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史

거란의 침략과 서희의 외교 담판 《고려사》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거란에서 사신을 파견하여 낙타 50필을 보냈다. 왕은 거란이 일찍이 발해와 계속 화목하다가 갑자기 의심을 일으켜 맹약을 어기고 멸망시켰으니, 이는 매우 무도(無道)하여 친선 관계를 맺을 이웃으로 삼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드디어 교류를 끊고 사신 30인을 섬으로 유배 보냈으며, 낙타는 만부교 아래에 매어두니 모두 굶어 죽었다.  태조 왕건 때인 942년에 일어난 일입니다. ‘거란(契丹)’은 종족의 명칭이면서 나라 이름이기도 해요. 왕건 재위기에 이미 거란이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고려와 잘 지내자며 낙타를 선물했는데, 왕건이 굶겨 죽이고 사신들을 섬으로 유배 보냈습니다.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켰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거란을 향한 고려의 시선이 곱지 않았음을 알 수.. 더보기
언제인지 모호한 ‘구한말’ 굳이 써야 할까 “그렇죠, 구한말에 그런 일이 있었죠.” 강의 중에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구한말’(舊韓末)을 쓰지 말아야겠다고 맘먹은 지 꽤 오랜데, 또 불쑥 튀어나왔다. 습관을 고치기가 참 어렵다.  ‘나말여초’ ‘여말선초’처럼 구한말도 특정 시기를 구분하는 용어로 널리 쓰인다. 하지만 말뜻과 실제 쓰임에 괴리가 크고, 언제부터 언제까지를 가리키는지 규정되지 않아서 혼란스럽다. 특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힘들어한다. 국어사전은 구한말을 ‘대한제국의 시기’라고 풀었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1897년부터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는 1910년까지 14년 동안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명쾌해 보이지만, 바른 풀이라고 할 수 없다. ‘말’(末)을 못 본 체하면서 구한말을 ‘구한국’과 똑같은 의미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구한.. 더보기
사극 ‘고려 거란 전쟁’ 이야기 존 웨인, 그레고리 펙, 클린트 이스트우드….소싯적에 폭 빠져서 보던 서부영화의 주인공 이름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백인들을 위협하던 인디언들이 미웠어요. 마침내 야비한 인디언들을 제압하고 승리하는 우리의 백인 주인공, 만세! 통쾌했습니다. 영화음악까지 멋들어졌지요. 그런데, 아, 일종의 세뇌였던 것 같습니다. 인디언은 아메리카 대륙 그 땅의 주인이고 백인들은 침략자입니다. 침략자에 맞서 싸우는 원주민들의 행위는 지극히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굳이 선악을 구분한다면, 인디언이 선이요, 백인이 악의 위치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 저는 무조건 백인이 선이요, 인디언을 악으로 여겼습니다. 굳이 ‘세뇌’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중국의 역사를 보는 우리네 시각에도 일정 부분 편견이 스며 있어요. 중국사를 한.. 더보기
망산 봉수가 사적으로 지정됐습니다 역사의 섬답게 강화에는 국가지정 문화유산이 많습니다. 보물이 ‘강화 장정리 오층석탑’을 비롯해 12건입니다.(국보는 없습니다) 사적은 ‘강화 삼랑성’을 포함해 16건입니다.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를 포함해 5건의 천연기념물도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군청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최근 사적이 하나 추가됐습니다. 2023년 11월 22일에 ‘강화 망산 봉수 유적’이 서해안 다른 지역 봉수와 함께 사적으로 지정된 것입니다. 내가면 망산은 덕산으로도 불립니다. 그곳에 봉수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문화재청은 보도자료를 통해 “조선 후기 군사 통신시설인 ‘제5로 직봉(전남 여수∼서울 목멱산)’ 노선상에 위치하는 61개 봉수 유적 중 역사적·학술적 가치, 잔존 상태, 유구 확인 여부 등을 고려하여 16.. 더보기
벌대총 그리고 진과 보 오매불망 강화도 대가가 새벽에 산성을 출발하여 강도로 향하려 하였다. 이때 눈보라가 심하게 몰아쳐서 산길이 얼어붙어 미끄러워 말이 발을 디디지 못하였으므로, 상이 말에서 내려 걸었다. 그러나 끝내 도착할 수 없을 것을 헤아리고는 마침내 성으로 되돌아왔다. 《인조실록》 1636년(인조 14) 12월 15일의 상황입니다. ‘산성’은 어느 산성일까요? 남한산성입니다. 병자호란 때 얘기입니다. 전날인 12월 14일에 인조와 조정은 남한산성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에 인조가 몰래 성을 나와 강화로 향했던 겁니다. 하지만 길이 너무 미끄러워서 포기하고 남한산성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다른 사료에는 “15일에 임금이 걸어서 가시다가 여러 번 엎어지셔서 옥체가 불편하여 도로 성에 드시었다.”라고 나옵니다. .. 더보기
사극 ‘연인’ 속 길채와 장현의 사랑 이야기 설렁설렁 보기 시작한 MBC 사극 ‘연인’에 그만, 푹 빠지고 말았습니다. 단지 남궁민이 나오는 드라마라서 보기 시작한 것인데 이야기 전개가 탄탄하고 메시지도 묵직해서 충직하게 ‘본방사수’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바지로 향하는 ‘연인’, 끝나면 되게 허전할 것 같습니다. 시대 배경이 병자호란입니다. 그때 주인공 유길채(안은진 분)도 강화로 피난 왔다가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강화도 함락 직전에 세손(소현세자의 장남)은 교동으로 피해 가서 무사했습니다. 내관 김인과 강문성 등이 생후 10개월 된 세손을 교대로 업고 뛰어서 교동 가는 배에 겨우 올랐다고 해요. ‘연인’의 작가는 그걸 길채가 세손을 구하는 것으로 각색했습니다. 길채가 세손을 안고 뛰는 바닷가 장면은 명장면이었습니다. 보면서 ‘굳이 저런 내용을 .. 더보기
강화 충렬사 배향 인물 현황 인물 배향시기 출처 인물 배향시기 출처 김상용 1642년 (인조 20) 《인조실록》 황일호 1796년 (정조 20) 《정조실록》 〈황일호 추배기〉 이상길 1642년 (인조 20) 《인조실록》 윤집 1796년 (정조 20) 《정조실록》 심현 1642년 (인조 20) 《인조실록》 민성 1817년 (순조 17) 《순조실록》 이시직 1642년 (인조 20) 《인조실록》 김수남 1824년 (순조 24) 《순조실록》 윤계 1642년 (인조 20) 《인조실록》 이돈서 1796년? (정조 20) 《속수증보강도지》 《강화충렬사지》 1787년 (정조 11) 《정조실록》 송시영 1642년 (인조 20) 《인조실록》 강위빙 1813년? (순조 13) 《강화충렬사지》 구원일 1642년 (인조 20) 《인조실록》 안몽상 1932.. 더보기
심주, 심도, 강화, 갑곶, 월곶 조선시대에 규모가 가장 작은 행정구역 단위는 현입니다. 현 위에 군, 도호부, 주 등이 있었습니다. 주(州)의 역사는 꽤 길어요. 통일신라 ‘9주 5소경’의 9주가 많이 알려졌지요. 이후 전국적으로 ‘-주’라는 지명이 널리 퍼졌습니다. 지금도 지방 큰 도시 지명에 ‘주’가 붙은 곳이 여럿입니다.조선 태종은 지방 행정구역을 정비하면서 주의 수를 크게 줄이는 방법으로 주의 격을 높였습니다. 어떻게 줄였을까요? 지명을 ‘-주’ 대신 ‘-산’이나 ‘-천’으로 바꾸게 했습니다. 그 결과 울주가 울산이 되고 포주가 포천이 되었습니다. 괴주가 괴산이 되고 인주가 인천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주’를 ‘-목’으로 불렀습니다. 나주목, 전주목…. 그래서 주의 수령을 목사(정3품)라고 했습니다. 조선 8도의 명칭은 대개 그.. 더보기
안타까운 역사, 반민특위 좌절 그리고 프랑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독립운동가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대통령도 그였다. 이승만은 미국에 주로 머물며 독립운동을 했다. 그의 독립운동은 외교활동이다. 총을 들어야만 독립운동이 아니다. 전투만큼 중요한 것이 외교다. 1948년 제헌국회 의원들이 대통령을 뽑았다. 이승만은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첫 번째 대통령으로 자격이 있었다. 볼만한 업적도 남겼다. 그러나 대통령 이승만은 역사에 큰 아쉬움도 남겼다. 상식적으로 풀어야 할 실타래가 이승만에 의해서 비상식적으로 뒤엉켜 버렸다. 친일파 처리 문제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그 긴 세월, 우리는 일제의 식민지였다. 해방된 조국에서 우선해야 할 일은 무엇이었을까. 자신과 가족을 희생하며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 세력을 우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