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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常

산사에서 만나는 글귀 부족한 것은 소리를 내지만 그러나 가득차게 되면 조용해진다 어리석은 자는 물이 반쯤 남은 물병과 같고 지혜로운 이는 눈물이 가득 담긴 연못과 같다 -수타니파타 정호승 시인의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를 읽다가 만난 글이다. 운문사 게시판에 있는 글이라고 한다. 생뚱맞게도 난 강화의 어느 산사(山寺) 찻집에 붙어 있던 글이 떠올랐다.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 녹화해서 인터넷에 공개 합니다 더보기
초지대교 막국수 점심을 밖에서 먹게 될 때, 주로 읍내에서 먹는다. 오늘은 맘먹고 25분 달려 초지진 쪽으로 갔다. 초지대교 옆 ‘초지대교 막국수’ 오랜 친구가 며칠 전에 개업한 곳이다. 비빔막국수를 시켰다. 나왔다. 내가 장사하는 것도 아닌데, 긴장됐다. ‘어떤 맛일까, 맛있어야 하는데…’ 드디어, 첫입. 면 씹는 맛이 좋다. 독특하다. 그런데, 맛이 별로라는 생각이 딱 들었다. 첫맛이 살짝 밍밍한 느낌? 아, 단맛이 덜했다. 일단 먹자. 먹을수록 맛이 괜찮았다. 아이고, 다행이다. 그동안 내가 사 먹었던 비빔막국수는, 맵든 달든, 맛이 강했던 것 같다. 그런데 친구가 낸 막국수는 자극적이지 않아서 첫맛이 덤덤했던 것 같다. 아무튼, 먹을수록 맛이 났다. 먹는 양이 워낙 적은 내가 한 그릇을 싹 비웠다. 만두까지 몇 .. 더보기
고려궁지 은행나무 당신 찾아 나섰다가 엇갈릴까봐꼼짝 말고 있으라던 말씀 생각나 한 발짝 움직임 없이 이 자리에 700년당신 보려 늘어난 목 지탱하려고 땅 밑으로 발가락만 키웠습니다당신 몸 흙 속에서 느껴볼 수 있을까속절없이 발가락만 늘렸습니다. 멀리서도 잘 보이게 초록 옷 입고 까치발로 동서남북 바라보다가 하늘 눈물 주룩주룩 흘러내릴 때나도 함께 주룩주룩 흘렀습니다초록보다 잘 보일 게 무슨 색일까노란색 옷 갈아입고 기다립니다잉태 한번 못해 본 몸 정이 그리워 날개 젖은 까치 아이 품어줬더니어깨 위에 집 짓고 가족을 이뤄 이제는 한 식구가 되었습니다당신 계실 그 곳 알 수 있다면까치 전령 당장 보내 맞아 오련만 오실 당신 계신 데 알 수가 없어 애가 탑니다700년 풍상을 한 자리에서 그리움 하나로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자꾸.. 더보기
아무튼, 거시기 고급 외제차 모는 어떤 젊은이의 횡포가 한동안 뉴스에 거듭 나왔지요. 그 젊은이는 운전 중 갈등 빚은 상대방에게 참으로 몹쓸 말을 했습니다.운전자끼리야 상스러운 욕설 오가도 그러려니 하겠습니다만, 이번엔 너무 심했습니다. 엄청 비싸다는 외제차 운전자가 상대방 차에 타고 있던 어린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이런 똥차 모는 너희 아빠는 거지다!아마도 외제차 운전자는 자기가 땀 흘려 돈 벌어 자동차를 마련한 게 아닐 겁니다. 부모가 사 줬을 겁니다. ‘부모 잘 만난’ 그 운전자가 상대방 운전자에게 그랬다지요. 나이만 처먹고 능력은 안 돼서 이런 똥차를 모는 거라고. 아이고, 참. 아들에게 비싼 차 사준 그 부모가 차라리 측은하게 느껴집니다.그런데 말입니다, 제가요, 한때 어느 외제차에 정신을 다 빼앗.. 더보기
엄만, 짜장면이 싫단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처럼 우리는 오래도록 짜장면을 짜장면으로 쓰지 못했습니다. ‘자장면’으로 쓰고 불러야 했지요. 한국어 맞춤법 규정이 그랬습니다. 2011년에야 ‘짜장면’이 표준어로 인정되면서 공식적으로 짜장면으로 쓸 수 있게 되었지요.  50년 전쯤에 머릿속에 각인된 단어 ‘태풍관’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아리랑골목 입구에 있던 강화 유일의 중국집이었죠. 강화 아이들이 가장 가보고 싶었을, 그러나 기껏 일 년에 한두 번 가는 선망의 짜장면집, 거기가 태풍관이었습니다.‘강화국민학교’ 다니던 때 학교를 마치면 가끔 태풍관으로 내려갔습니다. 주위를 잠시 맴돌고 나서야 집으로 가곤 했습니다. 왜 그랬나? 냄새 맡으러 간 겁니다. 주방에서 흘러나오는 짜장면 냄새를 코로 받아먹으며, 아.. 더보기
달고나 오늘 강의를 마쳤다.우리 역사를 사랑하는 60~70대 수강생 스물두 분 강의실을 나가신다. 뒷정리를 하는데 한 분이 내 앞으로 오시더니 “드세요” 하시며 작은 과자 봉지를 내민다. 아이구, 고맙습니다. 받고 보니 “국민학교 달고나”달고나? 수십 년 잊고 살다가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볼 때 다시, 먹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그랬는데 달고나라니. 어릴 때 ‘찍어먹기’라고 불렀던 것 같다. 봉투를 열어보니 정말 손톱만 한 달고나가 들어있다. 색깔, 향, 맛. 옛날 그 기억 그대로였다. 추억은 이렇게 단맛인가. 더보기
아들아, ‘소확행’은 말이다 아들, 잘 있는가. 창을 등지고 앉아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햇살 덕분에 등이 따듯하여 추위를 잊는다. 여름 햇살은 그리도 밉더니 겨울 햇살은 이리도 고맙구나. 아빠에게 요즘 새로운 취미가 생겼단다. 취미라고 말하고 보니 쑥스러운데 사실은 TV 드라마 보기란다. 직장 나갈 때는 거의 보지 않던, 볼 수도 없었던 연속극을, 퇴직한 지금은 잘도 본다. 어떨 때는 월화 드라마, 수목 드라마, 주말 드라마까지 다 ‘본방사수’할 때도 있단다. 의외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요즘은 ‘SKY 캐슬’을 흥미 있게 보고 있다. 자식을 명문대 보내려는, 대한민국 상위 0.1% 가정의 ‘노오력’을 기둥으로 이런저런 생각거리를 엮어나가는 이야기란다. 당연히 꾸며진 그리고 과장된 이야기이지만, 그 행간에서 작금의 현실도 읽히는구.. 더보기
아버지의 샌들 구두 먼지를 털어내다가 쪼그려 앉았다.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난다. 출근할 때면 내 구두가 깨끗하게 닦여 있곤 했다. 아침 일찍 구두를 닦는 이는 아버지였다.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게 오죽 많았을까만, 불편한 몸으로 하실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반짝이는 구두는 일터로 나가는 아들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응원가였다. 그런데도 아들은 “구두는 뭐 하러 닦고 그래요.” 퉁명스럽게 말할 뿐,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 한 마디가 그리도 어려웠었나. 말년의 아버지는 여러 가지 병이 겹쳐 많이 앓으셨다. 걸음이 온전치 않아 자주 넘어지셨다. 여름 더위 제법이던 어느 날 아버지는 슬리퍼 신고 문밖에 나가셨다가 미끄러져서 얼굴을 심하게 긁혔다. 생채기로 범벅된 얼굴을 보니 화가 났다. “운동화 신지 왜 슬리퍼.. 더보기
진달래야 고맙다, 울 아버지 외롭지 않게 해서 "아·부·지."하늘을 향해 아버지를 불러본다.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이 간다. 산수유 먼저 노란 봄을 알리더니 질세라 붉은 진달래꽃 대궐을 이뤘다. "너희 덕분에 울 아버지 외롭지 않으리. 너희가 나보다 낫다." 나이 오십 되고 보니 눈시울이 젖을 때가 잦다.아버지는 강화에서 오래도록 관광회사에 다니셨다. 국내외 관광 안내를 나가시다가 나중에는 배차 업무를 주로 하셨다. 지리부도보다 더 정확하게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꿰뚫고 계셨다. 그 관광회사 기사님들은 관광객 모시고 멀리 나섰다가 길을 잃으면 무조건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금방 어디 어디로 가라고 알려주시곤 했다.아버지가 잠드신 충렬사 뒷산은 이제 여린 초록이다. 새순 올라온 잔디가 대견하다. 일흔 겨우 넘기시고 하늘로 가신 지 1년여. 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