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史 썸네일형 리스트형 조선왕조실록과 정족산사고 임금이 말에서 떨어지자 연산군은 나쁜 임금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의 연산군은 우리가 아는 연산군보다는 덜 나쁜 임금이었을 겁니다. 연산군에 대해 우리가 아는 내용은 주로 연산군의 실록(《연산군일기》)에 기록된 것입니다. 연산군을 쫓아내고 들어선 중종 조정에서 《연산군일기》를 썼습니다. ‘중종반정’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실제보다 더 나쁘게 연산군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신하들에 대한 기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테면, 동인이 집권했을 때 편찬된 실록에서는 서인이 나쁘게 묘사된 편입니다. 서인이 집권했을 때 나온 실록에는 동인이 나쁘게 나오고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조선왕조실록은 탁월한 역사서임이 틀림없어요. 세계 유명 역사서와 견주어.. 더보기 [스크랩] '엉터리 복원 논란' 이건창 생가…법원 "문화재 가치 있다" 조선 후기 문장가 이건창(1852∼1898년) 선생의 인천 강화도 생가가 엉터리 복원 논란으로 소송에 휘말렸으나 법원은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인천지법 행정1-1부(김성수 부장판사)는 강화도 토지 소유주 A씨가 인천시장을 상대로 낸 문화재 지정 해제 요구 거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고 27일 밝혔다.앞서 A씨는 2020년 8월 국민신문고에 "이 선생 생가를 인천시 문화재인 기념물에서 제외하고 철거해야 한다"는 민원을 여러 차례 냈다.이 선생은 강화도 출신으로 조선 후기 충청우도(현 충청도 서부 지역)의 암행어사와 해주감찰사 등을 지낸 문신이자 문장가다.주요 저서인 '당의통략'은 조선시대 당쟁의 원인과 과정을 객관적으로 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A씨는 강화도 화도면에 있는 이 .. 더보기 강화산성을 쌓다 강화산성, 강화부성 지금 강화읍내를 빙 둘러 돌로 쌓은 성곽이 있지요. 일부 구간은 끊어졌지만, 그래도 꽤 많이 남아 있습니다. 남산과 북산 그리고 견자산으로 이어집니다. 성을 쌓으면 사람들 드나들 출입문도 내야죠. 그래서 동문, 서문, 남문, 북문이 섰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문 근처의 마을을 ‘동문안’, ‘서문밖’ 이런 식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서울 한양도성의 남대문과 동대문은 사실 죽은 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람들이 다닐 수 없잖아요. 그런데 강화의 성문들은 지금도 주민들이 오고 갑니다. 현대인과 함께 호흡하는 살아있는 문인 셈입니다. 이 성곽이 1964년에 사적으로 지정된 강화산성(江華山城)입니다. 그런데요, 저는 ‘강화산성’이라는 공식 이름이 좀 어색하다고 생각합니다. 산성이란, 산에 쌓은.. 더보기 강화외성을 소개합니다 강화도에 대한 믿음 “남한산성과 북한산성, 강도(江都)를 내가 다 봤는데 지세와 형편은 강도가 가장 뛰어났다. 옛날에 김경징으로 인해 제대로 지키지는 못했지만, 이는 실로 김경징의 죄이지 어찌 지리 때문이겠는가.” 영조 임금이 한 말인데요, 《승정원일기》에 나옵니다. 병자호란 때 강화가 청군에게 함락된 것은 김경징 등 지키는 이들의 잘못 때문이지 강화의 지형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강화가 외적의 침략을 막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는 믿음을 여전히 갖고 있던 영조입니다. 앞의 임금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봉림대군 시절 강화에서 직접 병자호란을 겪었던 효종도 영조와 같은 생각이었지요. 효종은 강화도를 더욱 안전하게 지키려고 해안에 군사시설을 설치합니다. 월곶진, 초지진 등이에요. 강화에 진·보가 설치되기.. 더보기 성종의 세자 교육을 살펴보며 성종의 선택은?“세자가 어린데도 날마다 서연에 나와 빡빡한 공부 일정 따라가느라 지친 것 같습니다. 적절히 여가를 주어서 몸과 마음을 휴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조선시대, 임금의 공식적인 공부를 경연(經筵)이라고 하고, 세자의 공부를 서연(書筵)이라고 합니다. 지금 세자 나이 겨우 8살입니다. 서연 일정이 너무 빡빡합니다. 김수광이라는 신하가 성종에게 세자를 적절히 쉬게 해주자고 청했습니다. 성종이 다른 신하들의 생각은 어떤지 물었습니다. 김종직이 대답합니다. “공부를 잠시라도 그치게 되면 태만함에 익숙해지는 법입니다. 신은 김수광의 생각이 그르다고 생각합니다.”노는 맛을 들이게 되면 공부를 안 하게 되니 쉼 없이 시켜서 공부 습관을 잡아줘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러자 김수광은 김종직의 말을.. 더보기 강화도 진·보·돈대 지도 『강화도史』 (역사공간 출판사) / 원자료 : 인천문화재단 인천문화유산센터 더보기 [스크랩] 한국 가톨릭, 병인양요 첨병 노릇 참회(1997) 1866년 9월 18일 중국 천진을 떠나 강화도로 향하던 프랑스 함대에는 프랑스 신부 1명과 조선인 천주교 신자 3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조선 침략 함대를 인도하고 협력을 아끼지 않았던 이들의 머리 속에는 군사적 침략이 야기할 참상보다 대원군의 종교 박해에 보복하겠다는 생각밖에 들어 있지 않았다. 그해 2월부터 시작된 병인박해에서 프랑스 주교 2명과 신부 7명을 비롯한 수많은 조선인 신자가 처형되었기 때문이다. 7척의 프랑스 극동함대에 탑승한 리델 신부와 최선일·최인서·심순녀 등 조선인 신자들은 물길 안내인과 통역관으로서 함대를 이끌었다. 종교 박해를 이유로 유럽 제국주의 세력을 앞장서서 이 땅에 끌어들인 셈이다. 프랑스가 강화도 침략을 감행한 지 1백31년 만에, 침략의 첨병 노릇을 했던 한국 가톨릭이.. 더보기 광해군 폐위되던 날 《속잡록》에 명나라 장수 조도사(趙都司)가 한양에 와서 지은 시가 나온다. 《대동야승》과 《연려실기술》에 실려 있다. 광해군 말년인 1622년(광해군 14) 2월 3일에 지은 것이라고 한다. 조도사는 실록에 나오는 조유격인 것 같다. 유격(遊擊, 관직명) 조우(趙佑)이다. 다음은 조도사가 지은 시이다. 맑은 향 맛난 술은 천 사람의 피요 / 淸香旨酒千人血가늘게 썬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고혈일세 / 細切珍羞萬姓膏촛불 눈물 떨어질 때 사람 눈물 떨어지고 / 燭淚落時人淚落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성도 드높구나 / 歌聲高處怨聲高 《속잡록》은 이 시를 “광해군 시대에 정사가 어지럽고 백성이 곤궁함을 지적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런데 어디 광해군 시대뿐이랴. 어디 조선시대뿐이랴. 가만,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금.. 더보기 진무영이 뭐예요? 임진왜란 당시인 1593년(선조 26), 선조가 비망기(備忘記)를 내려 명합니다. “적의 난리를 겪는 2년 동안 군사 한 명 훈련 시키거나 기계 하나 수리한 것 없이, 명나라 군대만을 바라보며 적이 제 발로 물러가기만을 기다렸으니 불가하지 않겠는가.…이렇게 세월만 보내면서 망할 때를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내 생각에 따로 훈련도감을 설치하여 합당한 인원을 차출해서 장정을 뽑아 날마다 활을 익히기도 하고 포를 쏘기도 하여 모든 무예를 닦도록 하고 싶으니, 의논하여 처리하라.”이리하여 훈련도감이 창설되었습니다. 이후 인조 재위기에 총융청, 어영청, 수어청이, 숙종 때 금위영이 들어서면서 중앙군영 5군영 체제가 성립됩니다. 5군영 가운데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이 도성 수비를 맡아 삼군문으로 불리.. 더보기 이전 1 ··· 4 5 6 7 8 9 10 ··· 1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