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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제통문’과 만들어진 역사 전북 무주에 돌산을 뚫은 통문이 있다. 구천동 33경 가운데 제1경 나제통문(羅濟通門)이다. 신라와 백제가 통하는 문이라는 뜻이다. 이름 속에 국경 관문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삼국, 그 시대쯤에 뚫은 문으로 말해진다.  하지만, 아니라고 한다. 돌산을 뚫어 이 문을 낸 때가 일제강점기 1920년대라고 한다. 삼국시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동네 사람들은 오래도록 ‘기니미굴’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무주구천동을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1960년대에 ‘기니미굴’을 ‘나제통문’으로 이름 바꿨다. 33경 각각에 대한 작명도 그때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제 무주구천동은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관광지가 되었다. 당시 구천동 계곡 관광지 개발 사업에 참여했던 오재성이 2018년에 조선일보 박종인 기자와 인터뷰했다. “가난했으.. 더보기
‘학종’은 억울하다 ‘학종’이라고 불리는 학생부종합전형을 폐지하라는 목소리가 크다. 내신 조작, 시험문제지 유출 등 부정행위가 연이어 벌어지는 상황인지라 당연히 나올 법한 주장이다.학종을 비판하는 근거로 제시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부자 부모를 둔 아이에게 유리하고 가난한 부모를 둔 아이에게 불리하다는 점이다.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하는 입시제도가 바로 학종이라는 것이다. 학종을 ‘사교육종합전형’이라고 규정한 칼럼도 보인다. 그러니 수능 중심으로 대학에 가는 정시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가 지나치게 서울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판단의 기준이 이른바 SKY 대학으로 한정된 느낌도 없지 않다. SKY 대학 몇 명 보냈는가를 가지고 명문고 운운하는 것은 문명의 탈을 쓴 .. 더보기
향교와 서원 그리고 충렬사 향교 이야기 지난 57호에서 충렬사의 성격을 알아보았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충렬사 수직방과 전사청에 관해 조금 말하려고 합니다. 그러기 전에 향교와 서원의 개념과 건축 구조부터 검토할게요. 충렬사와 비교하기 위함입니다. 향교(鄕校)를 한마디로 풀이하면 옛날 학교입니다. 고려시대에 처음 생겼습니다. 강화향교와 교동향교가 세워진 것도 고려시대입니다. 고려를 이어 조선의 지방 학생들도 향교에서 공부했습니다. 서울에는 향교가 없어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 “경향 각지에서 모이다.” 이런 표현이 있지요. 경향(京鄕)은 서울과 지방, 서울과 시골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향교는 향(鄕, 지방)에 있는 학교(校)라는 의미입니다. 조선의 경우 한양 학생들은 4부학당(四部學堂)에서 공부했습니다. ‘서울에 지금 양천.. 더보기
노모의 소망 사는 게 여전히 눈 뜨고 있는 게 이제 죄짓는 거 같아서 차마 드러내 말하지 못한다만 아들아 날 바라봐 주지 않겠니 눈동자에 따듯함 한 숟갈 넣어 이 애미 보아주지 않으련 아들아 목소리에 촉촉함 딱 한 숟갈만 담아서 엄마! 불러주지 않겠니 그리고 아들아 이 애미 손 한번 꼬옥 잡아주지 않으련 그 옛날처럼 애고, 내가 욕심이 과했나 보다. 더보기
위리안치, 천극안치, 가극안치 ‘안치’의 의미를 따져보자.안치(安置)라는 한자 자체는 안전하게 둔다는 뜻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유배라는 의미로 쓰인다. 유배 자체를 뜻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유배 형벌의 하나로 ‘○○안치’로 쓰여서 ‘감금’을 뜻하기도 한다. 위리안치(圍籬安置)가 대표적이다. 죄인이 유배 사는 집에 울타리를 두르고 문밖출입을 금하는 것이다. 외부인의 접근도 불가하다.  천극안치(栫棘安置), 가극안치(加棘安置)도 있다. 위리안치보다 천극안치가, 천극안치보다 가극안치가 이론상 더 무거운 형벌이다. 천극안치는 죄인이 갇힌 집에 이중으로 가시울타리를 치는 것이다. 가극안치는 천극안치보다 더 겹겹이 가시울타리를 치는 정도인 것 같다. 실제 적용은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위리안치와 천극안치·가극안치는 사실상 거기서 .. 더보기
술 한잔 술 한잔 정호승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돌연꽃 소리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어제, 복지관 강의를 이 시로 열었다. 역사 강의에 시라니. 뭐 어떠랴, 인생이 곧 역사이거늘. 수강생 어른들 저마다 깊은 표정으로 ppt 화면을 응시했다. 인생은 나에게 술을 사주었나? …… 가수 안치환이 이 시를 노래했다. 함께 들었다. 언젠가 정호승 시인께서 이 시 쓴 것을 후회하는 듯한 말씀은 하신 적이 있다. 후회하실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전혀. 더보기
강화 충렬사를 알아봅시다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1871년(고종 8), 흥선 대원군이 명령했습니다. “영원히 높이 받들어야 할 47개 서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서원들은 모두 제사를 그만두게 하고 현판을 떼어내도록 하라.”이게 바로 흥선 대원군의 업적 중 하나로 말해지는 ‘서원 철폐’입니다. 당시 전국에 있던 서원이 600여 개라고도 하고 1,000개가 넘었다고도 합니다. 정확히 몇 개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엄청나게 많은 전국의 서원이 사라지고 딱 47개만 살아남았습니다. 서원은 기본적으로 교육기관입니다. 그런데 점점 조선사회의 암적인 존재가 되어 갔습니다. 교육 기능은 부실해지고, 정치 싸움의 지방 거점 역할을 하는가 하면, 힘없는 백성들의 토지를 빼앗아 재산을 늘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세금 납부는 회피해서 국가.. 더보기
교동도 역사 산책④-교동읍성 읍성(邑城)이라, 읍성. 읍을 둘러쌓은 성!오늘날 읍·면의 ‘읍’과 조선시대 ‘읍’은 쓰임이 좀 다르답니다. 조선시대의 ‘읍’은 한양을 제외한 전국 행정구역을 아우르는 용어로 쓰였습니다. 현, 군, 도호부, 목, 대도호부, 부. 모두 개개의 읍으로 칭했습니다. 현도 읍이고, 군도 읍이고 도호부도 읍이라는 얘기죠. 그래서 한양에는 도성이 있고 지방에는 읍성이 있던 것입니다. ‘읍치(邑治)’라는 말도 여기서 나온 것이고요. 조선시대 모든 읍이 읍성을 갖추고 있던 것은 아닙니다. 330곳 내외의 전국 행정구역 가운데 19세기 기준으로 123개의 읍성이 있었습니다. 하삼도 그러니까 경상도·전라도·충청도에 특히 많았답니다. 경기지역은 의외로 적어서 강화·교동·개성·수원 이렇게 네 곳에만 읍성이 있었다고 해요. 경.. 더보기
교동도 역사 산책③-교동향교 좋습니다. 교동향교 들어가는 길이 좁아서 불편했습니다. 주차 공간도 마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아닙니다. 진입로를 넓게 열었고 주차장도 시원하게 닦아 놨습니다. 길목에 모셨던 옛 비석들은 향교 홍살문 옆으로 모두 옮겨 모셨습니다.홍살문에서 외삼문 가는 길, 적당한 거리감도 좋습니다.  외삼문 밀고 들어갑니다. 다른 향교에 가면 그냥 좀 위축되는 느낌이에요. 권위적인 공기가 흐른다는 선입감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교동향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시골 외할머니댁 대문 밀고 들어서는 느낌. 교동향교에 처음 오시는 분은 외삼문 들어가다가 잠시 놀랄 수 있습니다. 코앞에 건물이 확 나타나서 말이죠. 명륜당인데 외삼문과 거의 붙어있습니다. 앞마당이 아예 없는 겁니다. 향교 지을 때 땅이 부족해서 이렇게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