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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파가 무슨 죄 대파 한 단 875원. 이걸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말한 이도 가엾고 그걸 맨날 욕해대는 이들도 가엾다. 욕하는 그이는 평소 대파값을 알고 있었을까. 더보기
강화산성 북문 구간 보수공사, 송학골 빨래터 문밖을 나서니 봄을 알겠다. 모처럼 북산 쪽으로 갔다. 4월 1일부터 4월 10일까지 벚꽃이 핀다고 차량 통제 알리는 현수막이 걸렸는데 오늘 4월 2일, 벚꽃은 영, 필 마음이 없다. 개나리만 노랗게 웃고 있었다. 어디보자, 강화산성 북문 옆 성벽 보수공사, 마무리됐나. 원래 이런 모습이었다. 그런데 작년 9월에 찍은 사진은 이런 모습이다. 성벽 붕괴 위험이 커서 선제적으로 해체해서 다시 쌓는 거다. 성벽 일부 해체하면서 그 속에서 나온 돌들이 이렇게나 많다. 새삼, 축성 당시 사람들의 고생을 보았다. 오늘 모습은 이러하다. 체성 부분은 마무리가 되었고, 여장은 아직 쌓지 않은 상태다. 작년 ‘강화산성 보수정비공사’ 안내판에는 공사 기간을 ‘2023.7.28.~2023.10.26.’이라고 적었는데 지연되.. 더보기
고려궁지와 강화유수부 명위헌과 이아1231년(고종 18), 몽골의 본격적인 침략이 시작됩니다. 다음 해인 1232년(고종 19)에 고려 조정은 도읍을 개경에서 강화로 옮깁니다. 6월 17일에 강화 궁궐 공사가 시작됩니다. 고종이 개경을 떠난 날은 7월 6일, 강화에 도착한 날은 7월 7일입니다. 궁궐 조영이 시작된 지 스무날 정도밖에 안 됐을 때입니다. 당연히, 궁궐이, 없습니다. 임금 고종은 어디로 가야 하나. 객관(客館)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강화도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궁궐이 제대로 모양을 갖추게 된 것은 1234년(고종 21)쯤이었습니다. 새로운 도읍, 강화도에 새로운 궁궐이 들어선 것입니다. 지금, 고려궁궐은 없고요, 궁궐터만 전합니다. 우리는 이곳을 고려궁지(高麗宮址)라고 부릅니다. 고려궁지 계단 올라 ‘昇平門’.. 더보기
파묘, 무속, 김금화 안 볼 생각이었다.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 공포물, 이런 부류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TV에서 공짜로 틀어주는 것도 안 보는데 내 돈 들여, 내 시간 들여 극장까지 가서 볼 일이 없다. 최민식, 유해진, 이도현이 끌리기는 했다. 김고은은 끌리지 않았다. 나는 그의 연기를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봤다. 파묘. 신문마다, 인터넷마다 연일 파묘를 말하니, 슬금슬금 관심이 일었다. 꼬박꼬박 오컬트 영화라고들 하는데 뜻도 몰랐다. 찾아보니 오컬트(occult)는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신비적ㆍ초자연적 현상. 또는 그런 현상을 일으키는 기술”이라는 뜻이었다. ‘비과학’이 아니고 ‘초과학’이다. 900만을 찍었을 때, 나는 강화 작은영화관에 앉아 있었다. 이제 천만 영화가 된 파묘, 아주 볼만했다. 뭐, 무섭.. 더보기
강화읍내 역사산책③ - 강화산성 오래전, 고려 대몽항쟁을 다룬 책을 준비할 때였다. 전국의 이름난 항쟁지를 거의 다 답사했다. 전라남도 장성군 입암산성에 갔을 때다. 얼추 시간 따져보니 해가 지기 전에 산성 돌아보고 사진 찍고 내려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차하고 바로 입산 시작. 점점 오가는 등산객이 줄어들었다. 깊이 들어갔다. 사람이 없다. 길을 잃었다. 아직 해질 시간이 아닌데 어둡다? 그때야 내가 선글라스를 쓰고 있음을 알았다. 벗으니 환하긴 한데 앞이 안 보였다. 시력이 지독히 나쁘니 당연한 일. 차에서 내릴 때 선글라스 벗고 안경을 쓰고 왔어야 했다. 벗을 수도 쓸 수도 없는 상황. 사위가 컴컴해지고 우두망찰 주저앉은 나는 울고 싶었다. 목이 말랐지만, 물병도 없이 왔다. 나무뿌리에 채고 돌부리에 채면서 겨우겨우 내려왔다. .. 더보기
강화읍내 역사산책② - 성공회 강화성당 자 이제, 성공회 성당으로. 층계 위로 솟을삼문 모양의 대문,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더 웅장하다. 층계 좌우에 쇠 난간부터 보자. 별거 없다. 그런데 왜? 일제강점기 후반 일제는 대대적으로 쇠붙이 징발에 나섰다. 녹여서 무기 만들려는 거다. 학교 교문 떼어 가고, 집안의 가마솥 뜯어가고 놋그릇 집어가고, 산속 사찰의 종까지 가져갔다. 성공회도 피해를 보았다. 계단 난간을 뜯겼다. 일본인 신자들이 강화성당에 왔다가 그 얘기를 들었다. 그들은 선조들의 잘못을 사죄했다.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난간 설치 비용을 보내왔다. 그렇게 설치된 난간이다(2010). 일본인도 일본인 나름이다. 혐한증 환자만 있는 게 아니다. 문 열고 들어서니 왼편에 높이 150㎝ 정도의 아담한 종이 걸렸다. 한국식 동종이다. 원래 영국에서.. 더보기
강화읍내 역사산책① - 용흥궁 조선 철종의 이름은?원범! 이원범이다. 원범을 아시는 분은 연령이 육십 세 내외일 것이다. 그 세대가 어릴 때 인기 있던 TV 드라마가 ‘임금님의 첫사랑’이다. 주인공은 원범이, 그의 첫사랑은 양순이였다. 강화에 귀양 온 원범이가 어느 날 갑자기 철종으로 즉위한다. 강화도에 남은 양순이를 그리워하며 애태운다. 참 재밌었다. 주제가도 유명했는데 가사가 이쁘다. 강화섬 꽃바람이 물결에 실려 오면 / 머리 위에 구름 이고 맨발로 달려 나와 / 두 마리 사슴처럼 뛰고 안고 놀았는데 / 갑고지 나루터에 돛단배 떠나던 날 / 노을에 타버리는데 임금님의 첫사랑 …“두 마리 사슴처럼 뛰고 안고 놀았는데” 사극은 재미있을수록 부작용도 크다. 역사를 소재로 ‘만들어진’ 극이다. 거기 나오는 내용이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 더보기
‘나제통문’과 만들어진 역사 전북 무주에 돌산을 뚫은 통문이 있다. 구천동 33경 가운데 제1경 나제통문(羅濟通門)이다. 신라와 백제가 통하는 문이라는 뜻이다. 이름 속에 국경 관문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삼국, 그 시대쯤에 뚫은 문으로 말해진다.  하지만, 아니라고 한다. 돌산을 뚫어 이 문을 낸 때가 일제강점기 1920년대라고 한다. 삼국시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동네 사람들은 오래도록 ‘기니미굴’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무주구천동을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1960년대에 ‘기니미굴’을 ‘나제통문’으로 이름 바꿨다. 33경 각각에 대한 작명도 그때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제 무주구천동은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관광지가 되었다. 당시 구천동 계곡 관광지 개발 사업에 참여했던 오재성이 2018년에 조선일보 박종인 기자와 인터뷰했다. “가난했으.. 더보기
‘학종’은 억울하다 ‘학종’이라고 불리는 학생부종합전형을 폐지하라는 목소리가 크다. 내신 조작, 시험문제지 유출 등 부정행위가 연이어 벌어지는 상황인지라 당연히 나올 법한 주장이다.학종을 비판하는 근거로 제시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부자 부모를 둔 아이에게 유리하고 가난한 부모를 둔 아이에게 불리하다는 점이다.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하는 입시제도가 바로 학종이라는 것이다. 학종을 ‘사교육종합전형’이라고 규정한 칼럼도 보인다. 그러니 수능 중심으로 대학에 가는 정시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가 지나치게 서울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판단의 기준이 이른바 SKY 대학으로 한정된 느낌도 없지 않다. SKY 대학 몇 명 보냈는가를 가지고 명문고 운운하는 것은 문명의 탈을 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