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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常

아버지의 샌들

구두 먼지를 털어내다가 쪼그려 앉았다.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난다. 출근할 때면 내 구두가 깨끗하게 닦여 있곤 했다. 아침 일찍 구두를 닦는 이는 아버지였다.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게 오죽 많았을까만, 불편한 몸으로 하실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반짝이는 구두는 일터로 나가는 아들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응원가였다. 그런데도 아들은 구두는 뭐 하러 닦고 그래요.” 퉁명스럽게 말할 뿐,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 한 마디가 그리도 어려웠었나.

 

말년의 아버지는 여러 가지 병이 겹쳐 많이 앓으셨다. 걸음이 온전치 않아 자주 넘어지셨다. 여름 더위 제법이던 어느 날 아버지는 슬리퍼 신고 문밖에 나가셨다가 미끄러져서 얼굴을 심하게 긁혔다. 생채기로 범벅된 얼굴을 보니 화가 났다. “운동화 신지 왜 슬리퍼를 신고 나가요.”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는 죄인처럼 미안함 가득한 표정으로 방바닥만 바라보셨다. 아픈 것이 죄인가, 넘어진 것이 죄인가. 아들은 아무 잘못 없는 아버지를 죄인으로 만들어버렸다.

 

날이 더워지면서 샌들 하나 사드려야겠다고 생각하다가 그냥 잊곤 했다. 진작 사드렸으면 넘어지지 않으셨겠지 싶어 마음이 무거웠다. 강화에 있는 유일한 스포츠용품 판매장에 갔다. 맘에 드는 샌들을 들어보니 오륙 만 원은 줘야 사겠다. 만지작거리다, 만지작거리다 그냥 두고 나왔다. 중앙시장 허름한 신발가게로 갔다. 모양이 뭔 소용이야, 편한 게 제일이지. 혼자 변명하면서 가뿐해 보이는 샌들을 샀다. 이만 원 주고.

 

그걸 들고 집으로 오는 길,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건가. 자식 놈 신길 거라면 십만 원, 이십만 원, 아깝지 않았겠지. 병든 아버지 드리려니 오만 원이 아까웠구나. “, 아부지 신발 신어봅시다. 이거 아주 편하고 좋은 거유.” 부끄러움 감추려고 익살을 부렸다.

 

아버지는 샌들을 신고 몇 발자국 걸어보시더니 편하다며 벙글벙글 하셨다. 몇 안 남은 앞니도 함께 웃는 것 같았다. 이제 이거 신고 넘어지지 마요, 아버지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신다. 옆에서 지켜보던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더 흡족해하신다. 슬리퍼 멀쩡한데 샌들이 뭐 필요하냐며, 사오지 말라던 어머니였다. 넘어지는 아버지만 타박하던 어머니였다. 그런데 아버지 샌들보고 어머니가 더 좋아하신다. 샌들 벗겨 드리고 고개 들지 못했다. ‘, ~.’

좋은생각20117월호.

나는 오늘도 선생이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이 글 낭송을 들었다. 제작자  "광수"님께 감사드리며 여기에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