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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常

아들아, 다음엔 눈물 대신 포옹이다 훈련소 수료식 마치면 꼬옥 안아줄 생각이었다. 아빠 학급 아이들의 대학 수시 전형 응시로 한창 바쁠 때 하필 그때 네가 입대하는 바람에 훈련소에 데려다 주지도 못했지. 너 홀로 군에 보내고 내내 아렸다.입대가 즐거운 젊은이가 어디 있으랴. 심란한 티 내지 않고 덤덤한 표정으로 뚜벅뚜벅 떠나던 뒷모습이 한 달여 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한 달이 한 해 같았다. 그런데 그 먼 진주까지 가서 기초훈련 모두 끝낸 너를 보자마자 아빠는 돌아서고 말았다. 너도 약속이나 한 듯이 등을 돌리더구나. 우리 부자는 그렇게 등 돌리고 서서 한줄기 눈물로 뜨거운 포옹을 대신하고 말았다. 그 옛날, 아빠 군에 가던 날 훈련소 앞 장면이 떠오른다. 억지로 웃으며 손을 흔들곤 바로 돌아서서 뛰었다. 강해지러 가는 군대인데 왜 눈물이.. 더보기
서울 꽃 강화 꽃 강화도가 서울보다 1, 2도쯤? 기온이 낮은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3월 26일 오늘, 서울은 온통 꽃세상이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개나리와 벚꽃은 말 그대로 만개였다. 가을 닮은 푸른 하늘 아래 목련도 터져 있었다. 한강 버들은 파릇하게 물이 올라 있었다. 강화는 이제 생강나무 수줍게 노랗고, 목련은 터질까 말까, 진달래 살짝 열리고 있는데, 그래서 아직은 겨울의 끝자락 풍경인데, 세상에, 서울은 딴 세상이었다. 하긴 강화도도 예년보다 빠르게 꽃들 피어날 태세다. 조만간 북산 벚꽃길 열리고 고려산 진달래 바다 펼쳐지겠지. 왜 이리 서둘러 피는가. 꽃도 사람을 닮아가는 모양이다. 학생 때 한국인의 민족성은 ‘은근과 끈기’라고 배웠다. 이제 누가 은근과 끈기를 말하랴.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 더보기
동네 굴뚝 이제 봄인가보다. 따듯한 날씨. 미세먼지 나쁘다는데 이제 웬만하면 신경 쓰이지 않고. 북산 한 바퀴 돌아볼까 하다가 그냥 동네 한 바퀴 돌았다. 강산이 바뀌고 또 바뀌고… 눌러사는 동네에서 처음 보고만 여전히 살아있는 굴뚝. 들어야 들리고 보아야 보인다. 더보기
사람 향 그윽한 녀석 전화기로 들려오는 쾌활한 음성, 늘 그렇듯 듣기만 해도 기운 나는 목소리다. 주인공은 친구 영근이다. “초등학교 동창 여자애가 너 만나 찬 한잔 하고 싶단다. 어떡할래? 니가 첫사랑이었대 인마. 흐흐~” 녀석, 오지랖하고는….영근이는 태어날 때부터 두 다리를 못 썼다. 목발 없이 설 수 없고, 앉아서는 두 팔로 방바닥을 밀며 움직인다. 그럼에도 결석 없이 초·중·고를 마쳤다. 손을 떨어 주판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그땐 학교에서 주판도 가르쳤다.). 그런데 이 친구 뒤늦게 미술을 시작하더니 급기야 지방의 미술대학에 진학했다. 나는 인근 사범대학에 들어갔다. 그냥 심신이 고달프던 어느 날, 친구 자취방에 갔더니 영근이는 힘들게 앉아 손빨래를 하고 있었다. 삼십 년이 훨씬 넘은 그때, 빨래하던 영근이의 모습.. 더보기
나무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다 강화 교동도 화개산 정상부근에 암각화가 있다고 해서 사진 찍으러 갔다. 유심히 보니 암각화 밑으로 기암절벽이 펼쳐져 있다. 겨울이라서 그게 보였다. 겁이 좀 나고 해서 망설였다. 내려가 볼까 말까. 결국, 카메라 들고 내려갔다. 낙엽이 미끄러워 몇 번 엉덩방아를 쪘다. 바위벽은 생각보다 웅장했다.사진을 찍으려다 나뭇가지가 가려서 포기하고 다른 장소를 찾았다. 역시 나무가 문제다. 구도가 괜찮다 싶으면 영락없이 나뭇가지가 앞을 막았다. 꺾어버릴까, 하다가 마음을 바꿨다. 쟤네들도 생명인데, 사진 한 장 찍자고 분질러버릴 수는 없었다. 겨우 적당한 장소에서 몇 장 찍고 두루두루 구경했다.이제 올라가야지. 그런데 올라가는 게 장난이 아니다. 내려올 때는 몰랐는데, 경사가 너무 심해서 위험했다. 손까지 땅을 짚.. 더보기
산사에서 만나는 글귀 부족한 것은 소리를 내지만 그러나 가득차게 되면 조용해진다 어리석은 자는 물이 반쯤 남은 물병과 같고 지혜로운 이는 눈물이 가득 담긴 연못과 같다 -수타니파타 정호승 시인의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를 읽다가 만난 글이다. 운문사 게시판에 있는 글이라고 한다. 생뚱맞게도 난 강화의 어느 산사(山寺) 찻집에 붙어 있던 글이 떠올랐다.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 녹화해서 인터넷에 공개 합니다 더보기
초지대교 막국수 점심을 밖에서 먹게 될 때, 주로 읍내에서 먹는다. 오늘은 맘먹고 25분 달려 초지진 쪽으로 갔다. 초지대교 옆 ‘초지대교 막국수’ 오랜 친구가 며칠 전에 개업한 곳이다. 비빔막국수를 시켰다. 나왔다. 내가 장사하는 것도 아닌데, 긴장됐다. ‘어떤 맛일까, 맛있어야 하는데…’ 드디어, 첫입. 면 씹는 맛이 좋다. 독특하다. 그런데, 맛이 별로라는 생각이 딱 들었다. 첫맛이 살짝 밍밍한 느낌? 아, 단맛이 덜했다. 일단 먹자. 먹을수록 맛이 괜찮았다. 아이고, 다행이다. 그동안 내가 사 먹었던 비빔막국수는, 맵든 달든, 맛이 강했던 것 같다. 그런데 친구가 낸 막국수는 자극적이지 않아서 첫맛이 덤덤했던 것 같다. 아무튼, 먹을수록 맛이 났다. 먹는 양이 워낙 적은 내가 한 그릇을 싹 비웠다. 만두까지 몇 .. 더보기
고려궁지 은행나무 당신 찾아 나섰다가 엇갈릴까봐꼼짝 말고 있으라던 말씀 생각나 한 발짝 움직임 없이 이 자리에 700년당신 보려 늘어난 목 지탱하려고 땅 밑으로 발가락만 키웠습니다당신 몸 흙 속에서 느껴볼 수 있을까속절없이 발가락만 늘렸습니다. 멀리서도 잘 보이게 초록 옷 입고 까치발로 동서남북 바라보다가 하늘 눈물 주룩주룩 흘러내릴 때나도 함께 주룩주룩 흘렀습니다초록보다 잘 보일 게 무슨 색일까노란색 옷 갈아입고 기다립니다잉태 한번 못해 본 몸 정이 그리워 날개 젖은 까치 아이 품어줬더니어깨 위에 집 짓고 가족을 이뤄 이제는 한 식구가 되었습니다당신 계실 그 곳 알 수 있다면까치 전령 당장 보내 맞아 오련만 오실 당신 계신 데 알 수가 없어 애가 탑니다700년 풍상을 한 자리에서 그리움 하나로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자꾸.. 더보기
아무튼, 거시기 고급 외제차 모는 어떤 젊은이의 횡포가 한동안 뉴스에 거듭 나왔지요. 그 젊은이는 운전 중 갈등 빚은 상대방에게 참으로 몹쓸 말을 했습니다.운전자끼리야 상스러운 욕설 오가도 그러려니 하겠습니다만, 이번엔 너무 심했습니다. 엄청 비싸다는 외제차 운전자가 상대방 차에 타고 있던 어린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이런 똥차 모는 너희 아빠는 거지다!아마도 외제차 운전자는 자기가 땀 흘려 돈 벌어 자동차를 마련한 게 아닐 겁니다. 부모가 사 줬을 겁니다. ‘부모 잘 만난’ 그 운전자가 상대방 운전자에게 그랬다지요. 나이만 처먹고 능력은 안 돼서 이런 똥차를 모는 거라고. 아이고, 참. 아들에게 비싼 차 사준 그 부모가 차라리 측은하게 느껴집니다.그런데 말입니다, 제가요, 한때 어느 외제차에 정신을 다 빼앗..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