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소 수료식 마치면 꼬옥 안아줄 생각이었다. 아빠 학급 아이들의 대학 수시 전형 응시로 한창 바쁠 때 하필 그때 네가 입대하는 바람에 훈련소에 데려다 주지도 못했지. 너 홀로 군에 보내고 내내 아렸다.
입대가 즐거운 젊은이가 어디 있으랴. 심란한 티 내지 않고 덤덤한 표정으로 뚜벅뚜벅 떠나던 뒷모습이 한 달여 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한 달이 한 해 같았다. 그런데 그 먼 진주까지 가서 기초훈련 모두 끝낸 너를 보자마자 아빠는 돌아서고 말았다. 너도 약속이나 한 듯이 등을 돌리더구나. 우리 부자는 그렇게 등 돌리고 서서 한줄기 눈물로 뜨거운 포옹을 대신하고 말았다. 그 옛날, 아빠 군에 가던 날 훈련소 앞 장면이 떠오른다. 억지로 웃으며 손을 흔들곤 바로 돌아서서 뛰었다. 강해지러 가는 군대인데 왜 눈물이 나는 걸까?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빠의 눈물을 보지 못했다. 아니 등으로 흐르는 눈물을 보셨는지도 모르지.
훈련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연병장으로 가는 길, 너를 만나러 가던 그 길가에 야외 훈련장이 있었다. 그날 거기는 온통 코스모스더구나. 포복하고 구르고 달려야 하는 거친 공간에 가득 피어난 코스모스를 보며 그 꽃을 심은 훈련소의 속 깊은 배려를 읽을 수 있었다. 엄마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눈물 바람이었다. 울긴 왜 우느냐고 핀잔을 놓았었지. 코스모스의 손짓을 받고야 엄마가 배시시 미소를 그리더구나.
아들아! 훈련 무사히 받아서 진정 고맙다. 특기 교육 끝나고 자대 배치를 받아 이젠 본격적인 군 생활이 시작되는구나. 군 생활은 마음 편히 먹는 것이 제일이란다. 힘들수록 긍정의 눈으로 현실을 받아들이도록 노력하렴. 군대 가서 적당히 중간만 하라던 아빠의 말, 취소하고 싶다. 교육과 훈련에 정성을 다해 임하거라. 공부도 열심히 하고 말이야. 군대도 학교나 직장과 마찬가지란다. 네가 쏟은 땀방울이 너를 배신하는 일은 없을 거야. 생각하기에 따라 군대는 2년간 젊음을 썩히는 곳이 될 수도 있고, 미래를 열어가는 마당이 될 수도 있단다. 20여 년 네 삶을 돌아보다 보면 앞으로 나아갈 길도 보일 것이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갈수록 네 가슴도 그만큼 깊어지고 넓어질 게다. 그동안 네 주변과 일상 그 소소한 것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도 알게 될 것이고. 그렇게 시나브로 성숙해 가는 거란다. 대한민국 공군 이승재 이병! 다음에 만날 때까지 너는 너의 자리에서, 아빠는 아빠의 자리에서 값진 시간을 보내자. 그리고 그때는 눈물 대신 포옹이다.
〈조선일보〉, 2012.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