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史

천연기념물은 문화유산일까, 자연유산일까

강화 갯벌(천연기념물)

 

 

사람 손길이 닿아야 문화다

이번 호에서는 천연기념물과 사적을 중심으로 국가 지정문화유산의 성격을 검토합니다. 강화의 특정 문화유산 소개는 다음으로 미룹니다.

강화 갯벌이 천연기념물(天然記念物)입니다. 천연기념물! 참 익숙한 용어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면, 어딘지 이상한 단어 조합이라는 걸 인식하게 됩니다.

천연-기념-. 천연은 자연 상태를 의미합니다. 기념은 뜻깊은 일이나 사건을 잊지 않고 마음에 되새김이라는 뜻이지요. 사람의 일이나 생각과 관련한 단어가 기념인데, 이를 천연과 붙여 한 단어를 만든 것입니다. 천연기념물, 천연(자연)을 기념한다? 아무래도 어색합니다.

문화재라는 호칭이 문화유산으로 변경됐습니다만, 잠시 문화재를 다시 쓰겠습니다. 천연기념물이 문화재일까요? 당연히 문화재였습니다. 법적으로 그렇게 분류했습니다.

그런데, ‘문화란 인간이 일궈낸 뭔가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자연 상태는 문화라고 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황무지가 있다고 칩시다. 그것은 자연입니다. 누군가 황무지를 갈아 곡식을 심었습니다. 농사짓는 인간의 행위, 이것이 바로 문화입니다. 그렇다면, 천연기념물을 문화재로 분류한 방식 자체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말 어법과 맞지 않는 문화재규정이 만들어진 것은 일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자기네 문화재 분류법을 거의 그대로 우리나라에 도입했습니다. 일본 본토의 분류 항목은 국보·보물·사적·명승·천연기념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로 수정해서 적용했습니다.

국보(國寶)를 제외했습니다. 조선은 독립된 국가가 아니므로 국보가 있을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사적은 그냥 옛 흔적이라는 의미의 고적(古蹟)’으로 고쳤습니다. 우리 역사를 지우려는 의도였던 것 같습니다.

유의할 점은, 천연기념물이라는 용어가 일본에서 들어왔다는 사실입니다. 아울러, 선조들이 남겨주신 유물·유적을 돈의 가치로 평가하는 듯한 의미가 담긴, ‘문화재(文化財)’라는 말도 일본에서 유입됐다는 점, 기억할 만합니다.

 

강화 고려궁지(사적)

 

 

문화재보호법에서 국가유산기본법으로

광복을 맞고도 거의 20년이나 지난 1962년에 대한민국의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됩니다. 고민하고 궁리해서 우리 상황에 맞게 새판을 짜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국보를 추가하고, 고적을 사적으로 바꾸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국보·보물·사적·명승·천연기념물’, 결과적으로 일본의 분류 방식 그대로 법을 제정한 것입니다.

사적의 의미도 짚어봅니다. 우리말 사적(史蹟)’의 본디 말뜻은 역사의 흔적이나 자취입니다. 건축물 자체가 아니라 그 건축물이 있던 터, 역사적 공간을 주로 의미합니다. 고려궁궐이 있던 터인 고려궁지가 전형적인 사적 유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행정적·법률적 용어로서의 사적은 궁궐터·절터는 물론이고 현존하는 성곽, 제단, 고분, 건물 등을 포괄합니다. 역시 일본의 영향입니다.

20245, 커다란 변화가 일어납니다. 문화재보호법을 대폭 정비한 국가유산기본법이 시행됩니다. 가장 큰 변화는 문화재라는 명칭을 버린 것입니다. ‘문화재국가유산으로 바꾸고 국가유산을 다시 문화유산·자연유산·무형유산으로 분류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까지 써왔던 문화재라는 용어를 국가유산’(주로 문화유산’)으로 칭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천연기념물이 문화유산일까요? 이제는 아니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천연기념물은 국가유산이지만, 문화유산이 아니라 자연유산입니다.

과거에는 국가 지정문화유산을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등으로 구분했습니다. 유형문화재는 국보·보물’, 기념물은 사적·명승·천연기념물이었습니다.

문화재보호법(1962), “패총, 고분, 성지, 궁지, 요지, 유물포함층 기타 사적지와 경승지, 동물, 식물, 광물로서 우리나라의 역사상, 예술상, 학술상 또는 관상상 가치가 큰 것을 기념물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기념물을 사적·명승·천연기념물로 나눴던 것입니다.

그런데 국가유산기본법(2024)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문화유산·자연유산·무형유산으로 구분합니다. 문화유산은 국보, 보물, 사적 등이고, 자연유산은 천연기념물과 명승입니다.

눈에 띄는 것은, 기념물 범주에 포함됐던 사적이 문화유산 영역으로 옮겨졌다는 점입니다. 사람이 만든 사적과 자연 그 자체인 천연기념물이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두 대상을 한 범주에 담았던 논리적 모호성을 일단 해소한 것입니다.

정리합니다. 강화 갯벌과 같은 천연기념물은 자연유산이며, 고려궁지처럼 인간의 역사가 담긴 사적은 문화유산입니다. 일제 잔재를 걷어내고, 유산의 본질에 맞는, 새로운 분류 체계의 기초가 마련됐습니다. 그것이 바로 국가유산기본법입니다.

-〈강화역사심문6(202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