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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史

옥씨부인전, 외지부와 전기수

구더기, 구덕이

“꿈이 무엇이냐?”

“늙어 죽는 것입니다.”

꿈이 늙어 죽는 거라고? 뭔 대답이 이럴까요.

“굶어 죽지 않고, 맞아 죽지 않고, 살다가 늙어 죽는 것입니다.”

대답한 이는 노비입니다. 그것도 아주 포악한 양반집의 사노비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구덕이! 구더기 취급을 받으며 살고 있네요. 구덕이라는 이름 속에 노비의 신산한 삶이 스몄습니다.

구덕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JTBC 사극 ‘옥씨부인전’을 보고 있습니다.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에서 무지막지한 악역인 연진이를 연기했던 배우 임지연이 주인공 구덕이 역을 맡았습니다.

풍광 아름답다고 소문난 장소마다 다 찾아가서 촬영한 것인지, 멋진 풍경이 수시로 등장합니다. 오죽하면 제가, TV 큰 거로 바꿨으면 좋겠다, 생각했을까요. 아쉽게도 우리 집 작은 TV는 너무 멀쩡하게 잘 나옵니다.

 

옥씨부인전 포스터 [출처 JTBC]

 

당신을 위해서라면

실존 인물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역사적 사건도 나오지 않아서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만, 조선 후기가 극의 무대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반정’이 언급되고, 사람들이 청나라 오가는 모습이 나오는 걸 보면, 인조반정 지나 병자호란도 끝난 이후 시대로 보면 될 것입니다.

결국, 겁탈하려는 주인 몸에 낫을 꽂고 도망친 처녀 구덕이. 운명은 그녀를 양반의 길로 밀어 넣습니다. 결혼도 하게 합니다. 그렇게 양반 옥씨부인이 되었습니다. ‘부인’이 되자마자 홀몸이 됩니다. 남편이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옥씨부인은 변호사 격인 외지부가 되어 불의에 맞서 싸우며 억울한 사람들을 구해냅니다.

하지만 근원적 불안감은 어쩔 수 없네요. 도망 노비, 그것도 주인 살인죄! 구덕이의 주인은 살아났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에는 살인 미수죄도 살인죄와 동급으로 처벌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노비 신분이 들통나면, 최소한 목이 달아나는 참형을 당하게 될 구덕이 처지입니다.

그녀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둔 정인이 있습니다. 추영우라는 배우가 연기한 송서인입니다. 극 속에서 유명한 전기수로 나왔죠. 그런데 옥씨부인은 다가오는 송서인을 밀어내기만 합니다. 마치 ‘나는 행복해서는 안 된다.’ 자신에게 맨날 다짐하며 사는 여인 같습니다.

송서인이라는 남자! 순정도 이런 순정이 없습니다. 순애보도 이런 순애보가 없습니다. 송서인은 모든 걸 다 바쳐서, 자신을 희생하며, 구덕이를 돕습니다. 지켜냅니다. 묵직한 사랑의 힘을 그려냅니다.

여러분께서 이 글을 읽으실 때면, 옥씨부인전이 끝났을 겁니다. 제가 원고 마감 시간에 맞춰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아직 2회가 남은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결말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흐름으로 보아 비극으로 끝날 것 같지만, 그래도 어떻든 해피앤딩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외지부 알아보기

“내가 이기게 해줄게.”

외지부는 억울한 사람을 설득해서 송사(訟事, 소송)하게 하고 이길 수 있게 도와주는 법률, 소송 전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장을 대신 작성해주고 소송 과정에 필요한 요령을 알려줍니다. 물론 대가를 받고 일하는 거죠.

그런데 문서를 위조하는 등 옳지 않은 방법으로 일을 처리하기도 해서 그들에 대한 당대 인식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지배층에서 외지부를 귀찮게 여겼습니다.

외지부! 무슨 관청 이름 같은 느낌이 드는 단어입니다만, 그냥 법 공부를 많이 하는 민간인이고요, 이들을 뽑는 공식적인 시험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외지부 옥씨부인[출처 JTBC]

 

‘외지부’라는 말은 장예원(掌隷院)의 전신인 도관지부(都官知部)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도관은 고려시대에 노비 장부 관리와 관련 소송을 담당하던 관청으로 형부(刑部, 조선의 형조)에 소속된 기관이었습니다.

지부는 지부사(知部事)를 말하는데, 형부 소속으로 도관에 파견되어 노비 관련 소송을 처리하던 사람입니다. 외지부는 도관 밖[外]에서 임의로 지부사[知部] 행세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속칭입니다. 농담 삼아 만들어진 말이 널리 퍼지면서 공식적인 호칭이 된 것 같습니다.

1472년(성종 3), 신숙주와 한명회가 함께 임금에게 아룁니다.

 

외지부라고 불리는 자들이 항상 관문(官門)에 서서 피고와 원고를 몰래 사주하거나, 송사를 대신하면서 시비(是非, 옳고 그름)를 어지럽게 합니다. 하여 관리가 제대로 판결하기 어렵게 하니, 해당 관청이 조사해서 통렬히 처벌하게 하소서.”

 

성종 임금이 그리하라, 지시합니다. 이후 외지부의 활동이 금지됩니다. 발각되면 외지부 본인뿐 아니라 가족까지 벌을 받게 됩니다. 외지부를 신고하는 사람들에게는 상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외지부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음성적으로 계속 활동했습니다. 다만 의뢰인을 대신해서 관아에 나가 대리소송하는 것은 불가능해졌지요.

수요가 많은가? 그렇습니다. 양반들만 소송한 것이 아닙니다. 여인들도, 평민들도, 천민 노비들도 억울함을 호소하고자 소송을 냈습니다. 특히 백성의 의식 수준이 높아진 조선 후기에 각종 소송이 많았습니다.

지방 수령의 업무 가운데 힘들고 또 중요한 것이 소송 판결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수령이 재판하는 걸 보며 유능한 사또인지 아닌지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강화학파 이시원의 아들이고 이건창의 아버지인 이상학은 재판 잘하는 사또로 유명했습니다. 이상학 사또에게는 절대로 거짓말하면 안 된다는 소리가 지역 주민들에게 퍼질 정도였습니다. “원님(이상학)의 판결을 들으니 두어 마디에 지나지 않건만, 내 잘못이 훤하니 어찌 후련치 않겠소?” 소송에 진 사람조차 불만은커녕 후련하게 여기도록 한 이가 이상학입니다.

그런데요, 글을 모르는 사람들은 소송을 제기할 수 없습니다. 소송 절차가 문서 위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할까요? 외지부입니다. 외지부가 소장을 대신 써주고 일 처리를 도와줍니다. 그러니까 자기 발로 외지부를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도 많았던 것입니다. 외지부를 평생의 은인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출처 JTBC]

 

1547년(명종 2)에는 이런 일이 있었어요.

사헌부가 임금에게 아뢰기를, “요즘 기강이 해이하고 인심이 각박해져서 탐욕을 자행하되 두려움이나 망설임이 없으며 세력을 믿고 공공연하게 남의 전민(田民)을 빼앗는” 세력가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종친인 이상이라는 사람이 “외지부와 결탁하여 문기(文記)를 위조해서 남의 노비를” 빼앗아 소송을 당했는데, 오히려 상대를 난폭하게 위협하고 있다고 보고합니다.

헐벗은 농민과 노비를 위해 헌신하는, 옥씨부인 같은, 외지부가 있었겠지만, 이렇게 양심을 버리고 권력가에 빌붙어 온갖 불법을 자행하던 외지부도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약자 편에 서서 그들의 눈물을 씻어주는 변호사가 있고, 천인공노할 죄를 지은 큰 죄인을 편들어 돈벌이만 신경 쓰는 변호사도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한 모양입니다.

이제 외지부 옥씨부인으로 돌아갑니다. 옥씨부인이 관복 같은 옷을 멋지게 꾸며 입고 당당하게 관아 재판장에 서서 변호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조선 후기입니다. 외지부는 불법입니다. 뒤에 숨어서 은밀하게 일합니다. 붙잡히면 처벌받는데, 어찌 재판장에 설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판타지일망정, 통쾌하고 뭉클한 장면입니다.

지금과 유사한 변호사 활동은 대한제국기부터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1900년에 법부대신(법무부장관격) 권재형이 고종에게 올린 상소문이 《승정원일기》에 실렸습니다.

상소에서 권재형은, 외국에서는 법관의 판결이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변호하는 직임을 두어 백성들의 소송을 돕도록 하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변호사의 필요성을 말한 것으로 읽힙니다. 1905년, 고종은 법률 제5호로 변호사법(辯護士法)을 반포합니다. 1907년에는 법부에서 변호사 시험을 시행해서 이항종 등 6인을 선발했습니다.

 

전기수는 뭐 하는 사람?

옥씨부인 직업이 외지부이고, 정인 송서인은 전기수라고 했지요. 전기수(傳奇叟)는 군중에게 소설 읽어주는 이야기꾼입니다. 조선 후기에 등장합니다.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내용에 따라 표정과 몸짓과 목소리를 달리해가며 읽습니다.

남자가 되기도 하고 여자가 되기도 하고 할아버지가 되기도 하고 손녀가 되기도 합니다. 목소리에 인간 희로애락을 다 담아냅니다. 일종의 모노드라마를 펼치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전기수 공연에 음악은 없습니다. 특별한 경우에만 반주자와 함께 무대에 섰다고 합니다.

 

전기수 송서인[출처 JTBC]

 

주로 길거리나 공터에서 하는 공연이니 입장료가 있을 리 없지요. 전기수는 돈을 어떻게 벌까요? 이렇게 법니다. 이를테면 이몽룡이 어사 출두할 때라던가, 심청이 아버지가 눈을 뜨는 순간이라던가, 아무튼 듣던 사람들이 한창 몰입해 있을 때, 딱! 이야기를 끊습니다.

전기수의 딴청! 의도된 침묵입니다. 청중들은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합니다. 여기저기서 전기수에게 돈을 던집니다. ‘관람료’를 내는 겁니다. 그러면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전기수가 모자를 돌려 돈을 걷기도 했대요. 한편, 부잣집에서 손님을 초대하거나 축하잔치 같은 걸 벌일 때 전기수를 부르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큰돈을 받고 부른 집에 가서 공연합니다.

 

항간에 이런 말이 있다. 종로거리 연초 가게에서 짤막한 소설을 듣다가 영웅이 뜻을 이루지 못한 대목에 이르러 눈을 부릅뜨고 입에 거품을 물면서 풀 베던 낫을 들고 앞에 달려들어 책 읽는 사람을 쳐 그 자리에서 죽게 하였다고 한다.”

 

《정조실록》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지나치게 몰입한 누군가가 소설 속 이야기를 현재 상황과 구분하지 못하고 그만, 전기수를 살해한 것이에요. 안타까운 죽음입니다만, 전기수의 표현 능력이 대단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영화로 제작된 여로 포스터

 

1972년에 엄청난 드라마가 방영됐습니다. 시청률이 70% 정도였다죠. 분이(태현실)와 영구(장욱제)가 나오는 ‘여로’! 악역으로 시어머니(박주아), 시누이(권미혜), 달중이(김무영)가 나왔습니다. 악독한 연기를 너무들 잘했습니다.

악역 배우들은 길거리에 함부로 나다니지 못했답니다. 보는 이마다 욕하고 손가락질해서요. 녹화하던 어느 날, 군인들 몇이 방송국에 들이닥쳐 외쳤대요. “시어머니, 달중이, 시누이 나와!” 그래서 피신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방송과 실제를 혼동하는 모지라는 사람들? 글쎄요. 그만큼 마음이 순수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글 써놓고 보니, ‘여로’가 그립습니다. “그 옛날 오색댕기 바람에 나부낄 때~” 이미자가 부르는 주제가나 다시 들어 봐야겠습니다.

〈강화투데이〉2025년 1월 25일 제7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