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한잔
정호승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돌연꽃 소리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어제, 복지관 강의를 이 시로 열었다.
역사 강의에 시라니.
뭐 어떠랴, 인생이 곧 역사이거늘.
수강생 어른들 저마다 깊은 표정으로 ppt 화면을 응시했다.
인생은 나에게 술을 사주었나?
……
가수 안치환이 이 시를 노래했다. 함께 들었다.
언젠가 정호승 시인께서
이 시 쓴 것을 후회하는 듯한 말씀은 하신 적이 있다.
후회하실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전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