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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史

초지진 대포를 생각합니다(上)

강화 초지진 대포

 

진짜인가, 가짜인가

 

초지진에 갔습니다.

그동안 초지진에 간 게 몇 번이나 될까. 적어도 수십 번은 될 겁니다. 그런데 한 번도 거기 포각(砲閣) 안에 있는 철제대포를 유심히 본 적이 없네요. 오늘은 작정하고 꼼꼼하게 살핍니다.

길이가 2m 훨씬 넘네요. 몸통 끝에 커다란 방울 모양 쇳덩이가 달렸습니다.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으나 표면이 상당히 쭈글쭈글합니다. 망치 같은 것으로 두드린 모양새입니다.

 

강화 갑곶돈 대포

 

이 대포와 모양이 흡사한 대포가 갑곶돈대에도 있습니다. 이섭정 뒤편 담장 아래 포각을 짓고 그 안에 대포를 앉혔습니다. 갑곶돈대 대포는 표면이 비교적 매끄럽습니다. 초지진과 갑곶돈대 대포 둘 다 진품이라고 합니다.

모양 닮은 대포들이 또 있어요. 광성보 광성돈대와 덕진진 남장포대 대포입니다. 광성돈대 안에 1, 남장포대에 7개가 있습니다. 광성돈대와 남장포대 대포는 1970년대에 만든 복제품입니다. 초지진 대포 모양을 본떠 제작한 것입니다.

초지진과 갑곶돈대 대포가 옛날부터 쭉 강화에 있던 것은 아닙니다. 서울에서 왔습니다. 그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복원작업에서는 甲串鎭의 돈대와 女墻 등을 새로 짓고 대포 1문(조선조 말의 실물로 故 張澤相 댁에서 기증한 2문 중 다른 1문은 草芝鎭에 설치), 佛狼機(불랑기·작은 대포) 2문을 설치했으며 경내조경을 했다.

 

강화 중요국방유적 복원공사를 마무리하던 197710월에 당시까지 복원 상황을 소개한 조선일보 기사입니다. 국회의원·국무총리를 역임한 장택상(張澤相, 1893~1969)의 후손이 갑곶돈대 대포와 초지진 대포를 기증했다는 보도입니다.

길이보전하세-동작의 재발견(1987)이라는 책에 장택상 별장을 소개한 내용이 있습니다. 일부를 옮깁니다.

이곳에는 임진왜란 당시에 사용되던 국산 화포(火砲) 2문과 소포(小砲) 3문이 있었는데 나라에 기증하여 현재는 강화도 갑고진 유적지에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국산 화포(火砲) 2이 바로 갑곶돈대와 초지진에 있는 철제대포입니다. ‘임진왜란 당시에 사용했다고 전해진 모양인데, 그때 임진왜란 시기에는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갑고진은 물론 갑곶진의 오기이지요.

 

 

 

문기둥이었다니

 

장택상은 문화유산 수집가로도 유명했습니다. 하지만 강화에 기증한 대포는 그가 직접 구매해서 보관하던 유물이 아닙니다.

조선 후기, 한강 노량진 풍광 좋은 언덕에 월파정(月波亭)이라는 정자가 있었습니다. 이후, 이 터에 규모 큰 건물이 들어서게 되는데 여전히 월파정으로 불렸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월파정 주인은 아라이 하츠타로(荒井初太郞, 1868~1945)라는 일본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건물을 늘리고 고치며 관리했습니다. 조경에도 관심이 많아서 정원을 직접 꾸몄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 취향이 참 괴이합니다. 불랑기 여럿을 줄지어 땅에 박고 쇠사슬을 연결해 울타리로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현관문 좌우에 커다란 대포 두 개를 기둥으로 세웠습니다.

해방 후 월파정은 장택상 소유가 됩니다. 그래서 장택상 별장으로 불리게 되었답니다. 아라이 하츠타로가 모아 설치한 유물들도 장택상 소유가 되었습니다.

한국의 화포(2004)에 강화 초지진 대포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이 포는 원래 덕포진 하류인 손돌목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1894년에 신안리로 옮겨졌다가 1911년 일본인 荒井(헌병대위)이 노량진에 위치한 별장의 현관 기둥으로 사용하였다.

 

荒井은 앞에서 소개한 아라이 하츠타로입니다. 헌병대위라고 썼는데, 사실은 헌병이 아니라 민간인 사업가이자 골동품 수집가입니다.

그가 월파정 현관문 기둥으로 세웠던 두 개의 대포를 나중에 장택상 집안에서 나라에 기증했고, 그래서 초지진과 갑곶돈대에 각각 두게 된 것입니다.

이 포는 원래 덕포진 하류인 손돌목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1894년에 신안리로 옮겨졌다고 했습니다. 전거를 밝히지 않아서 사실 여부를 단언하기 어렵습니다만, 내용을 풀어봅니다.

덕포진 하류인 손돌목이 김포를 가리키는 것은 아닐 겁니다. 덕포진 지역이 지금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에 속합니다. 이 화포가 김포에 배치됐다면 신안리에서 신안리로 옮겼다는 의미가 되니,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덕포진 하류인 손돌목은 강화 덕진진 영역 정도로 보는 것이 무난할 것입니다. 덕진진쯤에 있던 대포가 김포 신안리, 그러니까 덕포진으로 옮겨 배치됐다가 월파정으로 갔다는 설명입니다.

 

 

대포의 정체

 

초지진·갑곶돈대 대포가 조선시대에 정말 강화에 배치됐던 것인가?

미리 말씀드리자면, 이 대포들의 모든 것이 너무 불확실합니다. 대포에 명문(銘文)이 없고, 사연을 전해주는 사료도 거의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상당 부분 추정해서 글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초지진·갑곶돈대 대포가 조선 후기 한때 강화에 있었을 개연성이 있습니다. 강화도서울 월파정강화도로 이어진 대포의 여정, 이게 사실인지 검토하려면, 우선 포의 정체라고 할까, 이름부터 알아보아야 합니다.

예전에 초지진 대포 앞에 홍이포라고 쓴 안내판이 있었습니다. 지금 안내판에는 그냥 대포라고 쓰여 있습니다. 갑곶돈대로 달려가 보니 거기 안내판도 대포라고 썼네요. 홍이포가 아닌데 왜 홍이포라는 안내판을 놓았느냐는 민원이 여러 해 전에 꽤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꾼 모양입니다.

하지만, 저는 홍이포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지역에 남아있는 홍이포와 초지진 대포의 모양이 상당히 비슷합니다.

한국고화기도감(1974)에 초지진 대포가 홍이포라고 나옵니다. 문화재청(지금 국가유산청)이 낸 2023 사적 정기조사도 초지진 대포를 홍이포로 표기했습니다.

조선후기 화약무기를 다룬 어느 박사학위 논문(2024)현재 한국에 보존된 실물 유물 중에서 조선시대 홍이포일 가능성이 있는 사례는 강화도 초지진에 전시 중인 홍이포 뿐이다라고 썼습니다.

-강화문화원, 江華文化19(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