘-주’ 대신 ‘-산’이나 ‘-천’으로 바꾸게 했습니다. 그 결과 울주가 울산이 되고 포주가 포천이 되었습니다. 괴주가 괴산이 되고 인주가 인천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주’를 ‘-목’으로 불렀습니다. 나주목, 전주목…. 그래서 주의 수령을 목사(정3품)라고 했습니다. 조선 8도의 명칭은 대개 그.. 더보기
안타까운 역사, 반민특위 좌절 그리고 프랑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독립운동가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대통령도 그였다. 이승만은 미국에 주로 머물며 독립운동을 했다. 그의 독립운동은 외교활동이다. 총을 들어야만 독립운동이 아니다. 전투만큼 중요한 것이 외교다. 1948년 제헌국회 의원들이 대통령을 뽑았다. 이승만은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첫 번째 대통령으로 자격이 있었다. 볼만한 업적도 남겼다. 그러나 대통령 이승만은 역사에 큰 아쉬움도 남겼다. 상식적으로 풀어야 할 실타래가 이승만에 의해서 비상식적으로 뒤엉켜 버렸다. 친일파 처리 문제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그 긴 세월, 우리는 일제의 식민지였다. 해방된 조국에서 우선해야 할 일은 무엇이었을까. 자신과 가족을 희생하며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 세력을 우대.. 더보기
“임금이시여, 뉘우치는 뜻을 분명히 보이소서” “백성이 고통스러운 것은 전하께서 안민(安民)에 뜻을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1635년(인조 13), 이조참의 유백증이 상소해 인조의 잘못을 말했다. 바른말 하는 신하는 벌주고, 아첨하는 신하들만 이뻐하는 인조에게 “언로란 국가의 혈맥입니다. 혈맥이 통하지 않고서 그 몸을 제대로 보존하는 자는 없습니다”라고 호소했다. 유백증은 또 임금을 바로잡지 못하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대신들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조는 유백증을 잡아들여 심문하게 한 뒤 수원부사로 보내버렸다. 좌천이다. 대신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좌의정 오윤겸은 유백증의 말이 옳다고 했다. “오랫동안 부당하게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여태 물러날 줄 모르고” 있던 자신을 반성하면서 사표를 냈다. 우의정 김상용도 유백증을 지지하며 사표를 썼다.. 더보기
용흥궁의 주인은 누구인가 원래 이번 호에 강화의 지명에 관한 글을 쓸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신문을 읽다가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우선, 용흥궁을 다루기로 마음먹게 된 기사를 발췌합니다. 〈'친일파 이해승 후손' 힐튼호텔 회장 땅 환수소송, 정부가 졌다〉라는 제목의 중앙일보(2023.10.06. 정시내 기자) 기사입니다.  친일파 이해승의 후손이 소유한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땅을 국고에 환수하려 정부가 소송을 냈으나 대법원에서 패소가 확정됐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정부가 이해승의 손자인 이우영 그랜드힐튼호텔 회장을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의 원고패소 판결을 지난달 21일 확정했다. … 정부는 과거 이해승의 소유였다가 이 회장의 소유가 된 홍은동 임야 2만7905㎡를 환수하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