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90년대, 그때는 상당히 많은 학교가 거금을 받고 교사를 뽑았다. 서울은 얼마, 부산은 얼마, 인천은 얼마, 이런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았다. 1년 동안 봉급 없이 무보수로 근무하는 조건을 내건 학교도 있었다.
지금은 깨끗해졌다. 하지만, 각종 채용 비리로 잡음을 일으키는 사학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소수 비리 사학 때문에 대다수 사립학교까지 불공정하게 교사를 뽑는 것처럼 오해되었다. 급기야 사립학교의 인사권이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됐다. 교사채용 때 시행하는 필기시험을 교육청에 위탁하도록 강제된 것이다. 자사고와 외고는 제외다.
이제 사립학교는 지역 교육청에서 선발해준 몇 배수 인원을 대상으로 응시서류, 시강, 실기, 면접을 통해 최종 합격자를 정한다. 선발 방법과 배점 등을 명확하게 공개하고 심사위원 일부를 외부에서 초빙하여 객관적인 평가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사고 역시 과거보다 한결 공정해진 절차를 따라 자율적으로 교사를 뽑는다.
그런데 내면을 들여다보면, 공정을 가장한 불공정 채용이 일부 학교에서 그대로 벌어지고 있다. 내정자를 미리 정해두고 형식적인 시험 단계를 밟는 것이다. 일반 사립학교는 내정자를 해당 학교만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교육청 주관 임용고사에 응하게 한다.
내정자는 누구인가? 이사장의 친인척일 수도 있지만, 요즘은 그 학교에서 근무 중인 기간제 교사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정규교사 1명 뽑는데 수십, 수백 명의 응시생이 몰린다. 그들은 밤새워 자기소개서를 고치고 또 고치고, 복잡한 서류들을 모아 제출하고, 시강과 면접 연습에 피를 말린다. 옷 입는 것, 머리 스타일까지 고민한다. 1단계, 2단계, 3단계 최종 면접까지 가지만, ‘공정’이라는 허위에 희생되는 들러리일 뿐이다.
1단계, 2단계에서 내정자보다 우수한 응시생이 보이면, 탈락시켜서 이사장이 하는 최종 면접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꼼수를 쓰는 학교도 있다. 교장·교감·교사 생각과 임용권자인 이사장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학생들에게는 공정을, 양심을 강조하여 가르친다. 바르게 살라고 한다. 다른 직업이라면 몰라도 교사는, 학교는, 그러면 안 된다.
사실, 학교만 탓하기 어려운 측면이 없지는 않다. 가정해본다.
정말 열심히 근무하는 기간제 교사가 있다. 어느새 우리 학교에서만 5년째다. 겪어보니 교육 열정이나 인품이나 나무랄 데 없다. 무엇보다 정이 많이 들었다. 정규교사로 뽑고 싶은데 그러려면 절차를 밟아야 한다.
과목별로 수십, 수백 명에게 좌절과 허탈과 배신감을 심어주게 될 그 ‘공정한’ 절차를 이렇게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차라리, 기간제로 몇 년 이상 근무하는 교사 가운데 학교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있을 때, 자체적으로 특별채용 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은 어떨까 싶기도 하다. 가여운 피해자를 양산하지 말고 말이다.
그런데 무리수를 두어가며 기간제교사를 내정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교장·교감·교사의 부채의식일 수도 있겠다. 학교폭력 업무 등 정규교사가 기피하는 힘든 일들을 기간제교사들에게 몰아주는 학교가 있다. 기간제교사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혹시 정규교사 채용 때 합격하도록 밀어주겠다는 당근을 제시하며 일을 떠넘기지는 않았을까?
진정한 교육자라면, 이래서는 안 된다. 기간제교사는 소모품이 아니라 정규교사와 같은 선생님이다. 힘든 일도 나눠야 한다. 외려 정규교사가 더 힘든 일을 해야 정상인 학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