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들과 저녁밥 먹는 자리, 한 사람이 딸 자랑을 한다. 딸 없는 나는 말도 없다. 그저 부럽다. 머릿속에 뚝뚝한 아들놈을 떠올린다. 누가 그런다. “아들들은 문자해도 ‘응응’ 그런다데.” 누가 말을 받는다. “응응도 다행이지, 우리 애는 ‘ㅇㅇ’이야.” 나는 속으로 말한다. ‘우리 애는 답도 없어요.’
딸!, 그래, 나도 딸 같은 녀석들이 있었다. 교직에서 물러나기 전, 우리 반 여학생들을 딸로 여겼다. 붙임성 있는 아이들은 정말 딸처럼 굴었다. 한 아이가 떠오른다. 십여 년 됐으려나. 그때 나는 고3 담임이었다. 성희가 교무실에 자주 놀러 왔다.
어느 날 성희가 홍삼즙 몇 봉지를 들고 와서 먹으란다. 이게 웬 거냐고 물었더니, 이 녀석 왈, “집에서 훔쳐 왔어요.” 어이없다. “야 인마, 엄마 아빠 드시는 걸 갖고 오면 어떡해?” 녀석이 천연덕스럽게 대꾸한다. “에이, 몇 개 집어와도 울 엄마 몰라요.”
나는 ‘훔쳐’ 온 홍삼을 맛있게 먹고 기운 냈다. 며칠 후 아침, 녀석이 출출할 때 먹으라며 책상에 뭘 두고 사라진다. 신문지를 풀어보니 팥고물 그득한 시루떡 한 조각, 따듯하다. 출출하지 않아서 책상에 그냥 뒀다. 퇴근할 때야, ‘아! 떡, 어쩌지.’ 할 수 없이 집에 갖고 갔다. 어머니 드시라고 드렸다.
웬일이래, 밥맛 잃어 못 드시던 양반이 한 조각 달게 드시고, 더 먹었으면 좋겠단다. 다음 날 성희에게 그랬다. “떡 남았으면 한 조각만 더 가져 와라.” “그렇게 맛있어요?” “우리 어머니가 맛있다고 하시더라.” “진짜요? 냉장고 뒤져볼게요.”
이튿날 오전, 수업하고 나오니 행정실에서 전화가 왔다. 내 앞으로 뭐가 왔다기에 내려가 봤다. 세상에, 시루떡이다. 김 무럭무럭, 따끈따끈한 시루떡 한 상자. 벌게진 얼굴은 따끈한 시루떡 열기 때문인 걸로 하자. 당황했다.
급하게 아이를 불렀다. “어찌 된 일이냐?” 아이의 대답, “아, 이 엄마, 사고 쳤네.” 자초지종이 이랬다. 집에 오자마자 냉장고를 뒤지는 딸, 뭘 찾느냐고 엄마가 물었고, 딸은 이러저러해서 떡을 찾는다고 말했다. 떡은 없었다. 엄마는 아이 몰래 방앗간으로 달려 떡을 맞췄다. 그게 행정실로 배달된 거다.
진땀이 났다. 성희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의 말은 대략 이러했다. 담임선생님 고마워서 뭐라도 해드리고 싶었는데 워낙 깐깐하시다고 소문이 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딸한테 떡 얘기 듣고 ‘좋아서’ 방앗간으로 뛰었다. 지금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그냥 기쁘게 받아주시면 좋겠다.
난 잘 먹겠다고 인사드렸다. 성희 엄마는 감사하다고 했다. 주시는 분이 감사하다고 하셔서 나는 더 민망하였다. 떡을 풀었다. 모든 선생님에게 한 조각씩 돌리고도 서너 조각이 남았다. 집에 가져갔다. 어머니가 또 맛있게 드셨다. 긴 교직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이다.
시대가 바뀌었다. 지금은 학부모에게 음료수 한 병만 받아도 큰일 나는 세상이다. 그만큼 교직사회가 맑고 깨끗해진다니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뭔가 자꾸 메말라간다는 것은 아쉽다. 세상의 오해가 있다. 교사에게 선물하면 아이를 잘 봐주고, 그렇지 않으면 아이를 무시한다는. 교사의 인격을 너무 낮춰본 오해다. 난 딸 같은 성희에게 뭘 특별히 잘해준 게 없다. 성적 낮은 아이들, 집안이 가난한 아이들, 무시한 적도 없다고 생각한다. 대개의 교사들이 그렇다.
《사학연금》 2018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