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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史

역사의 숲속, 전등사 옥등을 전하여 전등사, 한자로 傳燈寺라고 씁니다. 등(燈)을 전(傳)한 절이라는 뜻이 이름에 담겼네요. 전등사가 자리잡은 산은 정족산입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정족산을 전등산으로도 불렀습니다. 전등사가 있는 산이라는 의미입니다. 처음 이름은 진종사(眞宗寺)였대요. 고려 충렬왕 때 정화궁주(貞和宮主)가 옥등(玉燈)과 중국서 들여온 대장경 인쇄본을 시주해서, 절 이름을 전등사로 바꿨다고 합니다. ‘아, 정화궁주가 옥등을 전해줘서 전등사가 되었구나.’ 그렇습니다. 그런데요, 대장경도 등(燈)입니다. 법등(法燈)이라고 합니다. 자연의 어두움을 밝히는 게 옥등이라면, 인간의 어두움을 밝히는 게 법등이래요. 대장경을 시주해서 전등사라고 이름하였다! 이렇게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정말 전등사에 옥등이 있었을까.. 더보기
강화 항일의병과 진위대 일본의 노예가 되느니…여기 한 소년이 있습니다. 엄마가 너무 아파요. 쌀도 떨어졌고요. 소년은 물어물어 멀리 아버지를 찾아가 도움을 청합니다. 하지만 거절당합니다. 아버지는 한 푼도 주지 않고 돌아가라고만 합니다. 아버지 아랫사람이 딱하게 여기고 몰래 돈을 주었습니다. 어머니 약값에 쓰고 쌀도 좀 사라고 했겠지요. ‘어휴, 이제는 엄마에게 약도 밥도 드릴 수 있겠구나.’ 소년의 안도는 잠깐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어떻게 알았는지, 돈을 빼앗아버린 겁니다. 소년은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참 매정한 아버지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보내고 나서 뜨거운 눈물을 삼켰을 것입니다.  이 나쁜 아버지, 그이 이름이 연기우(延基羽)입니다. 강화 진위대 출신, 항일 의병장이에요. 어느 아비에게나 자식은 너무도 .. 더보기
참성단 소사나무 미스터리 마리산 참성단 소사나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단수(神壇樹)를 연상하게 한다. 참성단의 신비성을 더한다. 2009년에 천연기념물이 되었다. 사적 참성단 안에서 천연기념물 소사나무가 사는 것이다.  소사나무를 빼고 찍어봤다. 분위기가 다르다. 좀 삭막하기도 하다. 역시 참성단에 소사나무가 있어야 한다. 그저, 나무뿌리가 참성단 돌들을 무너지게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뿐.   산마루, 저 돌틈에서 기어이 살아내 우람한 기둥을 이룬 생명력.경외다. 수령을 150년으로 추정한다. 150년 전이면, 1870년대다. 그런데  1947년에 촬영한 사진 속에는 소사나무가 안 보인다. 그럼 이후 언젠가, 누군가 옮겨심은 것일까?궁금하다.  관련기사를 링크한다.   참성단 소사나무, 1947년엔 없었다천연기념물 강화 마.. 더보기
국가명 “조선” 단상 1910년 8월 29일, 나라가 죽었다. 그날 일제는 칙령 제318호로 이렇게 선언했다. “한국의 국호를 고쳐 지금부터 조선이라 칭한다.” 식민지 백성들은 ‘조선인’으로 불리게 되었다. 일본말로 ‘조센징’이다. 조선이라는 두 글자에 생채기가 났다. ‘조선’은 단군 고조선에서 시작됐다. 애초 고조선 국호는 조선이었다. 일연이 《삼국유사》를 쓰면서 위만조선과 구분하려고 ‘고’를 더해 고조선(古朝鮮)이라고 칭했다. 1392년에 이성계가 나라를 열었다. 다시 조선이다. 대중적으로 제일 익숙한 조선이다. 조선을 우러르는 이가 있고, 싫어하는 이도 있다. 미워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한 개인에게도 좋은 점과 아쉬운 부분이 다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나라임에랴.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미추가 갈린다. 분명한 것.. 더보기
이건창 생가, 정말 생가일까요? 소송 걸린 이건창 생가 ‘어? 이런 일이 있었네.’무심히 기사를 읽다가 놀랐습니다. 이건창 생가가 소송에 휘말린 겁니다. 생가 주변에 땅을 가진 어떤 분이 이건창 생가를 ‘인천광역시 기념물’에서 해제해 달라고 소송을 냈습니다.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없다는 이유입니다. 소송인은 이건창 생가가 엉터리로 복원됐고, 더구나 이건창이 태어난 곳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그렇지 않다, 이건창 생가는 역사·문화적 가치가 있다, 판결했습니다. 그러자 소송인이 항소했습니다.(연합뉴스, 2024.06.28. 손현규 기자)  이건창 집안의 청빈함을 보여주려는 의미였을 테지만, 아닌 게 아니라, 복원된 이건창 생가는 너무 소박합니다. 초가는 그렇다 쳐도 규모가 지나치게 작습니다. 할아버지 이시원, 아버지 이상학,.. 더보기
이괄은 왜 반란을 일으켰나 인조(1623-1649)가 즉위하고 얼마 안 돼서 이괄(李适, 1587-1624)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김포 옥성사에 모셔진 장만은 이괄의 난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인물입니다. 반란을 진압하여 나라를 안정시킨 장만의 공은 높이 칭송받아 마땅합니다. 다만, 이괄이 왜 반란을 일으켰는지에 관해서는 더 정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쿠데타에 가담하는 사람들은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성공하면 부귀와 권세가 가까워지지만 실패하면 바로 죽음이니까요. 광해군을 축출하고 인조가 새 왕으로 즉위한 인조반정. 이 사건을 주도한 사람들은 이귀, 김류, 이괄, 김자점 등입니다. 이괄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늦게 가담하기는 했지만, 군사를 지휘하며 역모를 성공하게 한, 그러니까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한 사람입니다. 인조.. 더보기
조선왕조실록과 정족산사고 임금이 말에서 떨어지자 연산군은 나쁜 임금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의 연산군은 우리가 아는 연산군보다는 덜 나쁜 임금이었을 겁니다. 연산군에 대해 우리가 아는 내용은 주로 연산군의 실록(《연산군일기》)에 기록된 것입니다. 연산군을 쫓아내고 들어선 중종 조정에서 《연산군일기》를 썼습니다. ‘중종반정’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실제보다 더 나쁘게 연산군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신하들에 대한 기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테면, 동인이 집권했을 때 편찬된 실록에서는 서인이 나쁘게 묘사된 편입니다. 서인이 집권했을 때 나온 실록에는 동인이 나쁘게 나오고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조선왕조실록은 탁월한 역사서임이 틀림없어요. 세계 유명 역사서와 견주어.. 더보기
[스크랩] '엉터리 복원 논란' 이건창 생가…법원 "문화재 가치 있다" 조선 후기 문장가 이건창(1852∼1898년) 선생의 인천 강화도 생가가 엉터리 복원 논란으로 소송에 휘말렸으나 법원은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인천지법 행정1-1부(김성수 부장판사)는 강화도 토지 소유주 A씨가 인천시장을 상대로 낸 문화재 지정 해제 요구 거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고 27일 밝혔다.앞서 A씨는 2020년 8월 국민신문고에 "이 선생 생가를 인천시 문화재인 기념물에서 제외하고 철거해야 한다"는 민원을 여러 차례 냈다.이 선생은 강화도 출신으로 조선 후기 충청우도(현 충청도 서부 지역)의 암행어사와 해주감찰사 등을 지낸 문신이자 문장가다.주요 저서인 '당의통략'은 조선시대 당쟁의 원인과 과정을 객관적으로 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A씨는 강화도 화도면에 있는 이 .. 더보기
강화산성을 쌓다 강화산성, 강화부성 지금 강화읍내를 빙 둘러 돌로 쌓은 성곽이 있지요. 일부 구간은 끊어졌지만, 그래도 꽤 많이 남아 있습니다. 남산과 북산 그리고 견자산으로 이어집니다. 성을 쌓으면 사람들 드나들 출입문도 내야죠. 그래서 동문, 서문, 남문, 북문이 섰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문 근처의 마을을 ‘동문안’, ‘서문밖’ 이런 식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서울 한양도성의 남대문과 동대문은 사실 죽은 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람들이 다닐 수 없잖아요. 그런데 강화의 성문들은 지금도 주민들이 오고 갑니다. 현대인과 함께 호흡하는 살아있는 문인 셈입니다.  이 성곽이 1964년에 사적으로 지정된 강화산성(江華山城)입니다. 그런데요, 저는 ‘강화산성’이라는 공식 이름이 좀 어색하다고 생각합니다. 산성이란, 산에 쌓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