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全 썸네일형 리스트형 술 한잔 술 한잔 정호승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돌연꽃 소리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어제, 복지관 강의를 이 시로 열었다. 역사 강의에 시라니. 뭐 어떠랴, 인생이 곧 역사이거늘. 수강생 어른들 저마다 깊은 표정으로 ppt 화면을 응시했다. 인생은 나에게 술을 사주었나? …… 가수 안치환이 이 시를 노래했다. 함께 들었다. 언젠가 정호승 시인께서 이 시 쓴 것을 후회하는 듯한 말씀은 하신 적이 있다. 후회하실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전혀. 더보기 강화 충렬사를 알아봅시다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1871년(고종 8), 흥선 대원군이 명령했습니다. “영원히 높이 받들어야 할 47개 서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서원들은 모두 제사를 그만두게 하고 현판을 떼어내도록 하라.”이게 바로 흥선 대원군의 업적 중 하나로 말해지는 ‘서원 철폐’입니다. 당시 전국에 있던 서원이 600여 개라고도 하고 1,000개가 넘었다고도 합니다. 정확히 몇 개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엄청나게 많은 전국의 서원이 사라지고 딱 47개만 살아남았습니다. 서원은 기본적으로 교육기관입니다. 그런데 점점 조선사회의 암적인 존재가 되어 갔습니다. 교육 기능은 부실해지고, 정치 싸움의 지방 거점 역할을 하는가 하면, 힘없는 백성들의 토지를 빼앗아 재산을 늘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세금 납부는 회피해서 국가.. 더보기 교동도 역사 산책④-교동읍성 읍성(邑城)이라, 읍성. 읍을 둘러쌓은 성!오늘날 읍·면의 ‘읍’과 조선시대 ‘읍’은 쓰임이 좀 다르답니다. 조선시대의 ‘읍’은 한양을 제외한 전국 행정구역을 아우르는 용어로 쓰였습니다. 현, 군, 도호부, 목, 대도호부, 부. 모두 개개의 읍으로 칭했습니다. 현도 읍이고, 군도 읍이고 도호부도 읍이라는 얘기죠. 그래서 한양에는 도성이 있고 지방에는 읍성이 있던 것입니다. ‘읍치(邑治)’라는 말도 여기서 나온 것이고요. 조선시대 모든 읍이 읍성을 갖추고 있던 것은 아닙니다. 330곳 내외의 전국 행정구역 가운데 19세기 기준으로 123개의 읍성이 있었습니다. 하삼도 그러니까 경상도·전라도·충청도에 특히 많았답니다. 경기지역은 의외로 적어서 강화·교동·개성·수원 이렇게 네 곳에만 읍성이 있었다고 해요. 경.. 더보기 교동도 역사 산책③-교동향교 좋습니다. 교동향교 들어가는 길이 좁아서 불편했습니다. 주차 공간도 마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아닙니다. 진입로를 넓게 열었고 주차장도 시원하게 닦아 놨습니다. 길목에 모셨던 옛 비석들은 향교 홍살문 옆으로 모두 옮겨 모셨습니다.홍살문에서 외삼문 가는 길, 적당한 거리감도 좋습니다. 외삼문 밀고 들어갑니다. 다른 향교에 가면 그냥 좀 위축되는 느낌이에요. 권위적인 공기가 흐른다는 선입감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교동향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시골 외할머니댁 대문 밀고 들어서는 느낌. 교동향교에 처음 오시는 분은 외삼문 들어가다가 잠시 놀랄 수 있습니다. 코앞에 건물이 확 나타나서 말이죠. 명륜당인데 외삼문과 거의 붙어있습니다. 앞마당이 아예 없는 겁니다. 향교 지을 때 땅이 부족해서 이렇게 .. 더보기 교동도 역사 산책②-대룡시장 궂은 비 내리는 날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짙은 색소폰 소리를 들어보렴새빨간 립스틱에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실없이 던지는 농담 사이로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내 가슴이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언제 들어도 좋습니다. 가사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도 인기를 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금방 식는 것 같아요. 노래의 오랜 생명력은 귀로 들어오는 가사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아, 내 얘기 같아’ 공감하면서 시 낭송 듣듯 노래를 들으며 또 들으며 나이를 쌓아갑니다. 저도 옛날에 읍내 별다방에서, 성다방에서, 아가씨에게 실없이 농담 던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최백호는 이 노래 만든 사.. 더보기 강화읍 남창식당 음식값 마구 비싼 요즘 세상30년 세월 변함없는 남창식당 되비지 백반이 무려 7,000원편안한 혼밥이 가능한 곳 찬도 골고루 맛나다밖에서 먹는 집밥! 참 고마운 밥집!주인장 건강하시길. 더보기 교동도 역사 산책①-연산군 유배지 언젠가 강화역사박물관에 갔을 때였어요. 강화에서 출토된 항아리 모양의 유물을 보았습니다. 고대시대에 제작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표면에 글씨가 새겨져 있는 거예요. ‘뭐라고 쓴 거냐, 보자.’ 高, 木, 根, 縣. 아! 교동(喬桐)의 옛 이름 고목근현(高木根縣)입니다. 책이 아니라 항아리에 새긴 거라서 더 반가웠습니다. 고구려 때 교동을 고목근현으로 불렀고요, 통일신라 시기부터 교동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강화(江華)라는 지명은 고려 때 처음 쓰게 됐으니까, ‘강화’보다 ‘교동’이라는 지명이 먼저 나온 겁니다. 교동의 또 다른 이름으로 ‘대운도’, ‘고림’, ‘달을참’이 전해집니다.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다는 말이 있죠.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래 누워있다보면 다시 일어나고 싶어.. 더보기 사진으로 만나는 장곶돈대 더보기 정호승 시인의 미안하다 소파에 누워 신문 보는 게 취미라면 취미다. 종이 신문 넘기는 게 여전히 좋다. 가끔은 시집도 본다. 오랜만에 정호승을 다시 펼쳤다. 미안하다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두툼한 책 한 권 넉넉할 사연을 시인은 꾹꾹 꾹꾹 눌러 몇 줄 시로 그렸다. 아팠겠다. 더보기 이전 1 ··· 17 18 19 20 21 22 23 ··· 3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