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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史

사인비구 제작 동종-강화동종

혹시, 노래 듣다가 울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예전에 미스터트롯에서 임영웅이 부르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들을 때였네요. 제 의지와 상관없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좋은 음악은 지저분한 마음을 맑게 씻어주고, 어수선한 마음을 다독여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산사의 종소리도 좋은 음악이라고 여깁니다. 드엉, , 은은한 종소리가 귀보다 먼저 가슴으로 스미면, 나도 몰래 하아~” 한숨을 내쉽니다.

산에서 듣는 종소리와 집에서 듣는 종소리는 맛이 다를 수밖에 없지요. 그래도 강화동종의 울림소리는 여느 산사의 범종 소리에 뒤지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그윽했습니다.

절에 있는 종을 대개 범종(梵鍾)이라고 부릅니다. ‘()’은 불교와 관련된 글자예요. 강화동종은 그냥 동종(銅鐘)입니다. 사찰과는 관련이 없어요.

 

강화역사관 당시 강화동종
현재 강화동종(강화역사박물관)

 

 

강화동종 표면에 꽤 긴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명문(銘文)저녁과 새벽에 울리고 경고함으로써, 성문 여닫는 일을 맡아 사람과 물자의 출입을 엄히할 목적으로 종을 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남산, 견자산, 북산을 빙 두른 강화산성이 1711(숙종 37)에 완성됐어요. 강화동종도 그해 제작됩니다. 밤에 성문 닫을 때 그리고 새벽에 열 때 종을 쳐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기능을 한 겁니다. 10시쯤에 28번 치고, 새벽 4시쯤에 33번 쳤을 겁니다.

성문 닫혀 있는 시간은 통행금지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통행금지 시간을 알리는 종을 인경이라고 했대요. 그래서 강화사람들이 강화동종 주변 동네를 인경간이라고 불렀습니다.

원래 용흥궁공원 아래 김상용 순절비 자리에 있었는데 1977년에 고려궁지 안으로 옮겼습니다. 중요 행사가 있을 때 타종했습니다. 그런데요, 지금 고려궁지 강화부종각에 있는 동종은 복제품입니다.

진품 강화동종은 1999년에 갑곶돈대 강화역사관(지금 강화전쟁박물관) 전시실로 옮겼습니다. 종에 미세한 균열이 생겨서 계속 타종하면 부서질 위험이 있다고 해요. 보존 차원에서 박물관으로 옮긴 것이죠. 2010년에 하점면 강화역사박물관으로 다시 옮겨 지금에 이릅니다.

 

강화부종각(고려궁지)

 

1963년에 보물 제11호로 지정됐습니다. 문화유산 공식 이름이 강화동종(江華銅鐘)’이었죠. 그랬는데 2000년에 사인비구 제작 동종-강화동종으로 이름이 바뀌고 지정번호도 보물 제11-8호로 변경됐습니다.

사인비구, 그러니까 사인(思印)이라는 스님이 제작한 다른 종들과 함께 묶어서 보물로 재지정한 것입니다. 사인 스님은 당시 최고의 종 제작 전문가였다고 해요.

그런데 말이죠, 강화동종은 사인 스님이 아니라 사인의 제자인 조신(祖信) 스님이 만든 것 같습니다. 동종 명문에 예전 [舊鍾]은 도화원 가선총섭 사인이 제작했고, 다시 만든[次造] 이는 도화원 가선 조신이다라고 번역되는 내용이 있습니다.

처음 종을 만든 이는 사인이 맞지만, 그 종에 문제가 있어서 다시 만든 이가 조신이고, 조신이 만든 종이 바로 지금의 강화동종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2021년에 문화유산 지정번호 제도가 폐지됐으니까 보물 제11호인가, 11-8호인가를 따지는 건 이제 의미가 없죠. 하지만, 제작자가 조신 스님이라면, ‘사인비구 제작 동종-강화동종이라는 이름은 원래대로 강화동종으로 바로잡는 게 적절합니다. 관계 기관에서 면밀히 검토해서 추진해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강화역사심문3(20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