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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史

참성단 소사나무 미스터리 마리산 참성단 소사나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단수(神壇樹)를 연상하게 한다. 참성단의 신비성을 더한다. 2009년에 천연기념물이 되었다. 사적 참성단 안에서 천연기념물 소사나무가 사는 것이다.  소사나무를 빼고 찍어봤다. 분위기가 다르다. 좀 삭막하기도 하다. 역시 참성단에 소사나무가 있어야 한다. 그저, 나무뿌리가 참성단 돌들을 무너지게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뿐.   산마루, 저 돌틈에서 기어이 살아내 우람한 기둥을 이룬 생명력.경외다. 수령을 150년으로 추정한다. 150년 전이면, 1870년대다. 그런데  1947년에 촬영한 사진 속에는 소사나무가 안 보인다. 그럼 이후 언젠가, 누군가 옮겨심은 것일까?궁금하다.  관련기사를 링크한다.   참성단 소사나무, 1947년엔 없었다천연기념물 강화 마.. 더보기
국가명 “조선” 단상 1910년 8월 29일, 나라가 죽었다. 그날 일제는 칙령 제318호로 이렇게 선언했다. “한국의 국호를 고쳐 지금부터 조선이라 칭한다.” 식민지 백성들은 ‘조선인’으로 불리게 되었다. 일본말로 ‘조센징’이다. 조선이라는 두 글자에 생채기가 났다. ‘조선’은 단군 고조선에서 시작됐다. 애초 고조선 국호는 조선이었다. 일연이 《삼국유사》를 쓰면서 위만조선과 구분하려고 ‘고’를 더해 고조선(古朝鮮)이라고 칭했다. 1392년에 이성계가 나라를 열었다. 다시 조선이다. 대중적으로 제일 익숙한 조선이다. 조선을 우러르는 이가 있고, 싫어하는 이도 있다. 미워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한 개인에게도 좋은 점과 아쉬운 부분이 다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나라임에랴.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미추가 갈린다. 분명한 것.. 더보기
이건창 생가, 정말 생가일까요? 소송 걸린 이건창 생가 ‘어? 이런 일이 있었네.’무심히 기사를 읽다가 놀랐습니다. 이건창 생가가 소송에 휘말린 겁니다. 생가 주변에 땅을 가진 어떤 분이 이건창 생가를 ‘인천광역시 기념물’에서 해제해 달라고 소송을 냈습니다.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없다는 이유입니다. 소송인은 이건창 생가가 엉터리로 복원됐고, 더구나 이건창이 태어난 곳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그렇지 않다, 이건창 생가는 역사·문화적 가치가 있다, 판결했습니다. 그러자 소송인이 항소했습니다.(연합뉴스, 2024.06.28. 손현규 기자)  이건창 집안의 청빈함을 보여주려는 의미였을 테지만, 아닌 게 아니라, 복원된 이건창 생가는 너무 소박합니다. 초가는 그렇다 쳐도 규모가 지나치게 작습니다. 할아버지 이시원, 아버지 이상학,.. 더보기
이괄은 왜 반란을 일으켰나 인조(1623-1649)가 즉위하고 얼마 안 돼서 이괄(李适, 1587-1624)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김포 옥성사에 모셔진 장만은 이괄의 난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인물입니다. 반란을 진압하여 나라를 안정시킨 장만의 공은 높이 칭송받아 마땅합니다. 다만, 이괄이 왜 반란을 일으켰는지에 관해서는 더 정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쿠데타에 가담하는 사람들은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성공하면 부귀와 권세가 가까워지지만 실패하면 바로 죽음이니까요. 광해군을 축출하고 인조가 새 왕으로 즉위한 인조반정. 이 사건을 주도한 사람들은 이귀, 김류, 이괄, 김자점 등입니다. 이괄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늦게 가담하기는 했지만, 군사를 지휘하며 역모를 성공하게 한, 그러니까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한 사람입니다. 인조.. 더보기
조선왕조실록과 정족산사고 임금이 말에서 떨어지자 연산군은 나쁜 임금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의 연산군은 우리가 아는 연산군보다는 덜 나쁜 임금이었을 겁니다. 연산군에 대해 우리가 아는 내용은 주로 연산군의 실록(《연산군일기》)에 기록된 것입니다. 연산군을 쫓아내고 들어선 중종 조정에서 《연산군일기》를 썼습니다. ‘중종반정’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실제보다 더 나쁘게 연산군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신하들에 대한 기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테면, 동인이 집권했을 때 편찬된 실록에서는 서인이 나쁘게 묘사된 편입니다. 서인이 집권했을 때 나온 실록에는 동인이 나쁘게 나오고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조선왕조실록은 탁월한 역사서임이 틀림없어요. 세계 유명 역사서와 견주어.. 더보기
[스크랩] '엉터리 복원 논란' 이건창 생가…법원 "문화재 가치 있다" 조선 후기 문장가 이건창(1852∼1898년) 선생의 인천 강화도 생가가 엉터리 복원 논란으로 소송에 휘말렸으나 법원은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인천지법 행정1-1부(김성수 부장판사)는 강화도 토지 소유주 A씨가 인천시장을 상대로 낸 문화재 지정 해제 요구 거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고 27일 밝혔다.앞서 A씨는 2020년 8월 국민신문고에 "이 선생 생가를 인천시 문화재인 기념물에서 제외하고 철거해야 한다"는 민원을 여러 차례 냈다.이 선생은 강화도 출신으로 조선 후기 충청우도(현 충청도 서부 지역)의 암행어사와 해주감찰사 등을 지낸 문신이자 문장가다.주요 저서인 '당의통략'은 조선시대 당쟁의 원인과 과정을 객관적으로 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A씨는 강화도 화도면에 있는 이 .. 더보기
강화산성을 쌓다 강화산성, 강화부성 지금 강화읍내를 빙 둘러 돌로 쌓은 성곽이 있지요. 일부 구간은 끊어졌지만, 그래도 꽤 많이 남아 있습니다. 남산과 북산 그리고 견자산으로 이어집니다. 성을 쌓으면 사람들 드나들 출입문도 내야죠. 그래서 동문, 서문, 남문, 북문이 섰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문 근처의 마을을 ‘동문안’, ‘서문밖’ 이런 식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서울 한양도성의 남대문과 동대문은 사실 죽은 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람들이 다닐 수 없잖아요. 그런데 강화의 성문들은 지금도 주민들이 오고 갑니다. 현대인과 함께 호흡하는 살아있는 문인 셈입니다.  이 성곽이 1964년에 사적으로 지정된 강화산성(江華山城)입니다. 그런데요, 저는 ‘강화산성’이라는 공식 이름이 좀 어색하다고 생각합니다. 산성이란, 산에 쌓은.. 더보기
강화외성을 소개합니다 강화도에 대한 믿음  “남한산성과 북한산성, 강도(江都)를 내가 다 봤는데 지세와 형편은 강도가 가장 뛰어났다. 옛날에 김경징으로 인해 제대로 지키지는 못했지만, 이는 실로 김경징의 죄이지 어찌 지리 때문이겠는가.” 영조 임금이 한 말인데요, 《승정원일기》에 나옵니다. 병자호란 때 강화가 청군에게 함락된 것은 김경징 등 지키는 이들의 잘못 때문이지 강화의 지형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강화가 외적의 침략을 막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는 믿음을 여전히 갖고 있던 영조입니다. 앞의 임금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봉림대군 시절 강화에서 직접 병자호란을 겪었던 효종도 영조와 같은 생각이었지요. 효종은 강화도를 더욱 안전하게 지키려고 해안에 군사시설을 설치합니다. 월곶진, 초지진 등이에요. 강화에 진·보가 설치되기.. 더보기
성종의 세자 교육을 살펴보며 성종의 선택은?“세자가 어린데도 날마다 서연에 나와 빡빡한 공부 일정 따라가느라 지친 것 같습니다. 적절히 여가를 주어서 몸과 마음을 휴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조선시대, 임금의 공식적인 공부를 경연(經筵)이라고 하고, 세자의 공부를 서연(書筵)이라고 합니다. 지금 세자 나이 겨우 8살입니다. 서연 일정이 너무 빡빡합니다. 김수광이라는 신하가 성종에게 세자를 적절히 쉬게 해주자고 청했습니다. 성종이 다른 신하들의 생각은 어떤지 물었습니다. 김종직이 대답합니다. “공부를 잠시라도 그치게 되면 태만함에 익숙해지는 법입니다. 신은 김수광의 생각이 그르다고 생각합니다.”노는 맛을 들이게 되면 공부를 안 하게 되니 쉼 없이 시켜서 공부 습관을 잡아줘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러자 김수광은 김종직의 말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