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성공회 성당으로. 층계 위로 솟을삼문 모양의 대문,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더 웅장하다. 층계 좌우에 쇠 난간부터 보자. 별거 없다. 그런데 왜?
일제강점기 후반 일제는 대대적으로 쇠붙이 징발에 나섰다. 녹여서 무기 만들려는 거다. 학교 교문 떼어 가고, 집안의 가마솥 뜯어가고 놋그릇 집어가고, 산속 사찰의 종까지 가져갔다. 성공회도 피해를 보았다. 계단 난간을 뜯겼다.
일본인 신자들이 강화성당에 왔다가 그 얘기를 들었다. 그들은 선조들의 잘못을 사죄했다.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난간 설치 비용을 보내왔다. 그렇게 설치된 난간이다(2010). 일본인도 일본인 나름이다. 혐한증 환자만 있는 게 아니다.
문 열고 들어서니 왼편에 높이 150㎝ 정도의 아담한 종이 걸렸다. 한국식 동종이다. 원래 영국에서 보내온 종이 있었는데 일제가 뜯어갔다. 지금 종은 1989년에 제작한 것이다. 마당 옆으로 키 큰 나무. 한 그루처럼 보이는 두 그루 나무. 보리수다. 보리수는 불교의 상징이다. 보리수 아래서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예수님 섬기는 성당 뜰에 보리수가 산다.
앞에서 성당을 올려다보자. 天主聖殿(천주성전)이라고 쓴 현판이, “여기는 절이 아니라 성당일세.” 알려준다. ‘천주성당’이라 하지 않고 ‘천주성전’이라고 했다. 격을 올려서 성공회와 강화성당의 자부심을 드러낸 것 같다.
앗, 홍살문? 그러네. 성당 건물을 밖에서 돌아보다 보면 홍살문 장식을 만나게 된다. 숨은그림찾기. 한번 찾아보시기 바란다. 그냥 짐작인데, 애초 성당을 지을 때 솟을삼문 아래에 홍살문을 세울 계획이었을 것 같다. 그게 어렵게 돼서 건물 외벽에 형상을 만든 것 아닐까.
언제 성당을 지었나. 1899년에 짓기 시작해서 1900년에 완공했다. 트롤로프(한국명 조마가) 신부가 설계부터 자재 조달 등 모든 업무를 직접 추진했다. 목재는 백두산에서 구해 왔고, 석재 등은 강화산을 썼다. 그런데 성당 건물 좌우와 후면의 아치형 출입문은 영국산 목재라고 한다.
한두 발 떨어져 성당을 바라본다. 특이하다. 성공회는 서양 종교인데 건물이 2층 한옥이다. 무슨 큰 관청 건물이거나 절 같은 느낌이다. 조화, 융합, 통합, 포용, 이런 단어가 떠오른다. 자유와 여유도 연상된다. 성공회 강화성당 건물에 깊은 함의가 스몄다.
옛날에 건물 규모를 칸으로 설명했다. 기둥과 기둥 사이가 한 칸이다. 한 칸이 딱 몇 미터다, 이렇게 정해지지는 않았다. 한 칸이 좁을 수도 있고 넓을 수도 있다. 성공회 성당 정면을 보니 기둥이 다섯 개 그럼 4칸이다. 옆은 길다. 몇 칸인지 세어보자. 10칸이다.
이왕 예까지 왔으니 안에도 들어가 보자. 오우! 완전히 다른 분위기. 밖에서 봤을 때 분명히 2층 건물이었는데 안으로 들어오니 천장 높은 1층이다. 서양식으로 꾸몄다. 흔히 바실리카 양식이라고 말한다. 유리창 통해 들어온 빛과 창호지 문으로 스민 빛이 만나 하나가 된 공간, 묵직하고 경건하다.
앞에 강화성당기가 있다. 칼과 열쇠 무늬다. 강화성당 수호성인인 베드로와 바울을 의미한다. 성령의 검은 바울, 천국 열쇠는 베드로다. 그런데 열쇠를 자세히 보라. 불교를 뜻하는 만(卍)자가 들어있다. 성당기에까지 불교를 담았다.
그런데 성공회가 뭡니까? 아, 기본적인 설명을 하지 못했네. 루터와 칼뱅. 근대 유럽에서 종교개혁을 완수한 성직자들이다. 이들로 인해 새롭게 성립한 크리스트교를 신교(개신교)로 부른다. 기독교이다. 원래부터 있던 교황 중심의 크리스트교는 구교로 불리게 되었다. 가톨릭, 즉 천주교다.
영국에서도 종교개혁이 있었다. 국왕 헨리 8세가 주도했다. 그에 의해 성립된 신교가 영국 국교회이다. 영국 국교회가 바로 성공회다. 범주 상으로 볼 때 성공회는 신교다. 그런데 교리와 체제 등은 구교와 가깝다. 상대적으로 융통성이 꽤 확보돼 있다. 성당을 지은 이가 트롤로프 신부라고 했다. 신교임에도 성직자를 신부라고 한다. 목사가 아니고.
강화문화원, 《江華文化》 제15호,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