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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史

강화 참성단 천재궁 터 고려 때도, 조선 들어서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하늘 제사를 올렸습니다. 임금이 고위 관료 중에서 제사 책임자를 선정해 강화로 보냅니다. 참성단 제사의 책임자를 보통 행향사(行香使)라고 불렀어요. 행향사로 강화에 왔던 인물 가운데 이방원도 있습니다. 물론 조선 태종으로 즉위하기 전, 고려 조정에서 벼슬할 때였습니다. 행향사가 와서 묵으며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할 장소가 필요합니다. 제사 음식 준비도 해야 하고요. 그곳이 바로 마니산 북쪽 기슭, 화도면 문산리에 있던 재실, 천재궁입니다. 지금은 터만 남았으나, 옛날에는 제관들의 숙소와 제기 보관소를 비롯해 여러 건물이 있었을 겁니다. 목은 이색(1328~1396)이 지은 시에 따르면 앙산정(仰山亭)이라는 정자도 있었습니다. 천재궁 가는 길 들머리에 금표도.. 더보기
북일곶돈대 강화도가 서해안에 있다 보니, 일몰 광경 볼만한 데가 여럿입니다. 유명한 곳이 고려산 적석사 낙조봉이고 또 화도면 장화리입니다. 찾는 이들이 많아지자, 적석사에서 낙조대를 설치했고, 강화군은 ‘장화리일몰조망지’를 조성했습니다. 북일곶돈대는 장화리일몰조망지에서 2㎞ 정도 숲길을 걸어야 만날 수 있습니다. 주차 공간도 좁아서 승용차 너덧 대 겨우 대는 정도입니다. 불편합니다. 그래도 불편함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1679년(숙종 5)에 쌓은 48돈대 가운데 하나입니다. 장곶보 소속입니다. 북일곶(北一串)에 들어선 돈대라 북일곶돈대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위치가 강화도 남서쪽 해안인데 어떻게 북(北)자가 들어갔을까. ‘北’의 본디 의미는 ‘등지다’, ‘배후’, ‘뒤’였다고 해요. 마을 사람들이,.. 더보기
광성보 광성돈대 안내판 철거 광성돈대 앞 하얀 안내판 참 오래됐다. 남루해 보였다. 내용에 오류가 많아서 거시기 했다. 특히, 조선군의 주력 화포였던 불랑기를 프랑스군이 쓰던 것이라고 설명한 부분은 좀 심했다.최근에야 철거했다. 다행이다. 강화군시설관리공단에 박영길 이사장이 부임하면서 많은, 긍정적 변화가 있는 것 같다. 더보기
귀 열어 하늘의 경고를 들으시라 연산군 3년(1497년), 대궐에 벼락이 쳤다. 국왕 비서 기관인 승정원에서 아뢰길, 임금이 덕을 잃어 하늘이 꾸지람을 내린 것이라고 했다. 연산군은 조정에 나가 “내가 부덕하여 하늘이 벼락을 내렸다”라고 하면서 대책을 말해달라 이른다. 신하들이, 성찰하고 근신하며 정사를 부지런히 돌보셔야 한다고 말했다. 천둥소리는 백성들이 고통스러워 울부짖는 소리이니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한다고도 했다. 연산군의 대답이 대략 이러했다. “그동안 날이 너무 더워서 내가 정사에 게을렀다. 경연에도 응하지 않았다. 앞으로는 열심히 하겠다.”연산군 6년(1500년), 사헌부가 상소했다. 임금이 잘못하면 하늘이 천재지변을 내려 꾸짖고 경고한다는 한나라 동중서의 말을 인용하면서 “근래 수재와 한재가 잇따르고 흉년과 기근이 .. 더보기
강화도조약을 알아봅시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올해는 2025년입니다. 150년 전인 1875년(고종 12)에 초지진 수비군이 무단 침입한 일본 군함을 쫓아냈습니다. 운요호 사건입니다. 다음 해 1876년(고종 13) 2월, 그들이 다시 강화에 왔습니다. 조선 정부에 따지겠다고 왔습니다. 서계(외교문서) 접수 거부와 운요호 사건에 대한 사과를 받겠다는 겁니다. 중국에 가다가 물이 부족해 물 좀 달라고 간 사람들에게, 그것도 국기를 달아 국적을 밝힌 사람들에게 물은 안 주고 포격한 이유가 뭐냐. 인도주의적으로도 그렇고, 국제법상으로도 그렇고, 조선이 잘못했다는 얘기입니다. 지난 호(제77호, ‘운요호 사건의 진실’)에서 말씀드린 대로 식수를 구하러 왔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중국 가던 길이라는 말도 거짓입니다. 국기를 달았다는 .. 더보기
한국사 속 강화도 역사 없는 땅이 어디 있으랴. 그럼에도 강화도는 좀 유별나다. 구석기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의 흔적이 섬 안에 가득하다. 고인돌의 성지로 남한 땅에서 제일 큰 탁자식 고인돌이 있다. 고조선·단군과 관련된 전설이나 유적은 전국 여러 곳에 퍼져있다. 그런데 옛 역사책에 기록이 남아 공신력이 인정되는 곳은 강화도의 참성단과 삼랑성이다.    《고려사》에 “마리산은 부의 남쪽에 있으며 산 정상에 참성단이 있다. 세상에 전하기를 단군이 하늘에 제사하던 제단이라고 한다.”, “전등산은 일명 삼랑성인데 세상에 전하기를 단군이 세 아들을 시켜 쌓은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적혀 있다. 《세종실록》에도 비슷한 내용이 실려 있다. 비록 ‘세상에 전하기를[世傳]’이라는 단서를 달았으나 나라에서 편찬한 공식 역사책에.. 더보기
사인비구 제작 동종-강화동종 혹시, 노래 듣다가 울어보신 적 있으신가요?저는 있습니다. 예전에 ‘미스터트롯’에서 임영웅이 부르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들을 때였네요. 제 의지와 상관없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좋은 음악은 지저분한 마음을 맑게 씻어주고, 어수선한 마음을 다독여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산사의 종소리도 좋은 음악이라고 여깁니다. 드엉, 덩, 은은한 종소리가 귀보다 먼저 가슴으로 스미면, 나도 몰래 “하아~” 한숨을 내쉽니다. 산에서 듣는 종소리와 집에서 듣는 종소리는 맛이 다를 수밖에 없지요. 그래도 강화동종의 울림소리는 여느 산사의 범종 소리에 뒤지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그윽했습니다. 절에 있는 종을 대개 범종(梵鍾)이라고 부릅니다. ‘범(梵)’은 불교와 관련된 글자예요. 강화동종은 그냥 동종(銅鐘)입니다. .. 더보기
《삼국지》는 소설책일까, 역사책일까 《삼국지》 하면 우선 소설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한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삼국지》는 소설이 아니고 역사책이다. 소설 《삼국지》의 정식 이름은 《삼국지통속연의》, 줄여서 《삼국지연의》라고 한다. 명나라 때 나관중(1330?~1400)이 지었다. 역사책 《삼국지》는 위진남북조시대 서진 때 진수(233~297)가 썼다. 기전체 형식이다. 나관중은 진수의 《삼국지》를 바탕으로 《삼국지연의》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기전체 역사책 《삼국지》는 위서·촉서·오서로 되어 있다. 위서에 실린 열전 가운데 하나가 동이전이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은 하나의 책 제목이 아니라 《삼국지》 속에 있는 위서에 실린 동이전이라는 뜻이다. 중국은 자기네 동쪽에 사는 이민족들을 동이(東夷)라고 불렀다. 우리나라도 동이족에 포함됐다. .. 더보기
김포 덕포진의 역사 한강.참으로 먼 길이었습니다. 흐르고 흘러 하성면 시암리에서 임진강을 만났습니다. 몸 섞어 하나 된 둘이는 드디어 바다가 되었습니다. 염하입니다. 흘러 흘러 도착한 곳, 덕포진이에요. 병자호란(1636~1637) 그때 강화에 봉림대군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인조와 형 소현세자는 남한산성에 있었고요. 문수산 아래 진을 친 청군이 강화도를 침공합니다. 막아 싸워야 할 책임자, 검찰사 김경징과 강화유수 장신은 1등으로 도망갔습니다. 왜 이렇게 도망간 지도자가 많은지….강화는 청나라 군대에 점령됐고, 봉림대군은 삼전도로 끌려갑니다. 아버지 인조는 거기서 풀려났지만, 아들 봉림대군은 청나라까지 가야 했습니다. 인질입니다. 겨우 돌아와 즉위했습니다. 그이가 효종입니다. 효종은 강화도 방비에 더욱 신경을 씁니다. ‘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