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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史

사극 ‘고려 거란 전쟁’ 이야기

존 웨인, 그레고리 펙, 클린트 이스트우드….

소싯적에 폭 빠져서 보던 서부영화의 주인공 이름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백인들을 위협하던 인디언들이 미웠어요. 마침내 야비한 인디언들을 제압하고 승리하는 우리의 백인 주인공, 만세! 통쾌했습니다. 영화음악까지 멋들어졌지요.

그런데, 아, 일종의 세뇌였던 것 같습니다. 인디언은 아메리카 대륙 그 땅의 주인이고 백인들은 침략자입니다. 침략자에 맞서 싸우는 원주민들의 행위는 지극히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굳이 선악을 구분한다면, 인디언이 선이요, 백인이 악의 위치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 저는 무조건 백인이 선이요, 인디언을 악으로 여겼습니다.

굳이 ‘세뇌’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중국의 역사를 보는 우리네 시각에도 일정 부분 편견이 스며 있어요. 중국사를 한족(漢族)의 역사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바로 그 편견입니다. 오랜 세월 중국 역사의 한 축을 담당했던 다른 민족들의 역할을 깎아내립니다. 한족은 선진 문명의 주체이고 이민족들은 미개한 종족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잔존합니다.

거란의 글씨가 새겨있는 거울[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그렇지 않습니다. 거란(요나라), 여진(금나라, 이후 청나라), 몽골(원나라)도 한족에게 뒤지지 않는 문화 역량을 갖추고 나라를 경영했습니다. 이번 호에서 만나게 될 거란은 자체 문자를 갖고 있었고, 일본도 하지 못한 대장경을 간행했던 나라입니다.

고려와 조선 당시 중국왕조는 송·원·명·청, 송나라-원나라-명나라-청나라로 이어졌습니다. 한족 왕조인 송나라는 거란과 여진에게 영토의 상당 부분을 빼앗기고 그들의 위협 속에 있다가 몽골에 멸망했습니다.

원나라는 몽골이 세운 나라입니다. 이때 한족은 통째로 몽골족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명나라가 건국되면서 한족이 중국의 주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만주족(여진족)이 세운 청나라 때 가서 한족은 다시 만주족의 통치를 받게 됩니다. 머리 모양까지 만주족과 같은 변발을 해야 했습니다.

고려 때는 국제 관계가 참 복잡했어요. 한족 왕조 송나라와 거란, 여진, 몽골이 잇달아 맞붙어 싸웠습니다. 혼란한 국제 정세 속에서 고려는 거듭 외침을 받아야 했습니다. 대략 건국 초인 10세기와 11세기에 거란과 전쟁을 치렀고 12세기에는 여진과 대결했습니다. 그리고 13세기에는 몽골의 침략에 맞서 항쟁을 펼쳤습니다.

최수종이라는 배우가 있습니다. 우리 나이로 올해 63세입니다. 현대극보다는 사극에 어울리는 연기를 합니다. 평소에는 좀 촐랑촐랑하는 이미지인데 사극에서는 단박에 묵직해집니다. ‘태조 왕건’, ‘태양인 이제마’, ‘대조영’의 주인공이었습니다. ‘해신’에서도 주인공인 장보고를 연기했습니다. 어느 사극에선가는 강화도령 철종 역으로 나오기도 했지요.

이번에 그가 강감찬이 되었습니다. 연기가 빛납니다. 방영 중인 KBS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32부작)의 주인공입니다. 이 드라마가 시청률 10%를 넘기며 잘나가고 있습니다. KBS·MBC·SBS만 있던 때로 치면 아마 30% 이상에 해당하는 수치일 겁니다.

제천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석탑(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을 물리친다는 염원을 담아 고려 현종 때 세운 석탑)

 

자, 이제 당시의 역사와 드라마를 연결하면서 고려라는 나라에 대해서 조금 알아봅시다.

교과서 기준으로 볼 때 거란의 고려 침략은 총 세 차례 있었습니다. 1차 침략(993), 2차 침략(1010~1011), 3차 침략(1018~1019)입니다. 이렇게 딱 세 번만 큰 전투가 벌어진 것이 아닙니다만, 편의상 이대로 따르겠습니다.

거란의 1차 침략은 서희(徐熙, 942~998)가 거란군 총사령관 소손녕과 담판 외교를 펼쳐 위기를 극복합니다. 사극 ‘고려 거란 전쟁’은 2차 침략부터 다루기 때문에 서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서희는 강감찬 이상으로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가 어떻게 거란군을 물러나게 하고 강동6주까지 확보하게 됐는지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양규[출처 KBS]

 

거란의 2차 침략 때 단연 돋보인 인물은 양규(楊規, ?~1011)입니다. 한국인으로서 강감찬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역시, 양규를 아는 이도 별로 없었을 겁니다. ‘고려 거란 전쟁’을 통해 양규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어 다행입니다.

양규가 압록강 아래 흥화진에서 7일간 계속된 거란의 공격을 막아냈습니다. 거란군은 할 수 없이 흥화진을 포기하고 남진하게 됩니다. 거란군은 ‘적’을 뒤에 두고 남쪽으로 가면서 스스로 퇴로를 막은 꼴이 되었습니다.

신출귀몰하며 거란군을 휩쓸던 양규가 드라마 16회(2024.01.07.) 방송에서 장렬하게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지승현 배우가 양규 역을 맡는다고 예고됐을 때,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에 끝난 MBC 사극 ‘연인’에서 길채의 찌질한 남편 구원무를 연기한 사람인지라, 그런 생각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는 양규 그 자체였다고 할 만큼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만약에 제가 양규였다면, 흥화진 성안에 얌전히 있었을 것입니다. 성 지킬 임무를 완수했으니, 할 일은 다 한 겁니다. 그러다 전쟁이 끝나면 상 받고 승진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양규의 마음은 오로지 나라와 백성이었습니다. 안전한 흥화진을 나와 통주로, 곽주로 이동하면서 거란군을 급습해 무찌르고 잡혀간 백성들 수만 명을 구해냈습니다. 퇴각하는 거란군을 공격하다가 끝내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드라마에서는 강감찬도 크게 활약한 것으로 나옵니다. 거란군에게 끌려가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죽을 위기에서 겨우 살아난 것으로 그려졌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작가가 상상력을 바탕으로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역사 기록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으나, 거란의 2차 침략 때 강감찬이 적을 몰아내기 위해 무진장 애썼을 것은 자명합니다.

퓨전 사극과 달리 정통 사극은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극에 나오는 모든 내용이 사실(史實)일 수는 없습니다. 커다란 줄기라고 할까요, 이야기의 흐름은 역사를 따라가되, 인물 묘사 등 세세한 내용에서는 작가의 창작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거란의 2차 침략! 성종(聖宗, 야율융서)이 직접 대군을 몰아 고려로 쳐들어왔었지요. 무려 40만 명이라고 합니다. 수도 개경까지 점령했으나 항복을 받아내지 못하고 철군했습니다. 양규를 비롯한 고려인들의 끈질기고 처절한 저항의 결과입니다.

당시 거란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라고 평할 수 있습니다. 그때 유럽 나라들은 왕권과 군사력이 허약한 봉건제 시기였고요, 미국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고요, 중국 송나라는 거란에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그런 거란의 침략을 고려가 끝내 극복해 낸 것입니다.

소배압[출처 KBS]

 

김준배라는 배우가 있습니다. 단역이나 조연으로 나오는데 깡패 등등, 나쁜이 역할을 주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모처럼 주연급 조연을 맡았지요. 바로 거란군 총사령관 소배압입니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꽤 괜찮은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배우 본인도 가족들도 상당히 흐뭇할 것 같습니다. 저도 축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사실 그래요, 평생을 악인 역할만 맡는 배우를 보면 좀 안쓰러운 마음이 듭니다.

‘응, 어디서 봤지?’

고려 현종 역을 맡은 배우 김동준이 낯익습니다. 아, TV 변비약 광고에 나오는 친구였네요. 임금 연기 점점 잘합니다. 그런데 현종 임금의 옷 색깔이 노란색입니다. 사극에 나오는 조선의 임금들은 대개 붉은색 어의를 입는데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고려가 황제국이었기 때문입니다. 황색은 황제를 상징하는 색깔입니다. 그래서 신하들이 현종을 부를 때 ‘전하’라고 하지 않고, ‘폐하’라고 합니다. 강감찬의 관직명이 ‘예부시랑’이었습니다. 예부시랑은 조선시대로 치면 예조참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판서 다음 자리가 참판이에요. 조선은 이조, 호조, 예조 이렇게 ‘-조’라고 했고 고려는 이부, 호부, 예부 이렇게 ‘-부’라고 했습니다. 황제국에서 관청 명을 ‘-부’라고 하고 제후국에서는 ‘-조’라고 합니다.

앞으로 드라마에서 전개될 3차 침략을 알아보겠습니다. 소배압이 다시 올 겁니다. 호기롭게 침공했다가 비참하게 퇴각한 지 7년 만인, 1018년(현종 9)에 1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합니다. 이번엔 거란 임금 성종은 오지 않아요.

강감찬[출처 KBS]

 

이에 맞서는 고려군의 총사령관이 바로 강감찬(姜邯贊, 948~1031)입니다. 이때 나이가 72세였습니다. 강감찬을 보통 장군으로 부르기에 무신인 것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만, 과거에 급제한 문신입니다. 36세 때인 983년(성종 2)에 장원급제했습니다. 이 과거 시행을 주관한 인물이 시무28조로 유명한 최승로입니다. 강감찬은 원래 이름이 강은천(姜殷川)인데요, 과거에 합격한 뒤에 강감찬으로 개명했습니다.

강감찬은 흥화진 성 동쪽 강물을 쇠가죽으로 막아두었다가 일시에 물을 내려보내게 해서 도강하던 거란군을 격파합니다. 그래도 거란군은 꾸역꾸역 남하를 계속해서 개경 근처까지 이릅니다. 즉위하자마자 거란군의 침략을 당했던 현종, 그때는 전라도 나주로 피난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도성을 지키며 군사를 지휘해서 거란군을 무찌릅니다.

보급이 끊어진 거란군은 어쩔 수 없이 개경 점령을 포기하고 돌아갑니다. 퇴각하는 거란군을 강감찬이 공격하며 뒤따릅니다. 이윽고 귀주. 여기서 강감찬은 거란군과 싸워 크게 승리합니다. 성 밖 벌판에서 벌어진 전면전이었습니다. 귀주대첩을 《고려사절요》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거란 병사들이 귀주를 지나가자 강감찬 등이 동쪽 교외[東郊]에서 마주하여 싸웠으나 살아서 돌아간 적군은 겨우 수천 명에 불과하였다. 거란의 병사들이 패배한 것이 이때처럼 심한 적이 없었다.

 

참패 소식을 들은 거란 성종이 소배압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네가 적을 가볍게 보고 깊이 들어감으로써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니, 무슨 면목으로 나를 볼 것인가? 짐이 마땅히 너의 낯가죽을 벗겨낸 이후에 죽일 것이다.”

이렇게 길고 길었던 거란과의 전쟁이 끝났습니다. 이후 거란은 다시 쳐들어오지 못했습니다. 모처럼 고려에 평화가 왔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고등학생이 있다면, ‘10·11세기 거란, 12세기 여진, 13세기 몽골’ 그리고 ‘거란의 1차 침략-서희, 2차 침략-양규, 3차 침략-강감찬’, 이렇게 외워두기를 권합니다.

※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는 3차 침략 당시 거란군 총사령관을 소손녕이라고 적었습니다. 1차 침략 때 서희와 담판했던 그 소손녕입니다. 하지만 이는 뭔가 착오에서 생긴 오류입니다. 소손녕은 1차 침략 얼마 뒤인 996년(성종 15)쯤에 사망했습니다. 3차 침략 때 거란군 총사령관은 소배압이 맞습니다.

 

〈강화투데이〉 2024년 1월 15일, 제5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