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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史

‘나제통문’과 만들어진 역사

전북 무주에 돌산을 뚫은 통문이 있다. 구천동 33경 가운데 제1경 나제통문(羅濟通門)이다. 신라와 백제가 통하는 문이라는 뜻이다. 이름 속에 국경 관문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삼국, 그 시대쯤에 뚫은 문으로 말해진다.

 

 

하지만, 아니라고 한다. 돌산을 뚫어 이 문을 낸 때가 일제강점기 1920년대라고 한다. 삼국시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동네 사람들은 오래도록 ‘기니미굴’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무주구천동을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1960년대에 ‘기니미굴’을 ‘나제통문’으로 이름 바꿨다. 33경 각각에 대한 작명도 그때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제 무주구천동은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관광지가 되었다. 당시 구천동 계곡 관광지 개발 사업에 참여했던 오재성이 2018년에 조선일보 박종인 기자와 인터뷰했다.

“가난했으니까, 무슨 역사의식 같은 건 있을 리가 없었다. 기니미굴이라고 하면 누가 오겠는가. 그냥 관광객 모으려고 근사하게 나제통문이라고 이름 붙인 거지.”

그런데 이게 웬일, 지역 홍보 차원에서 임의로 이름 붙인 ‘나제통문’이 슬금슬금 역사로 둔갑했다. 삼국시대부터 나제통문이 있었던 것으로 되어 갔다. 심지어 국사 교과서에 사진이 실리기까지 했다. 오재성은 문제의 심각성을 느꼈다.

 

“정말 역사로 기록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리는 정말 우리 고장을 위해서, 우리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했던 일이다.”

오재성은, 에이 모르겠다, 주저앉아 있지 않았다. 잘못된 걸 바로잡으려고 나섰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1980년에 국사편찬위원회에 갔다. 내가 이름 붙인 거다 그러니까, 아니래. 삼국시대 것이래. 그래서 일제강점기에 뚫었고, 목격한 사람도 다 있다, 그렇게 난리를 치러서 1990년대 들어서야 교과서에서 사진이 빠지게 된 거지.”

오재성이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아직도 나제통문이라고 하니까, 아 역사 왜곡이라는 게 바로잡기가 어렵구나. 40년밖에 안 됐는데도 바로잡는 데 40년이 아니라 400년이 걸리겠구나, 그런 생각…. 우리가 후손들한테 뭘 남겨줄 건가. 계속 거짓을 남겨줄 순 없지 않나. 거짓에서 탈피를 해야지.”

 


 

1971년 당시 나제통문(출처 나무위키] 이때는 '나제통문'이라고 쓴 글씨가 붙어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