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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학교 교사 채용, 내면이 공정해야 1980년대, 90년대, 그때는 상당히 많은 학교가 거금을 받고 교사를 뽑았다. 서울은 얼마, 부산은 얼마, 인천은 얼마, 이런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았다. 1년 동안 봉급 없이 무보수로 근무하는 조건을 내건 학교도 있었다. 지금은 깨끗해졌다. 하지만, 각종 채용 비리로 잡음을 일으키는 사학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소수 비리 사학 때문에 대다수 사립학교까지 불공정하게 교사를 뽑는 것처럼 오해되었다. 급기야 사립학교의 인사권이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됐다. 교사채용 때 시행하는 필기시험을 교육청에 위탁하도록 강제된 것이다. 자사고와 외고는 제외다.이제 사립학교는 지역 교육청에서 선발해준 몇 배수 인원을 대상으로 응시서류, 시강, 실기, 면접을 통해 최종 합격자를 정한다. 선발 방법과 배점 등을 명확하게 공개하.. 더보기
사공 손돌과 손돌목 이야기(下) 또 다른 해석이제 지금까지와 다른 시각에서 손돌목을 보겠습니다. 김정호의 《대동지지》는 손돌목을 손량항(孫梁項)으로 적었습니다. 《인조실록》에서도 ‘손량항’이 보입니다. ‘梁’은 착량(窄梁)에서 따온 글자입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등에 ‘착량(窄梁)’이라는 강화의 지명이 등장합니다. ‘窄’은 ‘좁을 착’ 자입니다. ‘梁’은 ‘들보’ 또는 ‘징검다리’라는 원뜻과 달리 좁은 바다, 즉 해협이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명량해전, 노량해전 할 때의 그 ‘량’입니다. 그러니까 ‘착량’을 폭이 좁은 바다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될 것입니다. 《속수증보강도지》는 강화와 교동 사이 바닷길이, 그러니까 내가면 외포리 바다쯤이 착량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대개의 역사학자가 염하 또는 염하의 한 구간인 손돌목을 착량.. 더보기
사공 손돌과 손돌목 이야기(中) 이야기 분석이제, 지금 알려진 손돌 이야기와 《강도부지》의 차이점을 보겠습니다.  ① 바가지 손돌이 죽기 직전 바가지를 띄우고 가라고 한 이야기는 가장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다양한 생각거리를 제공합니다. 교훈적이기도 합니다. 손돌은 임금이 야속하고 미웠을 것입니다. 그냥 잠자코 죽었으면, 임금도 죽었을지 모르는데, 왜 살렸을까요? 충성심일 것 같습니다. 저는 손돌의 충성심을 임금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나라에 대한 충성, 즉 애국심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당시는 임금이 곧 국가인 시절입니다. 임금이 죽으면 나라가 망하는 것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나라가 망하기를 백성 손돌은 원하지 않습니다. 결국, 임금을 살려야 했습니다. 자신은 죽임을 당하더라도. 진정한 프로페셔널, 사공으로서의 자부심, 이런 시각으로 .. 더보기
사공 손돌과 손돌목 이야기(上) 바가지를 띄우시오강화의 대표적인 전설 가운데 하나가 뱃사공 손돌 이야기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창작된 허구인지, 아니면 실재했던 어떤 사실에 점점 살이 붙으면서 완성된 이야기인지, 명확히 알 수 없습니다. 우선, 오늘날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손돌은 뱃사공이다. 어느 임금이 난리를 피해 강화도로 오게 되었다. 김포 쪽에서 배를 타야 강화도에 올 수 있다. 임금을 모실 사공으로 손돌이 선발됐다. 배가 출발했다. 그런데 심히 출렁인다. 임금과 신하들이 보니 손돌이 물살 세서 위험해 보이는 곳으로 배를 저어 가는 거다.잔잔한 곳으로 가도록 명했지만, 손돌은 듣지 않았다. 자신이 가는 길이 안전한 물길이었기 때문이다. ‘이놈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 의심이 인 임금은 그 자리에서 손돌의 목을 치게 .. 더보기
[스크랩] 경제 논리에 밀려 청산한 강화고려역사재단 〈인천투데이〉 2025.01.03. 박길상 기자 7년 전 오늘, 2018년 1월 3일, 인천시가 인천문화재단 강화역사문화센터를 강화도에서 인천으로 철수시켰다. 강화역사문화센터 전신은 강화고려역사재단이었다.강화고려역사재단은 강화와 고려사 연구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6.25전쟁 이후 고려 수도 개성이 북쪽 지역에 들어가면서 남쪽에서는 고려의 역사성을 내세울 만한 곳이 극히 드물었는데 강화는 달랐다. 여·몽전쟁 시기 39년간이나 피란수도로 기능했던 강화도가 남쪽의 거의 유일한 고려사를 간직한 곳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2013년 7월 강화고려역사재단이 인천광역시 산하 기관으로 설립된 것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먼저, 2012년 8월 21일 인천시는 인천문화재단 내에 고.. 더보기
오징어 게임 시즌2, 좋았다, 아쉬운 건 몇 해 전, ‘오징어 게임’은 사실충격이었다. 재미있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우리네 어릴 때 즐기던 저 ‘하찮은’ 놀이가 드라마가 됐다는 점,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누린다는 사실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발상의 전환이라고 할까, 만든이들의 신박한 시선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오징어 게임 시즌2가 열렸다. 여기저기서 실망의 소리가 많이 들린다. 보다가 말았다는 글도 꽤 보인다. ‘별로인가 보네.’기대치를 조금 낮추고 이 드라마를 봤다. 어, 그런데, 재밌어. 다 봤다. 나는 좋았다. 시즌1은 게임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끌어갔다. 시즌2는 게임 외 요소들이 삽입된다. 이걸 어떤 이는 산만하다고 느끼고어떤 이는 다채롭다고 여기면서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다. 시즌1이 심플했다면, 시즌2는 인간의 내면.. 더보기
동막해변 이어서 ‘배터지는 집’ 오후 3시쯤.별안간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라도 가볼까? 동막으로 가자. 분오리돈대 사진 찍으려고 카메라를 챙겼다.  이런, 들어갈 수 없었다. 사고 예방한다고 돈대 입구를 막았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해변으로 내려갔다. 바다다. 끝이 없을 것 같은 갯벌을 주로 봐왔는데 오늘은 물이 밀어 진짜 바다 같았다. 왜 이리 사람들이 많지?아, 일몰을 보려고 모인 이들이다. 그렇구나, 시간이. 오늘은 2025년 1월 1일. 일출 봐야 그럴듯한 날에 나도 사람들 속에서 일몰을 보았다. 아름다웠다.  답답함 씻어내고 돌아오는 길정수사 입구에 있는 칼국숫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다가 가끔 봐서 이름이 익은 곳이다. ‘배터지는 집’맛있다기보다는 양이 많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이름이다.나는 .. 더보기
운요호 사건의 진실 운양호·운요호프랑스와 미국에 이어 이번에는 일본의 침략입니다. 다시 또 강화도입니다. 신미양요 4년 뒤 1875년(고종 12) 9월, 초지진 앞바다에 일본 군함 운요호가 나타납니다. 쌍방 포격전 끝에 운요호가 퇴각합니다. 이를 ‘운요호 사건’이라고 불러요.독자분들 대개가 학창시절에 운양호 사건(雲揚號事件)으로 배웠을 겁니다. 한자 그대로 읽은 거지요. 지금은 해당 나라 발음에 가깝게 읽는 원칙이 서서 운요호 사건이라고 합니다. 모택동을 마오쩌둥으로 쓰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요, 일본 사람들이 전함(戰艦)을 ‘함’으로 부르고 수송선을 ‘호’라고 했대요. ‘운요호’보다는 ‘운요함’이 더 정확한 호칭인 셈입니다만, 이 글에서는 역사용어로 굳어진 ‘운요호’를 그대로 쓰겠습니다. 메이지유신이제 운요호 사건이 일.. 더보기
영화 '하얼빈' 소감 보고 싶었다. 개봉을 기다렸다. 봤다. 同心人이 많았나보다. 극장이 꽉찼다.  영화는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는다.재미나게 보이려고 굳이 애쓰지 않는다.이등박문 처단을 향해 진중하게 진군할 뿐이다.  하얀 눈길은 不義를 제거하려는 義의 길이다. 그 길에 강함과 나약함, 양심과 비양심의 발자욱이 함께 찍힌다. 침략자에 맞서 구국 전선으로 뛰어든 사내들의 고뇌는 담배 연기로 흐른다. 난폭하게 발현된 일본군 장교의 열등감이 피를 더한다.  영화에 영웅 안중근은 없다. 인간 안중근이 있다. 하여 더 뜨겁게 와 닿는다. ‘안중근’이라는 이름 석 자가 내뿜는 아우라에 배우 현빈은 상당한 압박감을 느꼈을 테다. 그럼에도 호흡, 숨소리 하나에까지 인간 안중근의 마음을, 감정을, 잘 담아냈다.우리 사람 조우진, 박정민, 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