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敎 썸네일형 리스트형 "저에게는 70점이 보물입니다" 신학기에 다시 고3 담임을 하게 됐다.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제대로 하려면 의욕, 체력, 정보 수집력, 분석력 등이 필요한 것 같다. 나는 그중 뭐 하나 제대로 갖춘 것이 없어서 피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 것은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도와주며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따뜻한 동료 교사들이다. 이왕지사, 수험생의 조력자로서 제구실을 다하고 싶다.우리 학급 아이 서른아홉 명이 마음 덜 아프고 몸 덜 아프도록 보살피며 아비의 심정으로 살아가련다. 빼어나지 못해서, 그리고 말썽쟁이가 아니어서 외려 주목받기 어려운 평범한 아이들의 쓸쓸함, 그 외로움이 깊어지지 않도록 두루두루 품으며 살련다. 그렇게 봄이 가고 여름이 가면 가을도 오고 겨울도 오겠지.2월의 학교는 고요하.. 더보기 고3 담임의 넋두리 퇴근길, 목욕탕에 들러 땀을 빼냈다. 때도 밀었다. 그래도 영 개운하지 않았다. 울적한 날이면 잠시 들렀다 가던 초지진에 내렸다. 벤치에 앉아 초지대교 야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찰랑대는 바닷물 소리가 이제는 춥다. 전쟁, 그래 전쟁이었다. 약 한 달간 계속된 4년제 대학 수시 1차 원수접수가 끝났다. 오늘 마지막 남은 한 아이의 자기소개서 입력을 도와주는 것으로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다. 오래도록 해오던 일을 끝내고 나면 시원섭섭하다고 우리는 말한다. 그런데 나는 시원하지도 섭섭하지도 않다. 그냥 맥이 빠지고 허탈하다. 몇 아이나 건질 수 있을까? 대한민국 고3 담임들의 공통된 심사가 아닐까 싶다. 우리 반 아이들 대부분이 적게는 한 대학, 많게는 여섯 개 대학에 원서를 썼다. 다해서 백 수십 통이다... 더보기 “떡 한 조각 더 가져와라” 좋은 사람들과 저녁밥 먹는 자리, 한 사람이 딸 자랑을 한다. 딸 없는 나는 말도 없다. 그저 부럽다. 머릿속에 뚝뚝한 아들놈을 떠올린다. 누가 그런다. “아들들은 문자해도 ‘응응’ 그런다데.” 누가 말을 받는다. “응응도 다행이지, 우리 애는 ‘ㅇㅇ’이야.” 나는 속으로 말한다. ‘우리 애는 답도 없어요.’ 딸!, 그래, 나도 딸 같은 녀석들이 있었다. 교직에서 물러나기 전, 우리 반 여학생들을 딸로 여겼다. 붙임성 있는 아이들은 정말 딸처럼 굴었다. 한 아이가 떠오른다. 십여 년 됐으려나. 그때 나는 고3 담임이었다. 성희가 교무실에 자주 놀러 왔다.어느 날 성희가 홍삼즙 몇 봉지를 들고 와서 먹으란다. 이게 웬 거냐고 물었더니, 이 녀석 왈, “집에서 훔쳐 왔어요.” 어이없다. “야 인마, 엄마 아.. 더보기 학교여 안녕히 오전이면 끝낼 줄 알았다. 아니었다. 오후 늦도록 이것저것 버리기에 열중했다. 서랍장 정리에 책상 정리, 근 30년 세월이 쌓인 흔적을 지우려니 그게 쉽지 않았다. 당시에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모아두었던 것들이 이제 보니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짐 정리가 자꾸만 지체된 것은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나오는 아이들의 쪽지와 편지 때문이었다. 2014년 것도 있고 2000년 것도 보인다. 하나하나 다시 읽어보게 된다. 텅 빈 교무실에 홀로 앉아 가물가물한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다 보니 어느덧 해가 기운다. 아이들은 민망하게도 나에게 고맙다고 썼다. 편지의 마지막은 대개가 “사랑합니다.” 사랑한다는 소리를 평생 듣고 살았으니 난 행복한 교사였다. 이 행복을 포기하고 학교를 떠나는 이유는 건강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 더보기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