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 3년(1497년), 대궐에 벼락이 쳤다. 국왕 비서 기관인 승정원에서 아뢰길, 임금이 덕을 잃어 하늘이 꾸지람을 내린 것이라고 했다. 연산군은 조정에 나가 “내가 부덕하여 하늘이 벼락을 내렸다”라고 하면서 대책을 말해달라 이른다.
신하들이, 성찰하고 근신하며 정사를 부지런히 돌보셔야 한다고 말했다. 천둥소리는 백성들이 고통스러워 울부짖는 소리이니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한다고도 했다. 연산군의 대답이 대략 이러했다. “그동안 날이 너무 더워서 내가 정사에 게을렀다. 경연에도 응하지 않았다. 앞으로는 열심히 하겠다.”
연산군 6년(1500년), 사헌부가 상소했다. 임금이 잘못하면 하늘이 천재지변을 내려 꾸짖고 경고한다는 한나라 동중서의 말을 인용하면서 “근래 수재와 한재가 잇따르고 흉년과 기근이 겹치며 일식과 월식이 일어나고 농사철에 우박이 내리는 것이 바로 하늘의 경고이자 가르침이니, 전하께서는 두려움을 알고 정신을 차리셔야 합니다.” 연산군이 답변을 내렸다. “옳은 말이다만, 표현이 좀 심한 것 아닌가.”
특이한 자연현상 가운데 당시 사람들이 유난히 불길하게 여긴 것이 일식이다. 태양은 임금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게 어둠에 먹혀 쪼그라드는 현상은 왕권을 위협하는 신호로 인식하기 마련이었다. 태양이 찬란하게 빛나야 임금도 빛난다. 태양이 빛을 잃으면 임금도 빛을 잃는다.
그래서 일식 때면 임금과 신하들이 죄인 된 심정으로 소복을 갖춰 입고 하늘에 비는 의식을 치렀다. 세종대왕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게 일식이 끝나고 태양이 빛을 찾으면 임금도 비로소 용서받은 게 된다.
현대적,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연산군과 신하들이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쓸모없는 대화를 한 것이다. 일식 때 세종이 소복 입고 하늘에 절하는 행위도 무가치한 일이다. 심한 가뭄 때 임금들이 “내 탓이오” 사과하며 기우제를 지내던 것도 헛일에 불과하다.
하지만 과학이라는 잣대와 현대인이라는 보이지 않는 우월감을 내려놓고 보면, 조선 당대 사람들 특히 임금과 신하들의 자연에 대한 인식이 지금의 그것보다 더 훌륭했다고 할 수 있다. 하늘의 기운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고 인간의 기운은 하늘에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은 인간을 성찰하게 하고 겸손하게 한다. 자연에 대한 경외를 품게 한다.
중국 한나라 때 인물인 육가는 “군주가 부덕하여 형벌로 다스리면 삿된 기운이 생긴다. 재해는 천하가 평화롭지 못할 때 발생한다. 악한 정치는 악한 기운을 만들며, 악한 기운은 재해를 생기게 한다”라고 했다.
평생 처음 절절하게 세상 걱정, 나라 걱정하며 겨울을 보냈다. 봄꽃이 피었으나 걱정은 끝나지 않았다. ‘화마’라고 하기에도 부족한 끔찍한 불덩이가 온산을 휩쓸며 고귀한 생명과 삶터를 앗아갔다. 엄청난 재해였다. 더해서 땅까지 꺼지며 더 큰 공포를 부른다. 많은 이가 전쟁보다 더 처절한 삶을 살아내고 있다.
부디 대한민국의 ‘군주’여, 각계의 ‘신하’들이여, 귀 열어 하늘의 경고를 들으시라. 산불로 신음하는 저 선량한 ‘백성’의 신음이 곧 하늘의 경고 소리임을 인식하시라. 그 지독한 욕심과 교만 조금만 내려놓고 ‘백성’과 나라의 앞날을 고뇌하고, 말하고, 행동해주시라. 국민이 무슨 죄인가.
〈한겨레신문〉 2025년 4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