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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史

강화 정수사 법당

정수사로 갑니다

우리 역사심문은 3, 6, 9, 12월에 나옵니다. 그러니 3개월에 한 번 글을 쓰면 됩니다. 처음에는 그 정도야 뭐.’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 아니었습니다. 3개월이 사흘처럼 닥칩니다. ‘벌써 또야? 이번에는 뭘 쓰지?’

가다가 바지락 칼국수를 먹을 요량입니다. 하지만, 나의 변덕은 어쩔 수 없어, 평양냉면집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길가 간판을 본 순간 마음이 바뀐 겁니다. 웃기는 게, 저는 평양냉면 맛을 모릅니다. 고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저도 모르겠습니다.

냉면 육수를 한 모금 마십니다. , 역시나 밍밍하고 심심합니다. 도무지 삼삼하지가 않습니다. 어쨌든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가던 길 계속 가서 정수사에 내렸습니다. 그렇습니다. 망설임 끝에 이번 호는 정수사 법당을 쓰기로 결정한 겁니다. 쓰려면 아무래도 다시 둘러보는 게 좋겠지요.

 

 

 

맞배지붕이라니

정수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인 639년에 창건됐다고 합니다. 역사 오랜 절들을 보통 천년 고찰이라고 표현하는데, 강화의 사찰들은 천년하고도 몇백 년의 세월을 더 품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갔더니 그새 변화가 많았습니다. 오백나한전이 관음전과 합쳐졌네요. 오백나한전이었던 건물은 이제 종무소 등으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대웅보전 옆에 있던 석탑이 뒤쪽으로 옮겨졌습니다. 계단 따라 석탑으로 올라가니 정수사 둘레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정중동(靜中動)의 꿈틀거림 속에서 산사의 생기가 느껴집니다.

한 바퀴 돌고 내려와 절 마당에 서서 다시 대웅보전을 올려다봅니다. 참 단아합니다. 일찌감치 1963년에 보물로 지정됐어요. 공식 이름은 강화 정수사 법당’(江華 淨水寺 法堂)입니다.

법당 지붕이 독특합니다. 사찰 대웅전 지붕은 대개 화려한 팔작지붕입니다. 전등사, 보문사, 청련사 다 팔작지붕이에요. 그런데 정수사 법당은 검박한 느낌의 맞배지붕입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뭐랄까, 군더더기 없는 직선의 미학이라고 할까, 그러한 게 느껴집니다.

 

 

 

나는 툇마루가 좋아요

툇마루에 살짝 엉덩이 걸치고 앉았습니다. 저는 정수사 법당 툇마루가 참 좋습니다. 앉아 있으면 바람이 와서 얼굴을 살살 간지럽히는데, 그 느낌이 잘 있었니?” 하며 안부를 물어주는 것 같습니다. 마니산 산자락을 흐르는 바람 맛이 평양냉면 육수 맛보다 삼삼합니다.

그동안 마루에 앉지 마십시요라고 쓴 삼각 팻말이 무려 세 개나 이 툇마루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앉으면서도 뭔가 거역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들어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누가 고스톱을 치겠어, 술을 먹겠어, 앉으라고 만든 툇마루에 왜 앉지 말라는 거야.’ 속으로 흉본 적도 있습니다.

그랬는데 이제, 그 팻말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절에서 팻말을 치운 겁니다. 손가락으로 툇마루 바닥을 톡톡 두드렸습니다. 사찰의 배려에 전하는 제 마음의 박수입니다.

전국 수많은 사찰, 그 사찰의 대웅전, 그 어디에도 이런 툇마루는 없습니다. 정수사 법당만의 독특한 건축 양식인 셈입니다. 처음 지을 때는 툇마루를 두지 않았는데, 나중에 보수하면서 추가로 설치한 것이라고 해요. 지금 대웅보전 건물은 1423(세종 5)에 지은 것 같습니다. 툇마루는 1524(중종 19) 중건 때 설치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후 여러 차례 중건을 거치면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법당 정면에 툇마루를 덧붙인, 당시 스님들의 파격이 사람과 부처 사이의 권위적 경계를 헐어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살에 핀 꽃

고개를 뒤로 돌려봅니다. 온통 꽃입니다. 봄여름가을겨울 지지 않는 꽃밭입니다. 이 꽃살문 덕에 정수사 법당의 예술성이 확 살아납니다. 속초 신흥사 극락보전,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 등과 함께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은 꽃살문입니다.

특이하게도 통판으로 꽃병과 꽃을 조각했습니다. 총 네 짝 꽃살문 중에서 가운데 두 짝은 연꽃을, 양옆 두 짝은 모란을 새겼습니다. 꽃살문이 꽃밭이라면 툇마루는 꽃길인 셈이죠. 꽃길을 걸어 대웅보전 안으로 들어갑니다.

법당 겉모습이 색다르더니, 안의 모습도 남다릅니다. 보통 대웅전은 부처 한 분과 보살 두 분, 이렇게 세 분을 모십니다. ‘대웅보전은 부처만 세 분을 모십니다. 이를테면 석가모니불·아미타불· 약사불 식이지요.

그런데 대웅보전현판을 단 정수사 법당은 부처와 보살 다섯 분을 모셨습니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왼쪽에 관세음보살과 문수보살이, 오른쪽으로는 보현보살과 지장보살이 계십니다. 앞에 엎드립니다. 앞으로 꽃길만 걷기를 기도하는 건 욕심입니다. 가끔 꽃길도 걸을 수 있기를 기도할 따름입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갑니다. 돌계단을 한 칸 한 칸 내려옵니다. 곧 여름이 올 테고 그러면 이 계단 좌우로 노랑 상사화 가득 피어날 것입니다. 온통 녹색 숲을 뚫고 자동차가 흘러내려갑니다. 새삼, 강화는 참 좋은 곳입니다.

<강화역사심문> 제8호(202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