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에 한겨레 지면에서 함께 만난 두 개의 단어
‘지20’과 ‘조선’
한겨레신문은 창간 당시 한글 전용 기사 쓰기와 획기적인 가로편집으로 세상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후 언론계에 끼친 선한 영향력이 상당히 컸다.
한글에 대한 애정과 존중,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변함이 없다. 부음이나 부고 대신에 ‘궂긴 소식’을 쓰고, ‘헌재 문건 죄다 수령 거부’처럼, ‘전부’나 ‘모두’ 대신에 ‘죄다’라고 표현하는 노력 속에 한겨레의 지향점이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는 좀 유연해질 필요가 있겠다. ‘지20’은 정말 불편하다. 그냥 ‘G20’으로 써도 한글 사랑에 흠이 되지 않는다. 독자의 가독성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관용적으로 우리말화한 알파벳 약자들은 그대로 쓰면 좋겠다. 그동안 한겨레 기사에서 만난 단어들을 몇 개 옮긴다. ‘베엠베(BMW)’, ‘제이티비시(JTBC)’, ‘티브이(TV)’, ‘에이치오티(H.O.T)’, ‘한국방송(KBS)’….
‘BMW’를 베엠베라고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냥 ‘BMW’로 쓰는 게 자연스럽다. ‘KBS’라고 쓰고, ‘JTBC’라고 쓰는 편이 훨씬 읽기 쉽다.
‘C지구 발굴 현장’을 굳이 ‘시(C)지구 발굴 현장’으로 쓰고, ‘CCTV’를 ‘폐회로티브이(CCTV)’로 쓰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KTX를 ‘케이티엑스(KTX)’라고 쓰는 건 지면 낭비 아닐까.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영문자 사용에 유연해졌으면 좋겠다.
‘지20’만큼이나 목에 걸리는 단어가 ‘조선’이다.
“한국의 자주국방의 1차적인 상대는 조선이다.” 칼럼 한 구절이다. 지난해 여름 칼럼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과거에 조선은 농사에 필요한 화학비료를 충분히 생산할 수 있었으나….”
여기서 말하는 ‘조선’은 이성계가 건국한 조선이 아니라 북한을 가리킨다. 한겨레 기자가 쓴 글은 아니다. 외부 칼럼이다. 그런데 ‘글쓴이 의견이 신문사 생각과 다를 수 있다’는 식의 관례적인 덧붙임도 없는 것으로 보아, 한겨레가 ‘조선’이라는 호칭 사용에 동의하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가 북한을 북한이라고 부른 기간이 사실은 길지 않다. 더 오랜 기간 북괴라고 불러야 했다. ‘북한’은 한반도 전체와 부속도서가 대한민국 영토라는 헌법 조문과 현실 세상의 모순성을 어느 정도 보완해주는 호칭이기도 하다. 비록 분단됐으나 한 민족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쉽게 버릴 ‘북한’이 아니라고 여긴다.
북한을 어엿한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도로 ‘조선’이라고 표기하는 것 같다. 굳이 그렇게 해야 한다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쓰기를 권한다. 그래야 헷갈리지 않는다. ‘조선’이라고 쓰는 데는 유연함이 아니라 신중함이 필요하다.