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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敎

"저에게는 70점이 보물입니다"

신학기에 다시 고3 담임을 하게 됐다.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제대로 하려면 의욕, 체력, 정보 수집력, 분석력 등이 필요한 것 같다. 나는 그중 뭐 하나 제대로 갖춘 것이 없어서 피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 것은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도와주며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따뜻한 동료 교사들이다. 이왕지사, 수험생의 조력자로서 제구실을 다하고 싶다.

우리 학급 아이 서른아홉 명이 마음 덜 아프고 몸 덜 아프도록 보살피며 아비의 심정으로 살아가련다. 빼어나지 못해서, 그리고 말썽쟁이가 아니어서 외려 주목받기 어려운 평범한 아이들의 쓸쓸함, 그 외로움이 깊어지지 않도록 두루두루 품으며 살련다. 그렇게 봄이 가고 여름이 가면 가을도 오고 겨울도 오겠지.

2월의 학교는 고요하다. 고요함 속에서 이미 고3은 시작됐다. 독서실에서 책을 파는 아이들 눈빛이 살아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도, 좀 떨어지는 아이도 저마다 꿈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모두가 소중한 내 새끼들이다. 창밖 운동장, 텅 비어 더 넓은 운동장을 바라보다가 한 여학생을 떠올렸다. 나를 정신 차리게 한 고마운 아이다.

몇 해 전 여름날 교무실, 1학년 여학생이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서럽게 울었다. 나는 말없이 휴지를 건네주었다. 주변 선생님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이가 많건 적건 우는 이를 마주 보고 있는 건 힘든 일이다. 아이는 기말고사 점수가 예상보다 낮게 나왔다며 나를 찾았다. 자기가 채점한 건 72점인데, 점수표에는 68점으로 나왔다고 했다.

나른한 봄날 오후, 아이들이 졸고 수업하는 선생마저 깜빡거리는 교실에서 그래도 이 아이는 졸지 않았다. 몰입(沒入)이라고 할 만큼 수업에 집중하는 아이 모습을 보며 기운을 차리던 나였다. 밝고 싹싹하기까지 한 아이였는데, 왜 하필 이 녀석의 성적이 잘못됐을까.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아이와 함께 답안지를 확인해 봤다. 주관식 문제를 풀면서 실수하는 바람에 4점이 줄었다. 아이는 부분 점수라도 받기를 원했지만, 점수를 더 줄 수는 없었다. 답을 알고 적은 것은 분명하지만, 표현이 틀렸으니 도리가 없었다. 아이를 달래서 교실로 보냈다. 교사는 자기 수업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더 호감이 가기 마련이다. 나 역시 이 아이가 예뻤지만 그렇다고 채점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안쓰러운 마음으로 아이 답안지를 다시 들여다보다가 불쑥 이런 생각이 들었다. '60점이나 70점이나 그게 그건데 울기까지 할 게 뭐 있어. 100점 맞을 것도 아니고 말이야. 애가 좀 유별난 데가 있네.' 그런데 내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아이는 환히 웃으며 꽃봉투를 내밀고 갔다. 긴 편지였다.

"중학교 때는 50점을 넘긴 적이 없습니다. 항상 목표는 70점을 기준으로 하였지만 결국 이루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 중간고사 때 국사를 80점 넘겼는데 부모님과 저는 기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말고사에서도 국사와 사회가 70점을 넘겼다는 사실을 확인한 저는 목표가 이루어져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고 충격이 다가왔습니다. 비록 시험을 잘 본 학생에게는 제 점수의 목표가 보잘것없어 보이겠지만, 저에게 70점은 보물입니다. 다음 학기 때 좋은 성적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 이런편지를 읽으며 당혹스러웠고 부끄러웠다. 그 아이에게 68점과 72점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었다. 70점이라는 보물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아이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유별난 애 취급을 했으니. 아이는 자기 말대로 2학기 시험에서 내가 맡은 국사와 사회 과목 모두 90점을 넘겼다.

나도 예전엔 중하위권 아이들 점수까지 챙겨서 격려하고 위로하며 자신감을 심어주려고 애쓰던 교사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100점 맞은 아이가 누군가, 1등급은 몇 명이나 나왔나, 명문대 보내야 할 그 녀석이 등급을 까먹지는 않았나, 이런 데만 신경을 모으고 있다. 물론 100점이 소중하지만, 70점도 그 이상으로 소중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고 있었다. 심지어 주관식 채점하다가 백지 답안지가 나오면 속으로 웃기까지 했다. 채점을 빨리 끝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 아이의 편지는 다시금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100점보다 70점 받는 아이가 선생님이 더 절실하게 손을 내밀어 잡아주어야 할 존재다. 이제 돌아가련다. 백지 답안지 내는 학생을 어떻게 공부시킬까 고민하는 교사로 다시 서련다. "경수 쌤! 저 국사 60점 넘었어요." 세상을 다 얻은 듯 60점이라는 성취에 환호하는 녀석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교사로 돌아가련다. 1등의 아픔도, 꼴찌의 아픔도 함께 아파하는 '아빠'가 되고 싶다.

조선일보2012.02.22.

나는 오늘도 선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