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신문, 2025.10.29.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최근 캄보디아의 현지 조직폭력배들이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취업 사기를 벌여 캄보디아로 유인한 뒤, 그곳에서 감금과 폭행, 고문을 가하며 각종 사이버 범죄에 동원하고, 심지어 살인까지 저질러 온 나라를 충격에 빠뜨렸다. ‘캄보디아’라는 국명은 지금도 거의 매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러한 수법으로 범죄에 동원된 한국인 피해자만 해도 적어도 수천명에 이르며, 기업형 사이버 범죄를 저지르는 조직폭력배들의 범행 수법이 극도로 잔인하기 때문에, 전 국민적 ‘충격’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범죄에 대한 ‘공분’과는 별도로, 캄보디아에 대한 너무나 이상한 담론들이 국내에서 급속히 퍼져나가는 것은 대단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범죄자의 상당수가 중국계라는 사실이 대서특필되면서, 캄보디아에 대한 공격들이 국내 극우들이 상습적으로 부추기는 혐중 정서와 종종 겹쳐 나타난다. 캄보디아를 ‘중국의 속국’으로 멸칭하고,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는 조폭들이 마치 중국 공산당의 하수인인 것처럼 묘사하기도 한다. 사실 53개로 알려져 있는 캄보디아 내 범죄 단지에 갇혀 있는 약 10만명의 각국 피해자 중 다수는 바로 중국인들인데, 국내 극우들에게 ‘중국’은 오로지 ‘가해자’로만 보이는 것이다. 동시에 캄보디아는 ‘우리’에 비해 경제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열등한 사회인 것처럼 간주된다. 이런 인식이 확산된 결과, 최근 국내를 찾은 캄보디아인들이 숙박이나 택시 승차를 거부당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캄보디아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결국 길거리 차별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캄보디아가 가난한 건 맞다. 1인당 국내총생산은 한국의 10분의 1이 안 된다. 하지만 60년 전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캄보디아보다 불과 30% 정도 높을 뿐이었다. 이후 캄보디아를 황폐화하고 한국을 부유한 국가로 만드는 데 크게 작용한 세계사적 사건이 뒤따랐다. 바로 베트남 전쟁이었다. 베트남 유격대들이 캄보디아의 일부 변경 지역 영토를 보급 통로로 이용했기 때문에, 미국은 1969년부터 캄보디아에 대한 불법적 대규모 폭격을 시작했다. 23만회가 넘는 공습을 통해 270만톤 이상의 폭탄이 투하되었고, 이로 인해 수십만명의 민간인이 희생되었으며 200만명 이상이 피난민이 되었다. 사회가 혼란에 빠지자 반미 감정의 폭발을 이용해 극단적 마오주의 조직인 크메르루주가 1975년에 집권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초급진적 마오주의자들의 집권이 ‘킬링필드’의 비극과 베트남의 무장 간섭, 내전 등으로 이어져 캄보디아는 1970~80년대에 철저하게 황폐화한 것이다. 한데 캄보디아의 비극을 낳은 베트남 전쟁은, 한국에서는 ‘월남 특수’로 기억된다. 캄보디아가 폐허가 되는 사이에 침략국 미국의 편에 가담한 박정희의 한국은 직간접적으로 적어도 50억~60억달러의 외화 수입을 올려 공업화를 가속화할 수 있었다. 역사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저들’이 가난해지고 ‘우리’가 부자가 된 경로만큼은 정확히 기억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캄보디아 당국이 자국에 체류 중인 한국인들의 안전을 제대로 보장해주지 못하는 것은 분명히 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중대한 문제다. 하지만 캄보디아인과의 관계에 있어 한국의 국가와 자본은 과연 떳떳한가? 그 고통스러운 현대사의 여정을 거쳐 저개발 국가가 된 캄보디아는 외국 투자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캄보디아에 유입된 해외직접투자 중 약 11%(약 80억달러)는 한국 기업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일부 국내인들은 캄보디아를 ‘중국의 속국’이라며 멸칭하지만, 실제로 한국 역시 캄보디아의 주요 투자국 중 하나다.
2000년대 이후 특히 봉제공장을 캄보디아에 설립한 한국 업체들이 많았다. 저임금 국가인 캄보디아에서 이들이 노동력을 착취하며 벌어들인 이윤은 한때 막대한 수준이었다. 2009년 캄보디아개발연구소(CIDS)가 집계한 통계에 의하면 평균적으로 노동자 한명이 회사에 가져다주는 월 순이익은 280달러 정도였다. 한데 그 노동자가 받을 수 있는 임금이란 80달러 정도의 박봉으로, 생존선 이하였다. 기아를 면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어쩔 수 없이 장시간 잔업을 해야 했고 지속해서 과로에 시달렸다. 약진통상 등 한국 회사들은 노조 탄압 논란에 올랐고, 한국 대사관은 2014년 대대적 노동자 파업의 국면에서 캄보디아 정권에 ‘조치’(진압)를 주문한 의혹을 받고 있었다. 지난 수십년간의 한국-캄보디아 경제 관계사는 이처럼 착취와 부당노동 행각으로 점철되어 있다.
착취와 부당한 대우는 국내에서도 캄보디아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지속되어왔다. 현재 국내에는 6만5339명의 캄보디아인이 체류 중이며, 이들 대부분은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노무자들이다. 다수는 대우가 매우 열악하지만, 특히 농업 부문에 종사하는 캄보디아 노동자들의 처우는 차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한 경우가 많다. 2020년 12월 영하 20도의 한파 속에서 난방이 되지 않는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사망한 캄보디아 노동자 누온 속헹씨를 기억하는가? 속헹씨의 동사는, 캄보디아 노동자와 한국 자본 사이의 관계 맺기 방식을 그대로 상징하는 것이다.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 갇힌 이들을 언론들은 종종 ‘노예’라고 표현하지만, 고용허가제를 통해 들어온 캄보디아 등지 출신의, 특히 농업 부문 노동자들도 국제사면기구 등이 ‘현대판 노예’로 규정했다. 캄보디아와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면 아주 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납치, 감금 등 흉악한 강력 범죄에는 캄보디아 당국들과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앞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그 협력이 보다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캄보디아에 대한 아류제국주의적인, 우월감에 가득 찬 잘못된 시각을 버리고, 캄보디아와 좀 더 건설적이고 발전적인 관계를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한 관계를 구축하려면 우리가 캄보디아 당국에 한국인의 안전 보장을 정당하게 요구하는 동시에, 국내외 한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노동자들의 인권 보장을 위해서도 스스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