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로 들려오는 쾌활한 음성, 늘 그렇듯 듣기만 해도 기운 나는 목소리다. 주인공은 친구 영근이다. “초등학교 동창 여자애가 너 만나 찬 한잔 하고 싶단다. 어떡할래? 니가 첫사랑이었대 인마. 흐흐~” 녀석, 오지랖하고는….
영근이는 태어날 때부터 두 다리를 못 썼다. 목발 없이 설 수 없고, 앉아서는 두 팔로 방바닥을 밀며 움직인다. 그럼에도 결석 없이 초·중·고를 마쳤다. 손을 떨어 주판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그땐 학교에서 주판도 가르쳤다.). 그런데 이 친구 뒤늦게 미술을 시작하더니 급기야 지방의 미술대학에 진학했다. 나는 인근 사범대학에 들어갔다. 그냥 심신이 고달프던 어느 날, 친구 자취방에 갔더니 영근이는 힘들게 앉아 손빨래를 하고 있었다. 삼십 년이 훨씬 넘은 그때, 빨래하던 영근이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이빨 다 드러내고 환하게 웃던 그의 얼굴 덕분이다.
어떤 게 우울한 것인지 모르는 친구 같았다. 그럴 리가 있나. 자신에 대한 긍정 그리고 극복이라는 수양을 통해 더 밝게 더 씩씩하게 사는 삶의 가치를 알았기에 가능한 미소였다. 눈물 몇 바가지 쏟아내고야 가능할 미소일 것이다. 그 녀석이 끓여준 라면을 먹고 인삼 녹용 먹은 만큼 힘이 나서 나는 내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대학을 마치고 영근이는 서울에 있는 디자인회사에 취직해서 몇 년을 다니다가 그만뒀다. 3층 사무실까지 목발 짚고 계단 오르내리기가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얼마 후 1층 사무실을 얻어 광고회사를 차렸다. 잘 나가다가 몇 년 만에 망했다. 두 손, 두 다리 다 멀쩡한 ‘정상인’에게 사기를 당해서 그렇게 됐다.
평생 처음 분노에 빠진 친구는 전국으로 사기범을 찾아 헤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용서를 단행했고 다시금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일이 필요했다. 오래도록 미술 입시 교육 강사를 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꽃집을 냈다. 그림 하던 녀석이 웬 꽃집이야, 했는데 생각해보니 아주 어울리는 직업이다. 사람 향 그윽한 녀석이 꽃 향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으니까.
한 발짝 떨어져 그를 지켜봐 온 40여 년 세월. 나는 의욕저하, 무기력, 우울함을 달고 살았고 영근이는 늘 에너지가 넘쳤다. 너무 힘들다 싶을 때마다 영근이 사는 모습을 보며 힘을 얻곤 했다. 하늘에 신이 계신가보다. 적당한 나이에 영근이에게 고운 아내를 주셨고 아들을 주셨으니. 머지않아 아들 결혼한다며 껄껄 전화 오겠지.
아, 여자 동창생 만날 거냐고 했지. “영근아, 안 만날래. 누군지 나한테 알려줄 필요 없어. 그게 좋을 것 같다. 니가 잘 말해줘.” 사실, 그 여인이 누군지 궁금하긴 하다.
《좋은생각》, 2015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