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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史

병인양요 문수산성 전투, 한성근은 패했다 문수산성, 그러면 떠오르는 사건과 인물이 있을 겁니다. 예, 병인양요 문수산성 전투와 한성근입니다.   1866년(고종 3) 병인년에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침공하고 점령합니다. 그들은 지금의 강화 읍내에 주둔했습니다. 대원군이 파견한 양헌수(1816~1888)가 염하를 건너 강화 정족산성에 들었습니다.   그러자 프랑스군이 정족산성으로 쳐들어갑니다. 양헌수 부대가 그들을 격퇴합니다. 참패한 프랑스군이 서둘러 강화에서 철수하면서 전쟁이 끝납니다. 이것이 대략적인 병인양요의 경과입니다.   한성근의 문수산성 전투는 어느 단계에서 벌어진 사건인지 검토해봅시다.   날짜 전개 과정 10월 16일(음력 9월 8일)프랑스군, 강화 점령흥선대원군, 순무영 설치(순무사 이경하·순무중군 이용희·순무천총 양헌수)10월 17.. 더보기
옥씨부인전, 외지부와 전기수 구더기, 구덕이“꿈이 무엇이냐?”“늙어 죽는 것입니다.”꿈이 늙어 죽는 거라고? 뭔 대답이 이럴까요. “굶어 죽지 않고, 맞아 죽지 않고, 살다가 늙어 죽는 것입니다.”대답한 이는 노비입니다. 그것도 아주 포악한 양반집의 사노비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구덕이! 구더기 취급을 받으며 살고 있네요. 구덕이라는 이름 속에 노비의 신산한 삶이 스몄습니다. 구덕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JTBC 사극 ‘옥씨부인전’을 보고 있습니다.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에서 무지막지한 악역인 연진이를 연기했던 배우 임지연이 주인공 구덕이 역을 맡았습니다. 풍광 아름답다고 소문난 장소마다 다 찾아가서 촬영한 것인지, 멋진 풍경이 수시로 등장합니다. 오죽하면 제가, TV 큰 거로 바꿨으면 좋겠다, 생각했을까요. 아쉽게도 우리 집 작은 .. 더보기
김포 문수산, 문수산성 갑곶나루 선착장 석축로 뒤로 웅장한 자태, 문수산(376m)입니다. 김포에서 제일 높은 산이죠. 조선시대 암행어사로 유명한 이가 박문수잖아요. 어사 박문수가 김포 통진에 왔을 때 사또에게 문수산을 가리키며 저 산이 무슨 산이냐고 물었대요. 그랬더니 사또가 대답하길, “예, 저 산은 어사님 산이옵니다.” 그랬대요. 물론 재미로 만들어진 이야기입니다. 문수사(文殊寺)가 있는 산이라서 문수산(文殊山)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 강화에 정족산이 있는데 조선시대에 전등산이라고 불렀습니다. 전등사가 있는 산이라서 전등산이 된 것입니다. 한편 조선시대에 문수산을 비아산(比兒山)이라고도 했습니다. 1694년(숙종 20년)에 문수산성을 쌓았어요. 산성을 쌓았으면 지키는 부대가 필요하겠죠? 그래서 문수진(文殊鎭)을 설치하고 .. 더보기
사공 손돌과 손돌목 이야기(下) 또 다른 해석이제 지금까지와 다른 시각에서 손돌목을 보겠습니다. 김정호의 《대동지지》는 손돌목을 손량항(孫梁項)으로 적었습니다. 《인조실록》에서도 ‘손량항’이 보입니다. ‘梁’은 착량(窄梁)에서 따온 글자입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등에 ‘착량(窄梁)’이라는 강화의 지명이 등장합니다. ‘窄’은 ‘좁을 착’ 자입니다. ‘梁’은 ‘들보’ 또는 ‘징검다리’라는 원뜻과 달리 좁은 바다, 즉 해협이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명량해전, 노량해전 할 때의 그 ‘량’입니다. 그러니까 ‘착량’을 폭이 좁은 바다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될 것입니다. 《속수증보강도지》는 강화와 교동 사이 바닷길이, 그러니까 내가면 외포리 바다쯤이 착량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대개의 역사학자가 염하 또는 염하의 한 구간인 손돌목을 착량.. 더보기
사공 손돌과 손돌목 이야기(中) 이야기 분석이제, 지금 알려진 손돌 이야기와 《강도부지》의 차이점을 보겠습니다.  ① 바가지 손돌이 죽기 직전 바가지를 띄우고 가라고 한 이야기는 가장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다양한 생각거리를 제공합니다. 교훈적이기도 합니다. 손돌은 임금이 야속하고 미웠을 것입니다. 그냥 잠자코 죽었으면, 임금도 죽었을지 모르는데, 왜 살렸을까요? 충성심일 것 같습니다. 저는 손돌의 충성심을 임금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나라에 대한 충성, 즉 애국심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당시는 임금이 곧 국가인 시절입니다. 임금이 죽으면 나라가 망하는 것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나라가 망하기를 백성 손돌은 원하지 않습니다. 결국, 임금을 살려야 했습니다. 자신은 죽임을 당하더라도. 진정한 프로페셔널, 사공으로서의 자부심, 이런 시각으로 .. 더보기
사공 손돌과 손돌목 이야기(上) 바가지를 띄우시오강화의 대표적인 전설 가운데 하나가 뱃사공 손돌 이야기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창작된 허구인지, 아니면 실재했던 어떤 사실에 점점 살이 붙으면서 완성된 이야기인지, 명확히 알 수 없습니다. 우선, 오늘날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손돌은 뱃사공이다. 어느 임금이 난리를 피해 강화도로 오게 되었다. 김포 쪽에서 배를 타야 강화도에 올 수 있다. 임금을 모실 사공으로 손돌이 선발됐다. 배가 출발했다. 그런데 심히 출렁인다. 임금과 신하들이 보니 손돌이 물살 세서 위험해 보이는 곳으로 배를 저어 가는 거다.잔잔한 곳으로 가도록 명했지만, 손돌은 듣지 않았다. 자신이 가는 길이 안전한 물길이었기 때문이다. ‘이놈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 의심이 인 임금은 그 자리에서 손돌의 목을 치게 .. 더보기
[스크랩] 경제 논리에 밀려 청산한 강화고려역사재단 〈인천투데이〉 2025.01.03. 박길상 기자 7년 전 오늘, 2018년 1월 3일, 인천시가 인천문화재단 강화역사문화센터를 강화도에서 인천으로 철수시켰다. 강화역사문화센터 전신은 강화고려역사재단이었다.강화고려역사재단은 강화와 고려사 연구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6.25전쟁 이후 고려 수도 개성이 북쪽 지역에 들어가면서 남쪽에서는 고려의 역사성을 내세울 만한 곳이 극히 드물었는데 강화는 달랐다. 여·몽전쟁 시기 39년간이나 피란수도로 기능했던 강화도가 남쪽의 거의 유일한 고려사를 간직한 곳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2013년 7월 강화고려역사재단이 인천광역시 산하 기관으로 설립된 것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먼저, 2012년 8월 21일 인천시는 인천문화재단 내에 고.. 더보기
운요호 사건의 진실 운양호·운요호프랑스와 미국에 이어 이번에는 일본의 침략입니다. 다시 또 강화도입니다. 신미양요 4년 뒤 1875년(고종 12) 9월, 초지진 앞바다에 일본 군함 운요호가 나타납니다. 쌍방 포격전 끝에 운요호가 퇴각합니다. 이를 ‘운요호 사건’이라고 불러요.독자분들 대개가 학창시절에 운양호 사건(雲揚號事件)으로 배웠을 겁니다. 한자 그대로 읽은 거지요. 지금은 해당 나라 발음에 가깝게 읽는 원칙이 서서 운요호 사건이라고 합니다. 모택동을 마오쩌둥으로 쓰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요, 일본 사람들이 전함(戰艦)을 ‘함’으로 부르고 수송선을 ‘호’라고 했대요. ‘운요호’보다는 ‘운요함’이 더 정확한 호칭인 셈입니다만, 이 글에서는 역사용어로 굳어진 ‘운요호’를 그대로 쓰겠습니다. 메이지유신이제 운요호 사건이 일.. 더보기
아사녀여, 함허의 여인이여! 아사달과 아사녀혹시, ‘정년이’를 보셨는지요. 1950년대 여성국극을 소재 삼아 만든 12부작 드라마입니다. 지난 10월부터 11월까지 tvN에서 방영했는데요, 최고 시청률 16.5%를 찍었습니다. 주요 장면을 강화에서 촬영했답니다. 저는 ‘정년이’를 재밌게 봤어요. 특히 김태리(윤정년 역), 신예은(허영서 역) 등 출연 배우들이 대역 없이 직접 하는 판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진짜 소리꾼 같았습니다. 드라마 후반부 공연 장면에 아사달과 아사녀가 등장합니다. 오랜만에 들어본 아사달과 아사녀! 줄거리가 뭐였더라, 궁금해서 《삼국유사》를 열었습니다. 어딨지? 안 나오네요. 제가 또 착각한 겁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연오랑과 세오녀 이야기를, 아사달과 아사녀로 여기고 있던 겁니다. 아사달과 아사녀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