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이회영의 동상을 철거한다고 합니다.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고 하지만, 사실상의 ‘철거’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이러다가 평화의 소녀상까지 모두 없애겠다고 하는 건 아닐까, 엉뚱한 생각마저 듭니다.
독립운동가를 지우는 행위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보다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염수가 우리 몸을 해할 거라면, 독립운동가 지우기는 우리의 혼과 정신을 망치는 것입니다.
일본과 관계를 개선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국익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까짓거, 우리가 통 크게 양보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과정이 진중해야 합니다. 과거를 용서하는 주체로서 당당함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답답합니다. 속상합니다.
보도에 따르면, 홍범도(1868~1943) 장군의 공산주의 경력도 문제가 됐다고 합니다. 공산당 동상을 육사에 두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의미이겠죠. 우리 국력이 북한에도 뒤지던 1950년대라면, 문제 삼을 만한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닙니다. 북한과 남한의 국력을 비교하는 자체가 우스운 현실입니다. 이제는 포용적인 시각도 필요합니다.
홍범도를 비판하는 분들이 일제강점기 그 시대의 독립군이었다면, 그분들 상당수도 공산주의자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당시는 공산주의·공산국가의 실체를 모르던 때입니다. 모두가 다 함께 잘 먹고 잘사는 평등한 세상을 만든다는데, 누가 아니 좋아하겠습니까.
북한 정권과 일제강점기 공산주의자들을 동일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홍범도를 ‘친북한파’로 인식하는 것도 사실에서 어긋납니다. 그는 해방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둠의 독재 시절 ‘공산주의’는 정적(政敵)을 없애는 수단이자, 도구로도 활용되었습니다. 이 밝은 '자유민주주의' 세상에서는 어불성설입니다. 하여 이제는, 공산주의에 발 담갔던 독립군을 무조건 불온시하는 습속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북한 정권에 참여한 이들은 제외하더라도 말입니다. 공산주의자였던 북한 출신 인사가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을 하는 세상 아닙니까.
어떤 독립군이 공산주의자였는가, 아닌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무슨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독립이라는 열망 하나로, 저 멀리 만주로 갔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의건 타의였건, 공산당원이 되었다고 해도 그들에게 공산주의는 독립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독립군의 길로 나섰다는 것은 조국 독립을 위해 가족도 자신도 다 버렸다는 의미입니다. 친일파 누군가 진수성찬 즐기고 있을 때 독립군은 꽁꽁 언 주먹밥 녹여 넘기며 일본군과 기약 없는 전투를 치렀습니다. 온전히 독립군의 힘으로 이룬 광복은 아닙니다만,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 근대사가 얼마나 비루해졌을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권을 이른바 보수 세력이 잡느냐, 진보 세력이 잡느냐에 따라 많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독립운동가에 대한 평가까지 휙휙 바꾸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카자흐스탄에서 국내로 모셔 온 것은 ‘진보’ 문재인 대통령 때입니다만, 그에게 감사와 존숭의 마음을 담아 훈장을 올린 것은 ‘보수’ 박정희 대통령 때입니다. 우리 해군 잠수함에 ‘홍범도호’라고 이름 붙인 것은 박근혜 대통령 때입니다.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이회영의 동상을 철거하면 안 됩니다. 왜 모두를 부끄럽게 하는지...
일제강점기에 우리 독립군들이 부르던 노래 가사 일부를 옮기며 마무리합니다. 홍범도 장군도 이 노래를 불렀을 것 같습니다.
탄환이 빗발같이 퍼붓더라도
창과 칼이 네 앞을 가로막아도
대한의 용장한 독립군사야
나아가고 나아가고 다시 나가라
최후의 네 핏방울 떨어지는 날
최후의 네 살점이 떨어지는 날
네 그리던 조상나라 다시 살리라
네 그리던 자유꽃이 다시 피리라
2023.09.21. 관련 뉴스 추가 링크
[단독] '흉상 이전' 공사 계약까지 마쳤던 육사, 논란 커지자 해지
[앵커] 육군사관학교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이전할지 말지 검토 중이라던 시기에 이미 흉상을 옮기기 위해 한 업체와 공사 계약까지 맺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다 흉상 이전이 부적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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